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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巨詩記

너무 늦게 놀러간다/나희덕

by 최병석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우리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시를 들여다 보다가

미루는 습관을 쫒다가 아차싶은 경우가 반드시 있다. 왜 진작 그러지 못했을까? 왜 진작 찾아가서 이름도 부르고 함께 목련꽃 바라보며 웃고 떠들지 못했을까? 왜 진작 놀러간다 약속한 대로 선뜻 찾아가서 맛난것 막걸리 한 잔 기울이지 못했을까? 후회해보니 다 소용없다. 내 눈앞에 급한 일들에 눈이 멀고 마음도 멀어 가장 가깝게 가장 진실되게 <나>를 응원해 주던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을 지나친다. 그래서 생살이 뜯겨지는 고통보다 더 아프고 아프고 아파 닭똥같은 눈물이 쏟아진다.


그런데 더더욱 슬픈 일이 있다. 나는 그런 슬픈 일을 겪고 나서도 늘상 너무 늦게 놀러온 사람들 틈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밤새 목련지는 소리듣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냉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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