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콩트 (22)

작심 반나절

by 최병석

마리 씨는 엄청스레 겁이 많다. 마리 씨는 사실 누가 봐도 겁이 없게 생겨먹었다. 키도 180이 넘고 몸무게도 거의 100킬로에 육박하는 거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였기에 겁이 많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한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라. 덩치는 산만한 거구가 겁이라는 단어에 꼼짝없이 잡혀 전전긍긍하고 있다니 우습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그의 겁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다른 것들은 무섭지 않은데 유독 서생원이 무섭다.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더러워서 싫다. 그놈들의 습성은 참으로 어둡고 음침하다. 밝고 환한 곳이 쌔고 쌨는데 왜 하필 그 지저분하고 음침한 곳에 들어앉아 처치곤란한 몸뚱아리를 긁적이고 있는가 말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그 더러움이 극한으로 변장을 시도하더니 급기야는 공포다. 그저 피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사실 이 서생원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다. 아니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 덩치도 쬐끄마한 서생원이 마리 씨 같은 거구를 무서워해야 그게 맞는 말이지 그 반대로 거구가 쪼매난 서생원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흥미롭게도 그의 겁은 결벽증에 가까운 청결한 집착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마리 씨 그에게 있어 한 치의 오염행위는 있어서는 안 될 중요한 관심사였다. 말끔하게 정리되고 정돈되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불순물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를 못 견디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 모습들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그 외의 모습들은 낯설기 때문에 외면하기 일쑤였다. 아무튼 그렇다.


마리 씨가 황금연휴를 맞아 한적한 시외로 캠핑을 떠났다. 그의 연휴는 늘상 단조롭기만 했었다. 연휴라고 해봐야 그저 집에서 TV를 보거나 집 근처의 영화관에서 팝콘을 씹으며 다소 과격한 액션을 덧칠 하는 게 전부였다. 일주일 내내 일만 하다가 연휴라고 해서 또다시 일을 닮은 움직거림을 시전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 오기를 수 년째였고 이번의 연휴도 당연히 그럴 계획이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러질 못했다. 아내와 아이들의 성화를 견뎌 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부지! 우리는 여행 같은 거 안 가요?"


"여보! 우리도 남들처럼 운치 있게 캠핑 같은 것도 함 해보자구요,맨날 집구석에만 있지 말자구욧"


그래서 밖으로 나왔다. 생전처음 캠핑 같은 걸 해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나온 거다. 그렇다고 생전처음 시도하는 캠핑인데 엉터리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글램핑이 있었다. 간단한 세면도구들만 챙긴 후 식구들을 이끌고 캠핑장으로 향했다. 말은 캠핑장이지만 쾌적했다. 집이 아닌 외지이긴 했지만 있을 건 다 있다. TV며 노트북의 가동도 무리 없다. 인터넷이 살아 있다는 건 문명의 영향력아래 거한다는 이야기이다. 올만에 아이들과 야외에서 바베큐다. 집안에 갇혀 숨어들려고만 했던 괴기냄새가 거리낌 없이 자유롭다. 호흡에도 무리가 없다. 신선함이 칙칙한 콧속으로 자꾸만 개입을 시도해 댄다. 여차하면 뒤집어질 속사정이다.


'아하 이렇게 좋은데 왜 이제서야 나오게 된 거야?'


마리 씨가 후회를 하며 이제부터라도 자주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엊저녁 늦게까지 바베큐를 안주삼아 맥주에 하이볼까지 들이켜댄 술이 기상시간을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마리 씨는 떠진 눈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일찌감치 샤워장으로 향하던 그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이 있었다. 바로 마당 한 켠에 놓인 옛날엔 흔했지만 지금은 보기 힘든 <마중물 펌프>였다. 마리 씨는 칫솔을 입에 문 채로 쉬고 있는 펌프에 마중물을 퍼부으며 펌프질을 해대었다. 북적북적 빈소리만 요란하던 펌프질에 마침내 월척이 걸린 듯 입질이 시작되었고 물이 쏟아져 나왔다.


"우와, 얘들아~와서 이것 좀 보그라"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르던 마리 씨가 갑자기 사색이 되었다. 쏟아지는 물길이 빠져나가는 수채구멍에 반짝이는 눈망울이다. 앗! 그것은 바로 서생원이었다. 머리털이 쭈삣,

순간적인 소름에 마리 씨의 오른발이 반응했다.


"옛끼 이놈! 쿵"


겁을 내고 도망가리라 엄포를 놓았다. 으악, 그러나 웬일!

구멍 속에서 눈치를 쌔리던 서생원 그 냥반이 글쎄 마리 씨의

헐렁한 바짓가랑이 속으로,아랫도리 속으로 들어왔다.


"으아악~ 여보,여보오옷"


성이 한가요 이름이 마리 씨 <한 마리>씨가 가뜩이나 무서워하던 서생원 한 마리 때문에 모처럼 마음먹었던 <가족들과 함께하는 야외캠프>의 잦은 행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아이고 무서버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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