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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Nov 06. 2024

커피 이야기

커피를 알게 된 사연

매일 3잔에서 4잔의 쓴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처음 커피를 마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 사람은 어렸을 때 부엌 찬장에 있던 사각 진 커피병과 옆 찬장에 있는 커피잔 하나를 꺼내서 직접 믹스해 먹었다. 맥스웰 그래뉼 커피 2스푼에, 설탕 2, 프리마 프림 2개를 넣어 즐겨 먹던 시절은 아마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독서실 입구에 놓여있던 커피 밴딩 머신은 기계마다 맛의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언제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그에게 위안이 되어주었고, 매일 2~3번씩 기계에 동전을 넣어가며 커피를 먹었는데, 어느 날 독서실 실장님의 청소하는 광경을 보고 그 속의 지저분함에 너무 놀라 커피 흡입을 잠시 멈추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고 난 후 첫 회의 시간, 어느 날 누군가 맥심 봉지를 찢어서 하얀 종이컵에 붓고,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컵의 중간보다 조금 더 넣더니 내용물을 털어 넣은 믹스 봉지의 가운데를 길게 접은 후 세워서 휘이휘이 저어서 주었다. 기계에서 빼먹던 맛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있었다. 며칠 후, 그 조직의 일원이 되고 나니, 선배들이 그 보고 그렇게 해서 가져다 달라고 한다. 여기서 핵심은 물의 양이었고 사실 정확하게 물만 맞추면 되는데, 그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커피는 같은데 맛은 매일매일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선배는 회의 때마다 커피 믹스 봉다리를 입으로 뜯고, 그 안에 커피와 설탕과 프림을 조금씩 입에 털어 넣으면서 회의를 하던 기이한 장면도 기억을 해 본다.


나이 40대 들어설 때까지는  커피는 습관이었고,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었으며, 쓴 것은 맛없고, 달콤한 설탕과 부드러운 프림의 조화를 곁들인 초콜릿 맛이 나는 믹스커피만 인정하곤 했다.


한국에 스타벅스가 생기고 수많은 카페가 있어도 진한 에스프레소 스타일의 아메리카노와 다양하고 이색적인 커피 문화는 그에겐 그저 비싸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었다.




유학을 다녀오고, 오랜만에 친구를 삼성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코엑스에 있는 "테라로사"였다. 


그전에도 사업상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건물 1층 카페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주문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기도 했었는데, 그 친구는 거기 커피를 마셔볼 것을 권유했다. 사실 특별한 직업이 없었던 그 친구는 마음엔 언제나 여유가 있었고, 그때 당시에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 테라로사의 커피 집을 거의 매일 아침 들른다고 했다. 친구의 '요상한 취미' 정도로만 알았던 그 사람에게 다가온 그집의 커피맛은 정말 잊지 못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 같은 아메리카노인데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맛의 풍부함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달고, 초콜릿 같은 커피를 먹던 사람이 처음 '커피 문화 충격'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그 후엔 여러 카페를 방문해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그곳만의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일.부.러 먹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던 40대 후반에 합류했던 회사의 공간은 업무용 사무실이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용 공방이었다.


그곳의 임직원들은 아침마다 원두커피를 내려 마셨다. 나무 베이스 몸통을 가진 핸드밀로 원두를 직접 갈았고, 하얀색 필터지를 넣은 홀더를 유리병 위에 얹어 놓은 다음, 그 속에 곱게 간 커피원두를 넣고, 작고 기다란 입구를 가진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물을 졸졸졸 둥글게 둘렀다.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나중엔 위에서 내리는 속도에 맞춰서 아래 구멍에서 바닥으로 커피 향을 머금은 검은 물줄기가 가늘게 떨어졌다.


처음엔 진한 검은색을 띠더니, 조금 있으니 투명한 갈색으로 변했다. 이전에는 늘 머그컵 또는 종이컵에 진한 색의 커피를 받아먹던 사람이었는데 투명 유리컵에 드러난 커피색을 처음 알게 되어 신기했고, 그 맛에 또 놀랐다.


그리고 곁들인 커피 원산지 이야기로 삼십 분을 서로 얘기하니, 매일 바쁘고 지쳤던 예전의 직장생활과 다른 여유로움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커피는 쓰고, 또 카페인 때문에 하루에 수 잔 이상 마시면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각기 다른 종류의 커피를 먹었음에도 스트레스받을 때, 몸이 힘들 때, 누구와 편하게 대화하고 싶을 때 같이 곁에 있어준 고마운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은 또 어떤 커피가 그의 하루에 같이 머물러 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니 설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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