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CHO Oct 08. 2024

심장까지 쫄깃했었다. 런던에서 도버까지

여섯 번째 목적지, 런던

다음 날 아침, 호야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야에게 심각한 얼굴로 의논을 청했다.

실은 그때까지 유로 스타로 벨기에로 들어가는 티켓을 끊지 못한 상태였다.

이건 분명히 내 실수였다. 에어버스 투어 때문에 모든 일정이 다 재조정했어야 했던 상황에서 파리로 들어오며 파리-툴루즈 기차표를 샀고, 런던으로 들어오는 라이언 에어 티켓도 툴루즈에서 샀는데 가격도, 티켓도 별문제 없이 구할 수 있어서, 관성적으로 런던-브뤼셀 행도 구하기 쉬울 줄 알았다. 허나 유로스타도, 비행기 티켓도 모두 1인당 300파운드에 육박했다. 호야가 유로스타를 너무너무 타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브뤼셀로 갈 것인지, 이 문제는 호야랑 의논을 해서 결정해야 했다. 사실 그전부터 호야가 계속 나에게 어떻게 브뤼셀로 갈 것인지 물어봤는데, 이를 한 귀로 흘려버린 것이다. 역시 아들 말을 안 들어 이런 사단이 났다.

호야, 엄마가 미처 런던에서 브뤼셀로 가는 티켓을 못 구했어. 엄마가 밤에 알아보니 유로스타를 타고 가면 한 사람 당 티켓이 250달러지만, 2시간이면 브뤼셀까지 갈 수 있어. 그만큼 더 런던에서 있을 수 있어.
근데 티켓 가격이 너무 비싸서 엄마가 알아보니 Flix Bus 타고 가면 87달러면 갈 수 있는데, 대신 9시간을 가야 해. 엄마가 알아보니 이 버스를 타고 바다도 건너야 한대. 버스 탄 채로 배도 탄다는 거야. 어떻게 할까? 엄마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호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버스를 웬간히 좋아하는 녀석인데, 바로 대답을 못하는 걸 보면 그만큼 유로스타도 타고 싶었나 보다. 다음에 꼭 다시 호야랑 유로 스타 타고 런던에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아들한테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유로스타는 그럼 다음에 타요, 엄마. 난 플릭스 버스 타고 가는 것도 좋아요. 대신 다음엔 꼭 유로스타 태워주세요!


결정과 동시에 나는 플릭스 버스 티켓을 샀다. 런던까지 가는 버스가 12시 50분에 출발했다. 호야랑 전속력으로 짐을 싸고 호텔에 체크아웃한 후, 짐을 컨시어지에 맡겨놓고 즉시 나왔다. 이제 런던에서의 1분 1초가 아까웠다. 어제는 못 본 타워 브리지에 가기로 하고는 런던 버스를 타러 나왔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버스 안은 제법 한산했고 날씨 역시 청량했다. 호야랑 런던 타워랑 타워 브리지를 보고 난 후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난 후 산책하며 남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파리의 어마무시한 교통 체증을 경험한 바 있어서 런던에서도 빨리 움직여야겠다 생각했다.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 아닌가.


그렇게나 보고 싶어했던 타워 브릿지. 직접 타워 브릿지에 데려가면 레고 타워 브릿지를 사주지 않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제는 날씨가 그리 화창하더니, 오늘은 날이 꽤 흐리다. 아침인데도 런던 타워가 왠지 으스스하다. 이 부근에서 아침. 호야는 스타벅스, 나는 Paul에서

 

런던 타워 부근에서 호텔에 맡겨 둔 짐을 찾으러 버스를 타고 템즈 강을 건너갔다. 저 멀리 타워 브리지가 열린 것이 보인다. 2015년에 런던에 왔을 때, 호야에게 보여주려고 저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주었었다. 그 동영상을 보며 감탄하고, 좋아하던 우리 아들. 아마 그래서 더더욱 레고 타워 브리지를 가지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는데, 그 맘을 너무 몰라준 것 같아 새삼 미안했다. 다리가 열리는 저 모습을 보고 싶었을 텐데.. 못 보고 런던을 떠나는 줄 알았다. 이렇게 버스에서라도 호야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자, 감상적인 이야기는 이제 그만. 이제부터는 심장 쫄깃한 좌충우돌 우당탕탕 소동기 시작.

호텔에 돌아오니 10시 50분. 12시 50분까지 2시간이 남았다. 구글 맵을 찍어보니 우리가 버스를 타야 할 스트랫포드 역은 런던 동쪽에 위치해 있었고, 약 16분 정도가 걸린다고 나왔다. 런던에서 브뤼셀 가는 버스는 스트랫 포드랑 그리니치 역 두 군데가 있는데,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니 스트랫포드역에서 그리니치역을 지나 도버 해협으로 가는 것 같았다. 더 호텔에서 소요되는 시간은 비슷했지만, 그래도 가까운데 그리니치역이 있었는데, 왠지 스트랫포드로 가고 싶었다. 이 결정은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  스트랫포드를 찍은 것은 순전히 직감이었지만, 수능에서는 안 통했던 이 '감'이, 이번에는 제대로 통했다. 다행히도 말이다.

