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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무거웠던 건 바벨이 아니었다

무게를 든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by 덕배킴

짐을 싸며 거울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피곤하고, 이유 없이 기운도 없고,

무언가 마음 안에서 자꾸 무너져 내리는 느낌.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럴 땐 더더욱 체육관에 가야 할 것 같았다.

마치 그곳만이 지금의 나를 붙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처럼.


가장 가기 싫은 날, 결국 운동복을 입었다


헬스장 문을 열었을 땐

괜히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익숙한 소리들 바벨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 내쉬는 호흡, 음악 그조차 오늘은

귀찮게 느껴졌다.


스트레칭도 건성으로 하고

첫 번째 세트에 들어갔다.

등 운동.

원래 들던 무게였지만,

유난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힘들지.”

그 순간 문득 든 생각.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건 운동 기구가 아니라

오늘 하루의 무게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운동은 내 감정을 묻지 않았다


운동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왜 이렇게 처졌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얼마나 버거운 하루였는지.


대신 나에게 시키기만 했다.

“한 번 더.”

“호흡 정리하고.”

“끝까지.”


누구보다 무뚝뚝한 방식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좋았다.

아무도 날 위로하지 않아서

나는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지켜낸 건 체력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운동을 끝내고 벤치에 앉아 물을 마셨다.

조용한 체육관 구석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내가 오늘 이겼다는 걸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를 지켜낸 하루였다는 걸.


그날, 무거웠던 건 바벨이 아니었다.


그건, 말없이 삼킨 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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