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중소기업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할 줄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달랐다.

by 이글파파

비록 본인은 CEO가 아니었지만, 직원의 입장에서도 소속회사가 코스닥(KOSDAQ) 상장하는 것을 직접 본 경험은 특별했다. 그런데 그 흥분의 기쁨은 곧 나에게 많은 도전을 하게 만들었다.


벤처기업에서 나온 지 한 달 뒤에 한 중소기업에서 임원을 뽑는다는 연락이 왔다. 삼성 출신 직원들 중에서 부장급 역임한 인력을 찾았고 전문성을 인정해 중소기업에서 임원으로 입하는 중이었다. 바로 면접을 보고 채용이 결정되었다. 본인이 합류하게 될 중소기업은 삼성 TV에 주력 부품으로 들어가는 LED(Light Emitting Diode, 발광다이오드) 칩을 생산하는 업체였다. 삼성 LED 재직 시절에 경험을 했던 LED 덕분에, LED 칩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취직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동 회사는 당시 창업한 지 5년 이 넘었고 반도체 공정 생산라인도 있었다. 200명 이상의 직원이 매년 400~5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성장가도의 기업이었다. 앞서 일을 했던 벤처업체와 달리, 탄탄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어 일단 그 부분은 안심이 되었다.


카이스트 박사 출신인 대표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고, 처음 만나는 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그런 면에서 잘 통했다. 그와 대화할 때면 정직함이 묻어있었다. 더불어 사업적으로도 수완이 뛰어난 기업가였다. 이 기업은 당시 영업이사가 필요했고 사실 본인은 영업의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선택되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회사 매출의 90프로 이상이 L사를 통해 나오는 안정적인 매출 구조였기 때문에 비록 영업담당이지만 수많은 업체를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본인이 영업하게 될 대상 기업인 L사는 과거 삼성 LED 재직 시절 같은 삼성전자 TV부문을 고객으로 LED 모듈을 납품하던 두 회사 중 하나였다. 결국 말만 갈아타서 다시 삼성 TV 납품하는 LED 제품의 절반을 담당하는 역할을 도전하게 된 것이다. 세상만사 모르는 것이다.


입사하고 나니 이 회사는 2015년에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자리에 앉자마자 IR자료와 다양한 기업소개자료 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미 그런 종류의 자료는 전 회사에서도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만들어봤기 때문에 입사하자마자 신나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15년 6월, 당시 세계 LED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던 터라 동종 업계에서는 쉽지 않을 거라는 편견을 뒤집고 코스닥 상장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고, 본인은 비록 입사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다니는 회사의 코스닥 상장 순간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앞으로 매출을 잘 유지하기만 하면 편안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함께 말이다. 그런상장 후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요청사항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500억 원이 넘는 매출의 90% 이상이 한 회사로부터 나오는 구조였기 때문에 매출 다각화를 위한 노력을 해 달라는 요구가 여러 증권사와 투자사로부터 오고 있는 것이다. 코스닥에 상장하면 더 이상 개인회사가 아니다. 주주가 수천 명 또는 수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수많은 주주들의 의견과 함께 경영간섭(?)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전 세계 LED 시장은 TV용 LED와 조명용 LED로 구분되었는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의 TV 시장을 주름잡았기 때문에 한국업체들은 TV용 LED에서 어느 정도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했지만, 조명용 LED 시장은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자금 및 세제 지원과 직간접 투자를 통해서 엄청난 양을 생산했고 이로 인해 터무니없는 시장 가격으로 세계 시장에 제품을 뿌리고 있었다. 한국도 2000년 초반부터 LED 제조기업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한국 회사들이 조명용 LED를 만들어 보려고 해도 도무지 가격적으로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라 버티지 못했다.


다행히 당시 중국의 TV업체들은 아직 세계시장에서 삼성이나 LG전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 업계에서 고성능 LED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장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중국 심천에 있는 업체에 가서 우리 회사의 제품이 삼성 TV에 들어갈 정도의 고성능 제품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 자리에서 담당자가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삼성 TV를 뒤따라가는 업체입니다. 삼성보다 더 좋은 성능의 TV를 더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아야 제품이 팔립니다. 그러니 당신의 제품을 지금보다 최소 30% 더 싸게 공급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매할 수 없습니다."


아니 지금 세계 1위 하는 삼성 프리미엄 TV에 납품하는 제품보다 더 좋은 성능의 제품을 삼성보다 더 싸게 팔라는 그런 요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샘플을 들고 가고, 다른 기업 찾아가 봤지만 그들의 가격 요구 수준을 맞추기는 너무 힘들었다. 중국 외에 별다른 시장을 찾지 못했던 필자는 6월에 회사 상장한 이후 오로지 중국 출장만 계속 가게 되었다. 한 번은 아침에 가서 새벽에 돌아오는 무박 2일 출장을 가기도 하고, 일주일에 2번이나 중국을 가는 일도 생겼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은 우리 상품의 성능 스펙을 가지고 이런저런 요구사항만 늘어놓았을 뿐 정작 제품을 쓰겠다는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성능이 요구 수준에 잘 안 맞는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결국 가격을 가지고 핑계를 삼았다. "기승전 가격"의 논리다. 국내 생산으로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구조였다.


중국의 TV업체와 별개로 국내에서는 규모를 가리지 않고 조명업체들을 찾아 일주일에 2~3개 업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 내 유명한 전통의 조명업체들은 이미 그들만의 LED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었고, 추가하려는 공급망 계획은 전부 중국 업체로 결정을 하고 있었다. 조명용 제품의 색온도는 당시 재직한 업체에서 생산하는 TV용 제품과 스펙이 달랐고, 원가를 줄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업체 입장에서는 정보만 확인했을 뿐 조명향은 거의 포기를 결정해야 할 판이었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무엇을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그런 시간이 몇 개월째 흘러갔다. 그랬더니 더 이상 체력이 버티지 못하였다. 그 해 연말에 그동안 잠잠하던 두통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되는 강행군은 다시 몸의 경고로 나타나고 있었다. 한 번 경험을 한 이상 더 이상 버틸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대표에게 사직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도전하는 인생을 멈추고 이제 당분간 쉬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안 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에 보다 더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나와 회사 모두를 위해 필요했던 것 같다. 당시 회사의 매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전체 매출의 5% 때문에 95%의 매출을 일으키는 고객을 소홀히 할 뻔했던 것이다. 자원 리소스(Resource)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은 "선택과 집중"이 오히려 더 최선일 것이다. 주주분들에게 그런 것을 더 설명하려고 애를 썼으면 아프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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