스트랫포드 역이 낯선 곳이기도 하니 미리 가 있는 게 좋겠다 싶어 좀 이른 감은 있었지만 바로 우버를 불렀다. 11시 15분 정도에 출발했으니 12시면 도착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러면 스트랫포드 역에서 좀 헤맨다 해도 출발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우버 기사는 어제 우리가 걸었던 그 루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관광객들로 붐볐던, 빅벤을 지나 강변 북로를 따라 관광객들이 몰려다니는 그 루트를 지나 동쪽으로 이동했다. 엄청난 인파 속을 뚫고 간신히 런던 중심부를 통과한 후, 이제 좀 속도 좀 내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런던에는 외곽 순환도로가 없는 걸까? 이 우버 기사는 계속 시내를 가로질러 간다. 신호등에 걸려 가다 서다를 계속 반복하더니 급기야는 차가 밀려 꼼짝하지 않는다. 이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고, 원래 도착 예정 시간으로 생각했었던 12시는 포기. 버스 회사에서 안내한 승객 소집 시간인 12시 15분 전까지만 도착해도 다행이겠다 싶었다. 예상치 못한 교통 체증이 왜 생긴 건지 우버 기사는 이리저리 찾아보더니, 오늘 스포츠 관련 축제가 이 지역에서 열린단다. 그러면서 스트랫포드 역까지 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단다. 그때가 이미 12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늘 이 버스를 못 타면 그다음엔 어떻게 하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무조건, 무조건 버스를 타야 한다!! 차라리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으로 넘어가는 건 어떨까 싶어 기사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는 차가 밀리기 전이라면 그리니치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도착 시간은 대동소이하단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호야도 옆에서 불안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버스 타야 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아 가는데 어떡하지?
이거 못 타면 우리 집에 못 가잖아! 어쩌지? 어쩌지?


나도 안절부절, 호야도 안절부절, 불안해서 둘 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상황에서 최악은 불안함 때문에 둘 다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 서로 감정 컨트롤 못하고 애랑 싸우기라도 하는 거다. 자폐인의 특성상, 나보다 호야가 더 불안할 것임은 분명했다. 불안해서 손톱을 계속 잡아 뜯는 호야, 이대로 두면 결국 폭발할 것이다. 조용히 호야의 손을 일단 잡았다.

호야, 기사 아저씨도 지금 최선을 다해 빨리 가고 계셔.
사실 지금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은지 엄마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집에 못 가는 일은 없어. 어떻게 해서든 엄마가 널 데리고 브뤼셀로 갈 거야. 그러니 엄마 믿고 귀 활짝 열고 있다가, 엄마가 뛰자고 하면 뛰고, 엄마가 짐 들자면 들어줘. 지금은 네가 해야 할 일은 그거야. 알았지?


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사에게 우리 목적지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내려주면 러기지를 밀고 뛰어갈 테니, 최대한 안전하고 가까운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계속 이야기했다. 기사도 그렇게 해 주겠다고 했다.

차창으로 빗방울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저 빗 속을 뚫고 러기지 2개와 배낭을 메고 버스 승강장까지 가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브뤼셀로 가야 집에 갈 것 아닌가.

우리를 내려 주려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우리를 내려주려고 차를 막 대려던 그 시점부터 정체가 슬슬 풀려 차들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가더니 기사가 웬 구름다리 초입부 막다른 골목에 차를 댄다. 구름다리 아래에는 엄청난 수의 기차들이 정차되어 있었다. 그는 구름다리를 가리키며 일단 저 구름다리를 건너란다. 그러면 광장이 나오고, 광장 오른쪽으로 가면 에스컬레이터가 나온다고 한다. 그걸 타고 올라가 승객들에게 Flix Bus 정류장을 물어보란다. 이 방법이 자기가 보기엔 가장 확실할 거라고 한다.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행운을 빌어 달라고 했다. 그는 웃으며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을 교차했다. 그때는 이미 12시 4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호야, 뛰어!

내리자마자 호야는 큰 러기지, 나는 작은 러기지를 들고 미친 듯이 뛰었다. 다행히 비는 그쳐있었다. 엄청 긴 구름다리를 건너고 나니 다행히 바로 광장과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사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Flix Bus 정류장을 물어보았다.

