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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Jul 09. 2021

아차차!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가는 길은 항상 설렌다. 물론 무역센터 지하 1층의 쇼핑몰 구경도 즐겁지만, 전시장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를 보면 세상의 흐름을 미리 보는 것 같아 뿌듯한 느낌이 있다. 어떤 때는 보고 싶은 전시를 보고 난 후에 바로 옆 전시에서 또 다른 정말 재미있는 전시 또는 먹을거리 전시가 열리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입장료 5천 원이 아깝지 않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전시회를 거의 가 보질 못했지만 이번엔 전시 참여업체의 자격으로 가게 되었다. 전날 늦게까지 전시 컨셉의 세팅을 끝내고 드디어 전시 첫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강남은 평소에도 워낙 붐비는 곳이라 오랜만의 출근길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분당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코로나고 뭐고 늘 붐빈다. 그래서 전철 안에 들어서면 앉아서 가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붐비는 전철 속에 조용히 서 있는데 한 정거장만에 앞에 앉아 있는 중년 여성이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 문으로 향한다.


'앗싸! 운이 좋아~'


잠시 좌우를 살펴보았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느라 빈자리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연로한 분이 없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하고 안심하며 조심스레 나를 위한 그 자리에 앉는다.

출처 pixabay


환승역에 내리기에 앞서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편한 전철여행으로 시작한 하루가 되었기에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진다.


그런데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갑자기 허무함을 느꼈다.


코로나 이후로 마스크는 의무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의 감정이나 모습을 얼굴 전체가 아닌 눈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 나이답지 않은 동안이라 불리던 사람이다. 그런데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마스크로 가려진 부분을 제외하고 보니 반백의 머리를 한 영락없는 노인이다.


'아차차... 염색을 안 했네!'


그리고 나니 전철에 앉을 때가 생각났다. 자리가 났을 때 내 양옆의 젊은 사람들은 빈자리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배려한 것이다.


'이런.'


기분 좋게 시작했던 전철여행이 갑자기 허전해졌다. 아직은 그런 배려 사양한다. 오해(?) 하지 않도록 처신하기로 했다.


오늘 퇴근 후 바로 염색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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