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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pr 26. 2021

왜 그 책을 주문하고 싶었을까

2021.04.20

요 며칠 나의 심리상태는 불안, 걱정, 초조 그 자체였다. 취준생의 신분에 맞게 원하는 진로와 기업에 맞게 자소서를 썼고, 면접을 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기업처럼 정기적인 채용기간을 두고 채용을 하는 직업군이 아니다 보니 남들처럼 몇십 개, 몇 백개의 지원서를 쓴 것은 아니었다. 올 해로 봤을 때 4곳 정도.


그중 마지막으로 지원하고 면접을 본 곳이 하이라이트였다. 가고 싶던 언론사에 채용 공고가 올라와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서류 합격 연락이 수요일이었고, 면접은 금요일이었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어느 면접보다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나는 해당 언론사에서 기자단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언론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단을 하면서 나의 기자로서의 방향과 회사가 일치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언론사에 가고 싶었고 면접 기회가 생겼을 때 대단히 기뻤다.


16일 금요일 4시 30분. 실기 시험과 함께 면접을 보니 저녁 6시가 되었다. 면접 내용은 이 글에서 핵심이 아니기에 과감히 생략하겠다. 간략하게만 이야기하자면 이미 나에 대한 정보가 그분들에게 너무 많았기에 면접은 내 생각보다 타이트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렇게 면접을 끝냈다. 결과는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면접을 끝내고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기대감과 함께 신나는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은 팟캐스트 녹음을 하는 날이다. 합격 연락이 올까 봐 핸드폰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카페에서 대본 준비를 했다. 그러다 선물 받은 도서문화상품권 만료 기간이 다가온다는 카톡을 받았다. (너무나 뜬금없게...)

취업준비로 바쁜 탓에 최근 책과 거리가 있었다. 서점에 가서 어떤 책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해 딱히 읽고 싶은 책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축구 감독인 '아르센 벵거'의 자서전이 나왔다는 사실을 최근에 들었다. 그래서 만료 기간이 다가오는 상품권을 사용할 겸 책을 주문하기로 했다.


자서전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를 하려는 순간 책 하나가 더 필요했다. 상품권 가격 이하로는 사용을 할 수 없었기 때문. 그래서 고민이 시작됐다. 또 어떤 책을 사야 하나. 나는 항상 책을 살 때 서점에 가서 목차나 일부 내용을 읽어보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다. 어떤 책이라도 읽으면 좋다고 하지만 실패 없이 내가 흥미를 느끼고, 유익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드는 책만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최근에 서점을 가지 못했기에 어떤 책을 하나 더 골라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러다 문득 '그릿'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정확하게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꽤 인기가 있었던 책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에 있을 때 책의 저자인 '앤절라 더크워스'가 '테드'에서 그릿에 관해 이야기한 걸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정말 너무나 갑자기 그릿을 검색해 장바구니에 넣고 아르센 벵거의 자서전과 함께 주문을 했다. 벵거의 자서전을 상품권으로 구입하기 위한 완벽하게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일종의 보너스 느낌.



음식이 아닌 '책'이지만 배달의 민족답게 책은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에 도착했다. 어제 면접 결과 관련해서 연락이 오지 않아 오늘 오후쯤 오겠구나 하고 근처 카페에 갔다. 며칠간 바쁘게 보냈기에 연락도 기다리면서 책을 보자는 마음을 가지려 했으나 사실은 반대였다. 결과를 너무 초조하게 기다리는 상황이라 집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카페라도 가서 뭐라도 하고 있자는 마음이었다.


일단 책 두 권과 노트북을 챙겨 집 앞 카페로 갔다. 벵거의 자서전을 먼저 읽을 것이라는 주문 시의 마음과 다르게 관심은 '그릿'에 집중됐다. 갑작스럽게 산 그 책인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어찌 보면 '열심'과 '열정'이라는 식상한 주제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항상 갈망하는 '재능'과의 비교. '오 꽤 재미있네'라는 생각이 들 때쯤 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지난 금요일 면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여러모로 귀하의 능력과 기자에 대한 준비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아쉽게 이번 채용에서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무궁한 발전 있기 바랍니다."


메일을 확인한 뒤에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글을 위해 메일을 다시 그대로 쓰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만큼 간절했다.) 아쉬운 마음에 한 숨을 깊게 쉬고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여있는 책을 바라봤다. 마인드 컨트롤의 시간이 온 것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을 믿어보기로 했다.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누가 보면 허무맹랑하지만 나도 이루고 싶은 그 역사를.



면접까지 고생한 나를 위해 저녁에는 집에서 푹 쉬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릿'이라는 책을 주문하지 않았다면 현재 나의 멘탈은 어떤 상태일까. 사용기간 만료가 다가온 도서상품권을 쓰기 위해, 읽고 싶었던 책을 사기 위해 그냥 선택한 하나의 책이 인생의 굴곡을 버티게 해 주며 다시 한번 도전하게 해 주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리고 면접관이자 기자단 팀장님에게 카톡이 왔다.


"이번에는 아쉽게 떨어졌지만 너무 실망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고 길을 걸어라. 수고했다"


그리고 '그릿'을 키우기 시작한 나의 답장.


"네네, 더 노력하고 준비하겠습니다!"



이 책이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 큰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의 순간적인 선택 하나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줬고, 그로 인해 다시 한번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했다는 것.


그러니 오늘도 매 순간 이루어지는 무수히 많은 선택에 감사해보자.

그리고 다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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