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앞으로 쓰게 될 여러 글 중, 오늘 내용이 가장 믿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리더십에 대한 미신'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리더'를 '조직이나 업무에 대한 권한과 능력을 가진 자'로 정의한다. 주어진 업무 정도를 겨우 해내는 나,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하는 비전 제시는 커녕 농담도 잘 먹히지 않는 나, 간단한 점심 메뉴 하나 정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내가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이란 딱 그 정도의 나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며, 필요한 '능력'이란 그런 정도의 사람들을 현재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기술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리더는 오너가 아닌 고용 CEO를 주로 염두에 두었으나, 조직 내 고위 관료에 적용하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리더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리더는 부족하다. 왜? 실제 필요한 '리더'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리더'에 대한 잘못된 믿음에 기반하여, 우리는 리더가 '풍부한 실무경험' 내지는 '성공을 위한 팀빌딩 능력', 혹은 '미래를 바라보는 식견과 의사결정력' 따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승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이다. 대체로 어떤 일이건 잘해내는 만능 일꾼이나, 지위에 맞지 않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란 상위권자에게 자산이라기보다는 부담으로 인식된다. 능력자들은 대리와 과장급까지 급속도로 성장하지만, 슬슬 자신의 상위권자의 무능을 인지하고 도전하게 된다.
그 상위권자라는 사람은 실상 업무능력이나 인사이트가 부족할 따름이지, 조직 내 처신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고스톱 쳐서 간부된거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 관행을 거스르는 일처리를 할라치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마찰과 잡음이라는 불변의 명분도 있다.
"그 사람 일은 잘하지만, 조직 내에서 원만하지 못하다." 이 평가로 수많은 능력자들이 조직에서 도태된다.
그 결과 조직을 오래 경험한 사람 중 능력을 갖춘 사람이 희소해진다. 일년, 이년도 아니고 조직원이나 이사회나 현직의 간부들이 부족하다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혹자는 위기의식까지 느끼게 되고, 바로 그 지점에서 외부영입 리더를 찾게 된다.
많은 조직이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항상 모든 분야에서 '우리 조직의 스러져가는 매출과 침체되는 분위기를 바꿔줄 치트키'로서 새 리더를 뽑는다. 즉, 당신이 리더로 데뷔할 무대는 한없이 크다. 지금도, 앞으로도 쭉~
착각하지 말자. 조직운영의 목표는 '잡음 없이' 현재를 유지하는 것이다.
스스로 리더가 되지 않고, 리더를 고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의사결정자들은 조직에 대한 실질적 정보나 책임을 갖지 않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회사의 이사회, 채용위원회 등에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은 최소한 실무경험이 아주 먼 과거에 있거나, 관련 경험을 해보지 않은 문외한한들이다.
조직 내외부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게 '객관적'인 선발을 위한 장치이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 만족시켜야 할 사람들은 그 '문외한들'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그리 어렵지 않다.
같은 이유로 내가 잘 모르는 회사의 리더로 도전하는 일에 대해서도 긴장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내부를 잘 아는 사람보다 나야말로 '문외한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에 적합한 사람이다. '채용위원회'가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을 분석하면 된다.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당신은 지금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조직의 리더를 뽑는 '채용위원회'에 초대되었다.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가?
여기서부터가 핵심이다.
모든 사람은 두 가지 핵심적인 니즈를 갖는다.
일단, 본인을 소개함에 있어 "당신들은 잘 모르지만 내가 이 조직운영에 대한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 다만 공격적일 필요는 없고,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다.
약간의 과장과 자신감 있는 태도만이 중요하다. 보통의 채용과정에서 주장하는 개인의 실적이나 성과, 능력에 대해 검증까지 할 절차나 시간이 없다. 이럴 경우 발생하는 심각한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오히려 비언어적 사인(Non-verbal Signal)에 휘둘리게 된다.
어차피 전문적 실적지표 같은 것은 설명할 시간도 없으니, 아는 한 유명하고 높은 사람과의 작은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이 좋다. 전략적으로 그 유명인으로부터 본인이 인정받은 지점을 과장하고, 중간에 듣는이가 이해하지 못할 전문용어를 한 두개 섞되 전반적으로 겸손한 태도를 취하면 된다.
실무와 관련된 부분은 구체적인 지점을 언급하되, 너무 큰 변화나 솔루션을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 채용위원들은 조직원들에 대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분명한 변화를 만들되, 점진적이고 포용적으로 진행하겠다'는 보증을 받고 싶어한다. 만약 채용위원회가 이사회라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리더'임을 강조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준비한 모든 자료나 내용이 엉망진창일 가능성에 대한 보험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내부를 알 수 없는 선에서 작성한 열려있는 안이고, 제가 리더가 되고 나서 실무진들과 함께 다시 만들어갈 예정이다.'는 단서를 꼭 붙여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