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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밤 Jan 24. 2022

첫 임신 그리고 유산

계류...유산이요? 선생님 아기가 좀 느린 걸 수도 있잖아요.


원래 주수대로 라면, 6주-7주쯤 심장이 뛰어야 하는데, 나의 경우 아기의 영양소인 난황이 기준 크기보다  크고 아기로 추정되는 건 너무나도 작다고 한다. 난황의 크기가 크다는 건, 아기가 영양소를 섭취하고 있지 않는다는 뜻. 즉 제대로 자라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예후가 좋지 않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3일 뒤 다시 와서 초음파를 보자고 하신다.


"보라 씨 안타깝지만,,, 3일 뒤에도 난황 크기가 줄지 않고 더 커져있고, 아기가 커져있지 않다면 계류유산일 경우가 높습니다"


"계류유산이요,,,? 그게 뭔데요"


"정상적인 임신의 경우, 아기집이 보이고 그리고 난황이 보이고 그 옆에 아기가 보여,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보여요, 근데 계류유산일 경우엔 임신 초기 아기집 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나, 난황은 있는데 태아가 보이지 않거나, 태아가 심장이 멈춘 경우를 말합니다. 보라 씨의 경우 난황만 보이는 상태입니다"






예후가 좋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와 남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워 눈물도 나지 않았다. 진료실에선 적막만 흐를 뿐이었다.

예정된 남편과의 여행으로 병원 들렸다 강릉 가는 길, 남편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 없이 운전하던 남편이 황당한 내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내 손을 잡으며 남편이 어렵게 한마디를 꺼낸다.


"병원에서 아직 확정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3일 뒤에 보자고 하니깐 그때 가보자 아직 모르는 거잖아, 다른 병원도 가보고 그러자 일단은 확정된 거 아니니깐 우리 강릉바다 잘 보고 오자"


"응 오빠 그러자"


남편의 운전이 방해가 될까, 애써 괜찮은 척하며 대답은 했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뱃속 아기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나는 휴대폰에 "계류유산" "계류유산 오진"이라는 단어를 쳐보며 오진받았던 사람들의 후기를 뚫어지게 찾아봤다. 계류유산이 왜 일어나는 건지, 계류유산 오진에 대한 가능성도 찾아봤다. 계류유산 판정을 받고 다른 병원에 갔다가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었고 잘 크고 있다는 글, 계류유산 판정을 받고 수술 날짜까지 잡고 수술 날 젤리 곰의 아기 모양을 봤다는 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아기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가 일주일 뒤에 들었다는 글을 보며 나는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지금 내 뱃속에 있는 아기도 그럴 거라고 말이다.


'그래 아닐 거야, 오진일 거야 혹시 모르잖아, 유산 일리 없어'라고 속으로 되뇌기 시작했다.


남편의 손을 잡고 강릉바다를 보며, 변화 없는 배를 만지며

"아가야 선생님이 잘못 봤나 보다. 그렇지? 우리 아가가 미세하게 뛰는데 선생님이 못 본 거 아닐까? 아니면 우리 아가가 조금 느린 거 아닐까? 엄마가 병원을 너무 빨리 갔나 봐, 며칠 뒤에 엄마한테 인사해줘 아가야"

그렇게 남편과 1박 2일의 강릉 여행은, 유산에 관련된 생각으로 가득 채운채,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날, 나는 남편과 계류유산이라고 말한 집 근처 산부인과가 아닌, 큰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의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속으로 말했다.

'오진일 거야 오진일 거야, 오진이야 분명해! 그렇지 아가야? 너 잘 자라고 있는데 너무 작아 선생님이 발견을 못한 거겠지?'






며칠 뒤, 지역에서 제일 큰 산부인과에서 진료 접수를 하고 대기하는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제발 유산이 아니기를,,, 심장이 뛰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했다.


진료실에서 초음파 진료 후, 의사 선생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전 병원의 의사 선생님과 제 소견은 같아요. 아기는 성장이 멈춰있는 상태네요. 이건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경우에 스스로 이렇게 되곤 합니다 혹시 모르니 일주일 뒤에 다시 한번 방문하시겠어요?"


한숨뿐인 내 대답과 함께 나는 병원을 나왔다. 일주일 뒤 또 다른 병원을 방문했다. 적어도 병원 3곳은 가보고 싶었다 오진이기를 간절히 바랬으니깐. 그만큼 나는 유산임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뒤 방문한 또 다른 병원, 내가 바람과는 달리 계류유산이 맞았다. 아기의 크기는 변화조차 없었고 난황만 커지는 상태였다. 초음파를 보는 내 눈에도 아기는 없었다,,,


차에서 기다리던 남편을 보자마자 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오빠 유산이 맞다고 하네, 선생님께서 수술 날짜 잡자고 했어, "라는 말을 하며 나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말았다.


"오빠,,,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내가 죄짓고 산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왜!!! 남들 아기는 잘만 크는데, 얼마 전에 아기 가진 친구들도 다 아기가 뱃속에서 잘만 크는데!!! 왜 나만 유산이냐고 왜" 하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편의 친구 와이프들도 나와 같은 시기에 임신을 했고, 내 주변 지인들 2명도 나와 같은 시기에 임신을 했다. 근데 그들 아기는 너무나도 주수에 맞게 잘 자라고 있다고 심장이 쿵쿵 거리는 영상이 SNS에 올라오는데 왜 나에게만 유산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일이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억울하고 억울했다. 신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며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

내가 알고 있던 "유산"이라는 건 몸이 약한 사람이나, 산모의 나이가 많거나 또는 무리했을 경우에만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하게 되었다.


29살 겨울 나는 첫 임신을 했고 유산을 했다.

그 겨울은 나에게 너무나도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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