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강남소방서 소방사 인터뷰 (2023년 12월)
경남 창원의 한 터널 안이 뿌연 연기로 가득하다. 터널에 진입한 차량 한 대가 멈춰 서더니 정장 차림의 사내 세 명이 뛰어나온다. 한 명은 사고 차량 운전자를 즉시 대피시키고 주위 차량을 통제한다. 나머지는 터널 안의 소화전을 찾아내어 한 명은 관창(호스 앞부분)을, 다른 한 명은 호스줄기를 펼쳐 들며 거침없이 불길 앞으로 다가간다. 신속하게 초기 진화를 한 덕분에 큰 사고로 번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세 사람은 동료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던 소방관들이었다. 화마를 마주친 순간, 아무 보호장비 없이 본능적으로 화재 진압에 뛰어들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밥을 먹으면서 우연히 이 뉴스를 본 순간, J의 시선이 TV에 묶였다.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히어로 같고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아무 장비도 없이 그 불길을 진압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거기서 한 번 꽂혔고요. 소방관들이 재난이 났을 때 사람들을 도와주는 직업이었구나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소방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년 10월,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J는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따지자면 ISFJ로 반박불가한 내향형 인간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이 결코 아니다. 지인 모임에서조차 자신에게 여러 시선이 집중되면 긴장하는 편이다. 이런 성향은 일반 기업에서 일을 하기에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고 직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사업체에서 일할 때는, 평일에 영업을 하고 주말에는 이사 현장에서 일을 도와주기도 했어요. 제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다 보니까 영업하는 건 너무 힘들더라고요. 말도 잘 못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요. 근데 오히려 현장에서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하고 힘을 합쳐가면서 일을 끝마쳤을 때는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현장에서 협동을 하며 일할 수 있는 직업. 생각할수록 소방관만큼 적격인 직업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J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품게 된, 이 꿈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2021년 소방공무원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물론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아무래도 부모님의 허락이죠.”
30대 후반에 접어든 외동 아들이 소방관이 되겠다고 하니, 부모님의 반대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다. 인생에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린다면 붙을 것 같았다. 아니, 붙어야만 했다. 10대 때 품었던 전투기 조종사의 꿈처럼 마음 속에 품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5개월 가까이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일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을 들고 36살 8월에 다시 노량진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해 도전한 첫 시험에서 상위권 성적으로 합격했다.
합격만 하면 꿈이 현실로 펼쳐질 줄 알았건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첫 발령 부서는 강남소방서 현장대응단의 지휘팀이었다. 보통 119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에 나가 직접 조치를 취하는 구조•구급•진압대와 현장을 지휘•통제•기록하는 지휘팀이 함께 출동한다. J는 지휘팀에서 현장 상황을 기록하고, 보고하는 업무를 맡았다. ‘불 끄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불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괴리감이 느껴졌고, 진압대로 발령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다행히, 소방공무원은 순환보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3개월 만에 화재진압대로 발령이 났다.
“몸이 힘들지, 정신적으로는 너무 재밌게 일했어요. 진짜 피곤하기도 하고 자다가 출동도 많이 나가고… 여기(강남소방서)가 특성상 큰 불은 자주 나지 않는데 작은 불이라거나 경보기, 아니면 배수 관련 신고가 많아서 출동이 정말 잦은데 재밌었어요. …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너무 좋고 재밌게 근무했었습니다.” 화재진압대 얘기를 꺼내자마자 J는 몸을 앞쪽으로 기대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정말 재밌었어요’ 를 연발했다.
어쩐지 화재진압대에 롤모델이나 닮고 싶은 선배가 있을 것만 같았다.
“몇 분 계시죠. 확실히 이 분들이 계시면 현장이 좀 안정적이고, 아무리 큰 불이 나도 든든하다 이런 느낌이 들어요. 제가 꿈꾸는 소방관의 모습인 것 같고요. 그분들 혼자서는 불을 끌 수 없으니까, 저도 열심히 해서 그 분들이 ‘뒤에 이런 친구가 있으면 어디든 불 끄러 같이 들어갈 수 있겠다’ 이런 든든함을 저도 드리고 싶어요.” 아무리 뛰어난 소방관도 혼자서는 불을 끌 수가 없다니, 제멋대로 1인 영웅 체제(?)를 기대했던 터라 눈이 번쩍 뜨였다.
