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퇴사는 3번 했지만 다른 기업으로의 첫 이직은 삼성 출신 후배가 세운 벤처기업이 처음이었다. 2011년에 세워진 회사인데, 2013년에 합류해서 보니 벌써 직원 수가 40여 명이나 되었다. 벤처기업에서 함께하게 된 직원들은 면면히 삼성에서 실력을 쌓았던 후배들과 이 분야 실력자들이 많이 모여있었고 새로운 반도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후배인 권 사장과 백 부사장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도 좋았다.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새 여러 투자사로부터 100억 가까운 투자금액을 유치했던 것이다. 새로운 제품 개발은 본인이 입사하기 전부터 국내 최고의 휴대폰 제조사인 LG전자와 세계 최고의 메모리 업체인 SK하이닉스와 함께 3자간 이미 상당한 비즈니스 협의를 진행하였고, 그에 맞는 맞춤형 반도체의 설계 역시 중반쯤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세계 최고 성능의 차세대 프리미엄급 LG폰에 채용되는 반도체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고, LG전자 신규 휴대폰에 들어가는 우리 제품이 LG의 자체 프로세서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제품 사이에서 오류 없이 가장 빠른 속도로 명령어만 잘 전달하게 되면 대박이 날 수 있는 구조였다.
우리나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분야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있고, 디램과 함께 플래시 메모리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삼성이던 하이닉스던 어느 업체와도 협력관계를 만들어 납품만 하게 된다면 벤처업체로는 성공적인 결말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제품이 잘 나오면 되고, 영업과 마케팅의 수장으로서 본인이 할 일은 그런 제품을 잘 포장해서 납품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삼성에서 갈고닦고 배우고 했던 것과 같이 개발 로드맵과 내부 프로세스를 잘 만들고 정기적인 업체 방문을 통해 제품의 일정을 발표하고 고객의 질문에 대응하면서 우리 개발 제품의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반도체라는 것이 정말 어려운 제품이다. 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검증방법이 더욱 정밀하게 요구되었고, 특히 자기만의 공정라인인 팹(Fabrication) 공장이 없는 팹리스(Fab-less) 설계 업체의 경우 아무리 좋은 검증을 통해 미리 완벽한 결과를 평가했더라도 최종 제품이 실제로 나와봐야 그 성공 실패 여부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권 사장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지금 이곳이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집합소였고, 이런 자원을 통해 설계된 제품 역시 팹 중에서도 가장 좋다는 대만의 TSMC 공정 팹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TSMC는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공정 프로세스와 정확한 일정으로 유명한 회사다. 다만 그에 걸맞게 다른 국내외 팹보다 가격이 비싼 것이 한 가지 흠이었다. 한번 사용료가 10억 이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10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고 해도, 한 두 번의 팹을 이용해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다음부터는 출혈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드디어 첫 시제품이 나오는 순간이 왔다. 그러나, 그토록 바랐던 첫 번째 시제품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못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검증 결과와 다르게 파워가 부족해서 제대로 된 아웃풋(Output)이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첫 결과를 받아 들고 모두가 허망하게 탄식하고 말았다. 혹시 중간에 로직 회로가 잘못되었는지 일일이 그 손톱보다 훨씬 작은 칩의 곳곳을 검증용 프루브(Probe)로 찍어보고 결과치를 비교해 봤다. 로직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결론은 역시 데이터를 인식하게 하는 기본 파워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많은 팹리스 업체들은 스스로 회로를 만들기 어려울 때에는 이미 만들어진 검증된 외부의 회로를 구매한다. 흔히 이것을 두고 IP를 구매한다고 표현한다. 돈이 없는 팹리스 업체들은 IP 하나하나 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자체적으로 설계를 하곤 했는데 이런 결정이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 같았다. 문제는 다음 계획을 빨리 세워야 하는데, 파워 회로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었다. 파워는 로직과 달리 공정과의 연관성이 아주 밀접했다. 어느 공정을 쓰느냐에 따라서 회로의 구성이 달라야 했는데, 그런 데이터에 대한 검증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만약 같은 이유로 예전 직장인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돈과 상관없이 금방 의심되는 회로를 수정해서 다시 투입했을 텐데, 한 번의 수정마다 10억 원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 어느 벤처 사장이라도 금방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다만 벤처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원은 사람이다. 밤을 새워서 다시 검증하고 또다시 검증하였다. 검증의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LG전자와 SK하이닉스에 왔다 갔다 하면서 수정된 제품 개발 일정을 들고 설득을 했다. 처음에 무척 호의적으로 우리를 대했던 대기업들은 마치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는 듯이 엄청나게 몰아붙였다. 친절했던 사람들이 점점 비난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상황은 본인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는 것이었다. 삼성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늘 "갑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남을 향해 죄송하다고 믿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하게 되면서 점점 자존감이 상하고 일에 대한 자신이 없어졌다.
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후배 중에 한 사람이 괴로워하는 본인을 향해 이렇게 얘기하면서 위로한다.
"형님, 영업하는 사람이라면 고객에게 욕먹는 것도 월급에 포함되는 겁니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시간은 흘러갔지만 결코 우리 편은 아니었다. 회사를 운영해야 하기에 40여 명의 직원들의 월급은 자꾸 지출되어가고 그런 상태로 몇 개월이 흘러가니, 나를 비롯한 경영진들의 신경도 점점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의 이사진을 뺀 사람 중에서 가장 월급을 많이 받는 사람이 본인이었기 때문에 더 부담이 되어 버렸다. 벤처기업이 하루라도 더 유지하기 위해 운영 비용을 낮춰주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쉬웠지만 그 회사에서 1년 반 정도 일을 하고 물러났다. 벤처기업의 특징은 결정의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을 위해서 위험 리스크를 직접적으로 감수하는 것도 필요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 회사는 큰 성공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매출이 나올 정도로 사업 궤도에 올라왔다고 한다. 당시의 실패 경험을 통해 안정적인 기술개발을 이뤄낸 결과였다. 같이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 회사의 승승장구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2021년 1월 중순, TV 뉴스에서 LG전자 모바일사업부가 철수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몇 개월 뒤 LG는 더 이상 스마트폰을 개발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한국을 대표해서 전 세계 최고 성능의 휴대폰을 생산하던 LG의 철수가 못내 아쉬웠던 것은 그들과의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 때문이다. 경쟁사 모바일폰 업체인 삼성을 이기기 위해, 그리고 애플을 이기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연구원들과의 치열했던 토론, 다양한 기회를 보장하려고 했던 경영진들의 아낌없는 후원도 결국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과의 추억은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