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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Apr 22. 2017

선생님의 인내심. 그리고 수학여행

사람들은 각자 최소한 한 가지씩 복은 타고납니다.

그중 최고의 복은 무엇일까요?

전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좋은 친구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복'까지 있다면 더 좋겠죠.

헌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복은.. 일정 부분 나한테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유유상종이니까요.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헌데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은 그야말로 복불복입니다. 매 학년마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게 될지 학부모로서 마음 조리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저희 큰 아이가 바로 이 복이 있는 아이 같습니다.

킨더 때부터 지금까지 각 학년에서 저희 아이를 가장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생님들과 함께 해 왔습니다. 저희 아이가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좀 예민하고 특별한 부분이 있어서 학교에서 배려해 준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손 많이 가는 학생'이거든요. 이런 학생을 배려해 주는 미국 교육 시스템이 고맙고 또 부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힘든 학생임에도 학기 말마다 선생님들께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호야와 1년 동안 함께 일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의 팀의 일원이어서 너무 기쁘다.

저희 아이가 오늘 4박 5일의 수학여행에서 돌아옵니다.

('수학여행'이라는 단어가 이리도 아프게 느껴질 줄 몰랐습니다.)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이 저희 아이에겐 정말 엄청난 도전이었답니다. 

언급했다시피 다른 아이들보다 어리고, 예민하고, 쉽게 아이들 그룹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겉도는 아이거든요. 선생님들께서 신경을 많이 써 주시긴 하지만, 전체 학생들의 안전을 5일 동안 책임져야 하는 선생님들에겐 조금은 부담스러운 학생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귀찮은 학생'이죠.


보내기 전부터 과연 저희 아이를 보내야 하나.. 하는 갈등을 저랑 남편 둘 다 했습니다.

안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물론 했죠.

심지어 안 가기를 바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시는 한 선생님께 마음도 살짝 상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이는 스스로 이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했고, 5일 동안 잘 지내다가 오늘 옵니다.

정말 눈물 나게 큰 발전입니다.

이 발전을 이루어 낸 데에는 초등학교 시절의 한 선생님의 공이 컸습니다.

바로 High Tech Elementary의 Outdoor Leadership 선생님이신 Mr. Scott입니다.

http://www.hightechhigh.org/hte/staff-directory/


5학년 마지막 프로젝트는 '해양 생태계의 파괴'에 관한 것이었어요.

이때 해양 생태계가 얼마나 크게 파괴되었는지 실태 조사 차, 1박 2일 일정으로 캠핑을 갔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Outdoor Leadership 과목과 코웍하는 프로젝트였으므로 담임 선생님 Mr. Cohick과  Outdoor Leadership 교사인 Mr. Scott 두 분이 인솔하셔서 다녀왔어요.


캠핑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우리 아들도 신나서 캠핑을 떠났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갑자기 겁이 났나 봅니다. 무섭다고, 집에 가고 싶어 한다고 Mr. Scott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어요. 저녁은 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케익 팩토리에서 먹기로 했었는데, 일단 작은 아이를 달래 놓고 캠핑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도착해 보니 아이는 좀 진정이 된 상태였습니다. 저희를 보더니 안심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집에 가겠다는 아이를 선생님이랑 함께 설득을 했어요.

엄마, 아빠가 저녁을 먹고 다시 여기로 오겠다..
만약 여기가 너무 무서워서 친구들이랑 정말로 못 잘 것 같으면 너를 집으로 데려갈 테니 걱정 말아라. 일단은 여기서 친구들이랑 오늘 일정을 끝까지 마치자..


아이는 동의를 했고 그 덕에 작은 아이와 약속을 지키러 치즈케익 팩토리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 시간인 9시경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갔지요.

생각보다 아이는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무서움을 달래주고 간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일단은 숨어서 아이를 보고 있었는데, 귀신같이 저희를 알아보고 다가옵니다.

이때부터 Mr. Scott 선생님께서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하시더군요.

오늘 네가 하루 종일 얼마나 열심히 놀았으며 힘든 일정을 소화했는지 생각해 보자.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눕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분명 눕기만 하면 금방 잠이 들 거라고요. 생각보다 네가 잠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요. 

아이는 난처한 표정으로 저희를 바라보더군요. 도와달라는 거죠. 집에 갈 수 있도록.. 

그래서 저희도 함께 설득을 했습니다.

네가 잠들 때까지 엄마, 아빠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 선생님 말씀대로 일단 해 보자. 만약 선생님 말씀이 틀리면 집에 데려갔다가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널 여기로 데리고 오겠다.. 그러니 걱정 말아라..

한 참을 선생님과 설득했지만 아이가 마음을 돌리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미 집으로 가려고 마음을 정한 듯했습니다. 솔직히 저희가 먼저 지쳐서 그냥 집으로 데려올까 했는데, 진짜.. 부모도 아닌 선생님이 더 적극적으로 아이를 설득하시더군요. 

한 번 해 보자. 선생님을 믿어봐라. 분명 너는 할 수 있다..

한 30분간을 그렇게 아이랑 설전을 했난 봅니다. 결국 아이는 마음을 돌렸고 잠들지 못하면 집으로 가겠다는 약속을 받고는 텐트로 돌아갔습니다.

텐트로 보내고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남편이랑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솔직히 내 자식이지만 포기하고 데려가고 싶더라.. 한데 끝까지 아이를 설득하는 선생님의 열정과 인내심이 너무 감사하다.. 부모인 우리보다 낫더라.. 만약 오늘 아이를 데려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고..

한 30분이 지났나..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웃으시면서 애가 잠들었다고 알려주시네요! 그 순간 '드디어 해냈구나' 하는 기쁨에 눈물이 핑 돌더라는..


다음날 아침에 만난 아이는 스스로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얼굴이었어요. 

처음으로 자기도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했다는 뿌듯함을 느낀 얼굴이었죠.

이 경험이 오늘 새로운 도전을 해낸 밑거름이 아니었나, 앞으로 닥칠 도전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봅니다.


그 이후부터 저희 아이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이 여전히 겁나고 힘들지만, 극복해 나가는 방법을 시행착오를 통해 하나씩 스스로 터득해 가고 있습니다.

시행착오가 용인되고, 심지어 환영받는 미국 교육에 감사합니다.

약자가 배려받는 미국 교육 시스템에 감사합니다.


만약 작년에 아이가 하루의 캠핑을 가지 않았더라면, 혹은 끝내 잠을 못 자고 집으로 왔더라면, 

이번 주 4박 5일의 수학여행을 가겠다고 했을까,

첫날 밤을 잘 수 있었을까,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일정을 무사히 다 마칠 수 있었을까,

전체 4박 5일 동안 단 한 번의 호출도 없이 마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일주일 내내 Mr. Scott에게 감사했던 한 주였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절대적입니다.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분들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아이들 또래 집단에서 위치도 달라집니다.

선생님이 무시하는 아이는 아이들도 무시합니다.

선생님이 존중하는 아이는 아이들도 존중합니다.

남들과 달라 쉽게 아이들 또래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존중이 더욱 필요합니다.


이 땅의 모든 좋은 선생님들, 

Mrs. Rayle, Mrs. Luun, Mrs. Wong, Mrs. Nielson, Mrs. Wheeler, Mrs. Yamamoto, Mrs. Phyllis, Mr. Cohick, Mr. Scott, Mr. Zac..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호야의 오늘을 여러 다른 부분에서 조각해 준 분들입니다.


사랑합니다.


2017년 4월 21일

샌디에고 호밀리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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