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밤 Jan 26. 2024

작은 구두를 남기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잠들어 있는 거지? 눈 좀 떠봐

어제 우리 집 저녁은 김밥이었다. 원래는 아기 저녁으로 미니 김밥을 만들어주려 했는데 남편이 자기도 먹고 싶다고 말하길래 치즈를 넣은 치즈김밥과 참치를 넣어 참치김밥을 만들었다.


김밥을 뚝딱 만든 내가 신기했는지 <예전에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했었다고 했지?>라고 묻는다.


맞다. 나는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여행을 가고 싶어 돈을 모으기 위해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김밥을 잘 만드는 것인가...? 생각도 든다. 출근하면 기본으로 김밥 100줄은 말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10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또 새로워하는 남편의 모습, 그리고 그가 말했다.

<짠하고 불쌍하다, 그때의 당신이>


남편에게 말하며 슬프지 않았고 그저 지나온 이야기라 생각하며 얘기했을 뿐인데 남편의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때의 내가 참 짠하고 불쌍하다. 어렸던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꼭 안아주고 싶다.


어제 그렇게 남편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했어서일까...? 오늘따라 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

육아에 정신없어서 하루하루가 어찌 가는지 몰랐는데, 아빠를 떠나보냈던 날이 8년 전이 되어버렸다.


떠나기 전 아빠의 모습, 그리고 한 줌의 재가 되었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새로 산 내 구두가 너무 작았다. 친구들과 벚꽃놀이 갈 때 신어야겠다 싶어 샀던 구두. 이미 한 번 신었는데 너무 작아 신발가게 맡겨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아빠는 내가 잠든 사이 신발 제골기로 늘려 놓았다.


출근한 나에게 전화가 왔다. <작다는 구두 아빠가 제골기로 늘려놓았으니 이따가 신어봐>라고.


그게 아빠와 마지막 통화였다. 아빠와의 마지막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다음날 새벽 아빠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 너무나도 평온하게 눈을 감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자고 있는 거지? 아빠? 눈 좀 떠봐, 거짓말 치지 말고> 울부짖으며 말하던 나의 모습


너무나도 평온하게 잠든 그의 모습을 보는데 자고 다시 일어날 것만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우리 아직 마지막 인사도 안 했잖아! 이건 아니잖아!!!>


눈을 떠 보니 장례식장이었고 우리 아빠 사진이 걸려있었고 나와 동생은 상주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온 것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조문객을 맞이하면서도 나는 계속 울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장례 2일 차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아빠의 염, 장례지도사 분이 우리를 이끈다.

너무나도 곱게 누워있는 우리 아빠를 보며 눈물이 와르르 터져버렸다.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은 볼 수 없는 아빠의 얼굴, 아빠의 볼, 아빠의 코와 입술 모두 하나하나 다 만져보았다.


잘 가라고, 고생 많았다고,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며 이 생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장례 3일 차 발인날 이제 관을 옮긴다. 그리고 화장이 진행되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그곳엔 보내야 하는 그러나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의 울음소리, 외침이 가득했다.


3일간 너무 울어 나올 눈물조차도 눈물 흘릴 힘조차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빠의 관이 화장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순간 정말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유리창에 기대어 아빠를 목놓아 불렀다.


이대로 가면 어떡하냐고, 나랑 동생 어떻게 살라고 이렇게 우리 두고 가냐고 너무 울어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울고 울었다. 그리고 아빠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우리에게 왔다.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작고 작은 사람이 참 힘들게도 살았네.


이렇게 아빠와 엄마는 같은 곳에 그렇게 다시 만났다. <아빠 외롭지는 않겠구나>라는 슬픔 속에서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아빠가 없는 집.

내 작은 구두가 보인다. 제골기로 늘렸다는 아빠의 마지막 통화가 생각이 나서 그 구두를 보며 구두를 끌어안고 한동안 울었다. 그리고 그 구두를 신어보았다. 잘 들어간다. 아빠가 늘려준 구두가 내 발에 참 잘 들어간다.


8년 동안 신지도 버리지도 못한 그 구두. 이제는 이것도 보내줘야겠다.


아빠, 나는 말이야 좋은 사람과 결혼을 했고 지금은 나를 닮은 너무 예쁜 아기를 낳고 잘 살고 있어.

아마 아빠가 보물이를 보았다면 너무 예뻐서 매일 안고 잘 놀아주었겠지? 나를 쏙 빼닮아서 아빠가 보았다면 나 어릴 때랑 똑같다고 말했을 거야. 잘 살고 있으니 그곳에서도 잘 살기를 바라.













매거진의 이전글 감사하라고? 감사가 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