“소방관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렇죠, ‘운전원’이라고 해서 탱크차를 운전해서 물을 보수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물을 쏘는 관창과 호스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게 무거워서 혼자 들 수가 없어요. ‘관창수’ 한 명과 ‘관창보조’ 한두 명이 꼭 필요해요.” 호스의 무게가 상당하거니와 혹여 굽이 진 골목을 지나가야 하는 경우 호스를 일일이 펼쳐 들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화재 진원지에 가까울수록 연기가 자욱해서 관창을 들고 앞장서는 관창수는 시야 확보가 어렵다. 관창보조가 뒤에서 주위 공기의 흐름 변화를 파악해가며 관창수를 돕는다. 뛰어난 관창수를 돕는 든든한 관창보조가 되는 것이 현재 그의 목표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님을, 모두가 함께 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현장이 지난 1월, 구룡마을 이었다. 새벽 5시 30분.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불길이 여러 갈래로 번져있었다. 판자촌 특성상 삽시간에 타기 쉽고, 한겨울 날씨의 영향으로 물을 쏴도 불길이 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주위에 가스통도 많아 물을 쏘고도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하며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진압에 성공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 때 큰 불 다 잡고 어느 정도 진화되었을 때 다른 팀한테 (잔불 점검하도록) 인수인계하고 왔을 때 되게 보람이 있었어요. 인명사고는 일어나지 않아서, 그게 제일 다행이었어요.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요.”
누군가는 평생에 한 번 마주할까 말까 한 장면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다 보니, 어려움도 있을 법했다.
J에게는 일상생활 중에 문득 떠오르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고 한다. 고시원에 문이 안 열린다는 신고가 들어와 출동을 나갔더니, 방 안에 목을 멘 사람이 있었다.
“고시원(방 안)에 (옷을 거는) 폴대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냥 일어서면 될 것 같은 큰 키의 건장한 사람이었는데. … 핏줄이 다 일어나고 파란… 그게 가끔 생각나요. 다른 하나도 경비원이 (입주민) 할아버지가 두 달 동안 안 보인다고 신고한 거였는데. 아파트에 가서 문을 열어보니 지적장애 딸 세 명이 계속 못 먹었는지 누워있고. 안방 쪽에는 완전히 새카맣게 된 할아버지가… 가끔씩 펑. 생각납니다.” 아직까지는 괜찮다며, 생각이 날 때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다고 했다.
“음… 지금은 떠오르면 무시해요. 근데 계속 떠오르고 이 일을 하기가 만약 무서워졌다. 그럴 때는 (심리지원센터에)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는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이라는 뜻인 듯했다. 그리고 5월부터는 예방과로 발령이 난 탓에 현장 출동을 하지 않은 지 반년이 지났다. 강남구에 위치한 건물마다 안전관리자를 관리하는 민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지금은 민원 스트레스도 많고 뭐 다짜고짜 욕하시는 분들도 있고(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웃음)… 그걸 제외하면 솔직히 제가 이 직업을 택해서 후회했다 그런 거는 전혀 없습니다.”
소방관으로서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소방관이어서 행복”하다는 심플한 대답. 가치관과 적성에 딱 맞아서 행복하단다.
몇 주 전, 서울 양양고속도로 서면6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활어 운반 트럭에서 번쩍이는 불길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 이 때 트럭 뒤로 두 대의 차량이 멈춰서더니 일곱 명이 일사분란하게 진화에 나섰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이 장면. 주인공은 역시 소방관들이었다. 용산소방서 소속 7인은 비번날 단합 여행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4년 전 창원에도, 얼마 전 양양에도 보호 장비는 없었다. 그리고 소방관들의 인터뷰 내용마저 꼭 닮았다.
"소방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고, 지나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당연히’ 여기다니. 이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세차게 뛰었을 또 다른 ‘J’들을 상상해본다.
*사진출처 :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