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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Dec 18. 2022

첫 번째 이야기 : 군법무관이 뭐야?

변호사, 판사, 검사도 아닌 군법무관 이야기

"군법무관이 뭐야? 법무사 같은 거야?"


악의 없는 친구의 말에 겉으로 웃어넘기면서 오늘도 다시 다짐한다.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앞으로는 그냥 회사원이라고 해야지.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회사원은 아니고 공무원이지만. 아니 공무원이라기에는 구체적으로 군인이라고 표현해야겠지만, 군인이라고 불리기엔 내가 너무 군인 같지 않아서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군인은 군인이지만 군인 같지 않아 보이는 군대 내의 법조인, 그게 바로 군법무관이다.


내 인생에서 '군법무관'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시기는 바로 로스쿨에 입학하자마자였다. 처음 참석했던 조별 모임에서 만나게 된 나와 딱 1년 차이나는 선배는 나에게 로스쿨 졸업 후 군법무관으로 임관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현재 태권도도 배우고 있고, 겨울방학 때 실무수습도 육군본부로 나갔다는 말을 덧 붙이며. 그때의 나 역시 궁금했다. '군법무관은 뭘 하는 사람들이지?'


대학교 때부터 로스쿨을 꿈꾸며 법조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법조인이라는 직업 안에는 오로지 검사, 판사, 변호사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던 내가 군에 입대해서 이름도 생소한 법무관 생활을 하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이상한 일이다.


내가 군법무관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거창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로스쿨 때부터의 내 꿈은 검사로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너무 재밌었고, 나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정의'라는 가치를 평생 직업을 통해 추구하고 싶었다. 로스쿨 1년 차 법무부 인턴부터 가장 중요한 시험이었던 변호사시험공부 중에도 공법과 민법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매달렸던 검사 임용 과정 마지막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기 전까지는, 나는 앞으로의 내 인생은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법무부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검사 임용에 열렬한 애정을 쏟았던 나에게 변호사시험 직전, 달랑 선발이 안되었다는 문자 한 통만을 남겨주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스타벅스에서 꾸역꾸역 손에 안 잡히는 행정법 책을 보다가 그 문자를 받고 바로 울면서 집에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때 내 심정은 딱 그랬다.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이제 갓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법조 새내기들은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형사법을 전문으로 하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검사가 되거나, 경감으로 채용되거나,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가 되고는 한다. 내가 군법무관에 지원할 당시에는 경감 채용은 2년의 경력이 있는 변호사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었어서 검사라는 루트에서 벗어난 내게 남은 선택지라고는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뿐이었다. 그런데 로스쿨을 갓 졸업할 때에는 정말 고집쟁이에 미숙했던 나는, 형법으로는 형사사건 변호사가 아닌 내가 믿는 정의-특히 공익에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이래저래 길을 잃고 방황하던 중, 로스쿨 1학년 때 그 선배가 해줬던 말이 머릿속에 번뜩였던 게 내가 군법무관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됐다. 바로 군 검사가 되어 군 장병들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그 선배의 말이. 


겪어보니, 군법무관은 단지 군 검사 업무만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군법무관은 군 내의 법조인으로, 결국 올라운더 플레이어(All Rounder Player)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군에서 국선 변호사가 되어 군인 신분인 사람들의 형사재판에 조력하기도 하고, 피해자인 군인들에게 피해자 국선변호인이 되어 법률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군 내에서 체결하는 수많은 계약서들을 검토하고 매일매일 발생하는 문제에 법적인 조력을 하기도 한다. 또 우리는 군인으로서 지휘관을 보좌하여 작전법적인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하는 참모 역할을 하기도 하고, 군이나 국가를 피고로 하는 수많은 민사소송과 행정소송들에서 소송수행자가 되어 서면을 내고 법원에 출석하고, 군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국가배상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해주거나 문제를 일으킨 군인들에 대하여 징계를 진행하여 처벌을 하기도 한다. 또, 우리는 군 내에서 발생한 일에 대하여 검사가 되어 수사와 기소를 하고, 판사가 되어 판결문을 작성하며, 심지어 군 장병들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밤새 인권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나는 군인이면서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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