아는 사람이 없었다. 거의 울 것 같은 내 표정이 안 되었는지, 한 무리의 아프리카계 아주머니들이 자기를 따라오란다. 아래층에 경찰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확실하다며, 자기들이 경찰에게 데려다주겠다는 거다. 그러면서 괜찮다고, 버스 탈 수 있을 거라고, 경찰들이 도와주면 뭔가 방법이 나올 거라며 우리를 계속 안심시킨다. 경찰을 만난 아주머니들은 내가 말할 사이도 없이 앞다투어 우리의 상황을 막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경찰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와 같이 뛰어다니며 버스 정류장을 찾아주었다. 역시 아줌마들의 오지랖은 전 세계 공통인 듯. 급해서 그녀들에게 제대로 고맙다고 인사못하고 헤어진 것이 참 안타깝다.


고생해서 우여곡절끝에 찾아간 플릭스 버스 정류장. 아무리 찾아도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시간은 1시가 넘어있다. 주저앉아 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법. 주변 승객들에게 플릭스 버스 정류장 맞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여기는 메가 버스 정류장이고, 플릭스 버스 정류장은 한 블록 더 가란다. 그러면서 그들이 손가락으로 지시한 곳을 보니, 어머!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줄 선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진 나와 호야는 서둘러 그 줄로 가서 그들의 목적지를 물었다. 맞다. 자기들도 브뤼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인데, 차가 막혀서 아직 버스도 도착하지 않았단다. 만세!


이 버스를 타려고 나는 그렇게도 미친듯이 뛰었나보다..

버스는 1시 15분 정도에 도착했다. 나름 국제 버스인지라 여권으로 승객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짐 실고 하는 사이에 시간이 또 훌쩍 지났다. 거의 2시가 다 되어 1시간 늦게 출발을 했는데, 역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도 교통 체증 때문에 쉽지 않았다. 여정이 계속 딜레이가 되고 있었고, 나는 기사 바로 뒷좌석을 미리 예약한 덕에 바로바로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기사가 플릭스 버스 본사인지, 메인 통제실인지와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상황을 전달하더니 급기야는 예약된 페리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리니치 역은 들르지 않고 바로 도버로 가겠다고 전달했고, 통제실에서도 이를 승인했다. 이 상황을 뒤에서 들은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내가 스트랫포드역이 아니고 그리니치를 선택했더라면!! 보아하니 그리니치 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에게는 제대로 상황이 업데이트조차 안 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승객들은 뭔 죄인지.. 그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내가 다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이 정도 전산 시스템도 갖춰놓지 않고 사업을 하는 플릭스 버스에 적잖이 실망했다.

기사는 승객들에게 페리 시간 때문에 바로 도버 해협으로 갈 것이라고 공지했다. 그러고는 그리니치역에서 내려야 할 승객들이 있는지 물었다. 곧 2명의 승객들이 앞으로 나왔다.

그중 한 명은 올 때부터 내 자리에 앉아 있었던 중동계 남자였다. 나는 이 좌석을 돈 주고 샀는데, 그는 좌석 지정하지 않고 비어있는 내 자리에 앉아 스트랫포드까지 온 것이었다. 그는 기사에게 자기의 목적지는 브뤼셀이고 원래는 그리니치에서 친구들이 합류해 함께 브뤼셀로 갈 예정이었으나, 이 버스가 그리니치 역에 내리지 않으니 자기는 친구들 쪽으로 가겠단다. 그들의 대화에 비추어볼 때 그나마 이 남자의 친구들 덕에 이쪽 상황이 그리니치쪽 승객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기사는 두 사람에게 여기서 그리니치까지 가는 비용을 플릭스 버스 측에 청구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이 두 승객이 내린 곳은 고속도로 출구 옆, 시골 버스 정류장 같은 런던 외곽의 버스정류장이었다. 버스나 올까 싶은, 그런 외진 곳이었다. 놀라운 것은 단 한 번도 기사가 승객들에게 “ Sorry”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이 점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하긴 교통 체증이 기사의 잘못으로 생긴게 아니니 기사가 미안해야 할 문제가 아니긴 하다. 


버스는 런던을 빠져나와 계속 남동쪽으로 향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 기억에 4시 즈음까지는 항구에 도착해야 페리 승선에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팔자에도 없는, 영화' 덩케르크'의 현장, 도버 해협에 도착했다.  

버스는 체크인을 하고 차량에 따라 다른 차선을 이용해 같은 차량끼리 주차 대기한다. 우리도 승선 대기중인 버스에서 하차해 휴게소로 들어갔다.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내려와 간신히 도착한 곳, 도버 해협.

처음엔 9시간 넘게 버스 타고 브뤼셀까지 간다는 계획이 무모하고 어이없어 보였으나, ‘도버 해협에 와 본 비 유럽인이 몇 명이나 될까’ 싶은 생각이 들어 나쁘지만은 않았던 선택 같다. 무엇보다 탈 것을 좋아하는 호야의 RTW 여행이 이 버스와 페리로 더 완벽해지고 풍성해졌다. 비록 유로스타는 못 탔지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