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이런고야 2(35)

빗자루

by 최병석

밤새 내린 눈을 누군가 쓸고 지나갔다. 쓸려진 자락이 정갈하고 일관성이 있는 걸로 봐서 이 자락은 틀림없이 싸리 빗자루의 흔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 흔치 않은 싸리 빗자루를

들고 멀쩡한 길을 덮어 보고자 무진 애를 쓰는 눈발의 기세를 꺾고 있는 이는 분명 적지 않은 나이를 빨아먹은 노년층 중의

한 명이 분명하다.


싸리가 뭔지도 모를 어린 때에는 학교 운동장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 뒹굴고 내 팽개쳐져 있었던 그 빗자루를 보고도 모른 척했었다. 그리고 그 싸리의 가지를 엮어 집집마다 울타리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는 그 신기함과

실생활에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싸리에 대해 몹시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싸리에 대한 궁금증은 20대 초반에 군대생활을 하며 알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서울 촌뜨기가 군대 막사 주변에서 연보랏빛을 자랑하며 웃고 있는 싸리꽃의 냄새를 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웃음의 의미를 물었다.

"내가 그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싸리나무의 꽃이다"

꽃향기는 강렬하지 않았고 가까이 다가 갈수록 깊은 속이다.

이 내음은 곧 지척에 흔하지만 튀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 있는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군에 입대한 시기가 6월인지라 다소 힘들었던 신병 교육과

후반기 교육을 뒤로하고 자대배치를 받았던 시기였다.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있던 군기라는 상념을 살짝 뒤로 젖히고 감성이라는 사색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김없이 나타나 육체의 곤함을 녹여주던 싸리꽃들의 향연이 좋았다.

그렇게 눈여겨봐 두었던 흔적들을 꽃이 다 지고 난 뒤에야

찾아 나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군생활은 어차피 전쟁을 위한 훈련의 반복이 아니던가? 사라진 흔적들을 찾아 나서니 곳곳에 길쭉한 싸리나무 가지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날카로운 낫질에 동강동강 목이 부러져 짐꾸러미에 그렇게 묶인 채 부대로 끌려 들어온 싸리나무의 가지들이 이리저리 다듬어져 싸리빗자루로 거듭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빗자루는 인근의 학교로 관공서로 실려가거나 부대 내에서 한 겨울을 나야만 했었다.

바람이 불고 찬 기운이 들이닥치는 주변에서 싸리빗자루는 몹시나 유용하다. 그 너른 운동장을 뒹구는 낙엽의 잔해를 밀어내는 일이나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눈보라를 제거하기 위해서 싸리빗자루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간근무후나 소대장의 눈을 피해 몰래 끓여 먹었던 라면을 흡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가늘고 길쭉한 젓가락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인 모양을 갖춘 싸리빗자루였다. 오죽하면 그 여파로 추운 겨울이 다 가기도 전에 부대 내의 싸리빗자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치워진 눈길의 빗자루 자국을 보다가 옛날로 돌아가봤다. 빗자루의 싸리가지를 꺾어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라면이 올라온다. 오늘 저녁은 파송송 썰어 넣은 라면을 먹어야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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