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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지비치, 내 눈물이 머문 바다

더는 울지 않아도 되는 시간

by 윤슬 걷다

며칠 전, 쿠지 비치에 다녀왔다.

그곳은 내게 여러 가지 기억이 서린 장소다.


호주에 와서 처음 5년을, 킹스포드에서 쿠지로 넘어가는 레인보우 스트리트에서 살았다.

낡고 오래된, 중국계 할아버지가 주인이었던 그 집은 1년 내내 햇볕 한 줄기 들지 않았다.

겨울이면 히터를 틀어도 발가락이 얼어붙었고,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시드니에서 동상이라니, 아무도 믿지 않았고, 때로는 나조차도 의심스러웠다.


그때 나는 학생이었다.

방 한 칸에서 어린 딸과 함께 살며, 나머지 두 방엔 중국인 쉐어생이 있었다. 대부분 UNSW 학생들이었고, 나보다 어린 이들이었다.

나이 많은 학생이었던 나는 딸의 양육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대학생다운' 시간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부모님은 한국에서 자주 오셨다.

서른 갓 넘긴 나이에, 어린 딸을 데리고 과부가 된 딸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오죽하셨을까.

하지만 평생 아들과 딸을 차별해 온 부모님은 호주에서도 그 태도를 버리지 못하셨다.

같은 집에 머물면서도, 차별은 여전했고, 나와 엄마의 대화는 자주 날카롭게 끝났다.


그리고 그분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면, 나는 어김없이 쿠지 비치에 앉아 울었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취직은 쉽지 않았고 영주권도 아직 나오지 않았던 때.

나는 도미노 피자 배달을 했다.

쿠지의 높고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피자 가방을 싣고 운전할 때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올려다보며 또 눈물을 흘렸다.


울면서도 생각했다.

‘그래도 이곳은 샌프란시스코처럼 아름답다.’


그로부터 어느덧 25년이 흘렀다.

쿠지에 살던 시절로부터도 20년이 지났다.


내가 앉아서 울던 나무 밑과 돌계단을 바라보며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되는 나의 현실이 감사했다


지나간 시절이 아련하고, 울고 있는 젊은 내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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