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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Nov 05. 2023

결혼식에 갔다

당연한듯 당연하지 않은 것들

거래처 결혼식, 한다리 건너 아는 지인의 결혼식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내가 축의를 한 것으로 마음을 표현했다는 걸로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

축하하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이 사람의 결혼식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지는, 모든 행복이 오늘은 이 두사람에게 갔으면 좋겠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다하기는 쉽지가 않다.


어제, 그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안고,

16년지기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서로가 남녀라는 다른 성별로 운동동아리에서 만났어도 남녀라는 프레임 대신 그냥 "담배친구"정도의 사이를 넘어 진짜 오랜 인연을 맺어온 것에 대해 둘다 신기해한다.


친구는 남자이지만 섬세하면서도 솔직하다.

한창 20대에 검도아니면 술로 달리던 우리 동아리에서 누구보다 검도에 열의가 있었고 실력도 좋았다.

16년전 내가 소개팅을 해달라는 그의 말에 조건을 물었을 때,

그는

"나 키 165이상이고 좀 귀여우면 돼."

라는 무리한 대답을 했다.

"이 새끼가 욕심이 많네.?"

"아 나 키가 186이잖아."

그렇지 이 새끼 키가 크구나....를 실감했다.

역시 키가 커서 그런지 턱시도가 아주 잘어울린다.

그리고 그는 아마 그의 이상형과 결혼을 한 것 같다.

8살이나 어리고 키크고 애교많은 와이프를 얻은 너. 위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기 다른 사회생활을 하고 다른 지역에 살면서 물리적 거리는 멀어져도 우리 동아리 사람들은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아서였는지 해마다 꼭 생존신고를 하며 만난다. 아마도 검도를 같이 하며 다진 힘든 훈련들과 같이 울고웃던 캠퍼스라이프로 인생의 한 장면을 장식해준 사람들에 대한 추억, 그리고 고마움이 있어서.

서로 누가 누구보다 잘났고 못났고 돈이 있고없고 애인이 있고없고 그런 표면적인 안중요한 이야기보다, 당장 지금 이 만난 자리 자체가 너무 값지고 감사한 만남이라서 소중한, 그런 모임.

내가 70살 할머니가 되어서도 같이 술한잔 기울이고 조카들 용돈 두둑히 챙겨주고 싶은 그런 사이.

어제 결혼식 주인공이 그런 모임사람들 중 한명이다.

 계속 서로의 진심을 보일 수 있는 사이가 나이들면서는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 같다.

사는 환경이나 지역이 달라 멀어지고, 공감대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가 줄어들고, 같이 공유하는 추억이 더이상 없을 때, 더는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부부나 연인은 특별한 것을 기념하고, 같이 할 무언가를 찾고, 가족은 함께 모이는 식사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고, 친구들끼리는 계라는 걸 하기도 한다.


인간관계가 다 허영이고 온통 거짓된 관계로 물들어가기에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주변에 남아있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이 순간이 오래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모임은 그런 걸 초월한 모임임을 매해 자리를 만나면서 느낀다. 좋은 녀석들을 내가 만났단걸.

항상

건강했으면

하는일 다 잘됐으면

재미있는 거 많이하고

시간되면 맛난 거 같이 먹고


그리고 그렇지 않은 상황에 있는 내 사람에게는 훗날 내가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기를,

그런 쓸모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오늘도 바래본다.

특이하게 신랑신부 입장전 계단오르는 씬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결혼식.

결혼이라는 게 항상 즐거움만 있는 뜬구름이 아니다.

저 오르막길보다 더한 시련을 같이 이겨내고 난 후의 부부사이는 함부로 갈라지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다가, 맞춰주다가, 부딪혔다가, 이젠 가만히 바라봐주게 되는,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이 사람과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게 되는.

 부자연으로 시작해 자연으로 끝나는 두 남녀의 의리와 신뢰의 미스테리멜로판타지 대환장파티.

그게 결혼인 것 같다.


이날 신랑인 친구의 아버지가 축사를 하셨는데, 정말 짧고도 간결한 한문장으로 끝내셨다.


"당연히 다른 사람이니 다름을 인정하고 살길."

한편의 숏폼영화를 보는 것 같았던 로비의 사진전시.시작은 멜로.

소중한 날에 초대해준 친구에게 감사를 표한다.

뻔한 결혼식이 아닌 피아노곡 하나하나 영상 하나하나 자신의 손으로 선곡하던 그 섬세함으로 기쁜 날 찾아온 이들에게 진심을 담은 감사전화를 해주었던 친구에게.

평생 행복한 날이 그렇지 못한 날보다 많길.응원한다.


그리고 다음달엔 또 다른 멋진 후배의 결혼식을 축하할 자리로.

축의금으로 나갈 돈보다, 그 이상을 얻고 오는 고마운 마음이 오고가는 결혼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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