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견뎠고 잘 살아냈다.
8년이 흘렀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8년. 늘 그렇다 벚꽃이 후두두 떨어질 때쯤이 아빠의 기일이다. 눈이 부시게 맑고 화창한 날.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 씻고 머리를 말리며 나갈 준비를 하는데 눈물이 하나도 안 난다. <어? 나 이제 괜찮은가 본데?> 8년이 지난 이제야 내가 괜찮은가 싶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기분 좋게 출발했던 오늘, 아빠한테 드릴 꽃을 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 이럴 줄 알았다… 왜 눈물이 안 나오나 했네 라는 마음과 동시에 아빠가 있는 곳에 가자 눈물은 쉴 새 없이 떨어졌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며 보물이도 운다. 그리고는 나를 꼭 껴안으며 눈물을 닦아준다. 그렇다. 8년 전 흘린 눈물은 나 혼자 닦아내야 했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흘리는 눈물은 닦아줄 사람이 곁에 있다. 남편이 있고 아이가 나를 안아준다.
<엄마 왜 울어?>라고 묻는 보물이의 말에, <응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 <외할아버지 왜 못 봐?> <외할아버지는 하늘에 계셔서 이렇게만 볼 수 있어 보물아>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에 남편에게 아이와 한 바퀴를 돌고 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빠가 있는 곳을 보머 보고 싶다고 혼잣말을 되뇌며 울었다.
보고 싶다. 8년이 흘렀어도 보고 싶어 슬픈 마음은 똑같다.
이렇게 엄마와 아빠가 계신 곳을 보러 올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죽음은 뭘까? 삶은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엄마, 아빠한테 오면 참 그래,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인 것 같아 엄마도 그리고 아빠도 떠나보내고 나서 느낀 건 삶이 참 허무하다 싶었어 근데, 그렇게 엄마 아빠를 떠나보내고 내가 느낀 삶은, 남아 있는 사람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게 삶 같아. 산 사람은 그걸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것이 최선이더라고>
남편도 그 말이 맞다면서 끄덕인다.
8년 전 아빠를 떠나보냈을 때, 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라는 게 안 났다. 앞이 까마득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는 견뎌냈고 살아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낸 덕분일까? 이제 내 곁엔 나의 눈물을 닦아줄 나의 울타리가 있다. 남편이라는 그리고 아이라는 울타리.
오늘은 선선한 바람이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나의 눈물을 마르게 하고 웃게 만든다.
8년 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도 다르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