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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있는 고야(1)

버리지 못하였더니

by 최병석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많다. 욕심일까? 세상을 다 품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바탕 내 지른 뒤 시작한 인생의 시작은

기어코 내 주변에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될 욕심들을 하나씩 둘씩 쟁이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빠져나갈 욕심들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는 그리움

잊어도 될 순간들이 기록된 멈춰버린 찰나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고야 말겠다는 고집

비싼 값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힌 허세

꼭 나니까 이룰 수 있다고 여겨지는 자만감

버려도 상관은 없지만 버리기엔 아깝다는 미련


♡옷장 가득

♡책꽂이 가득

♡앨범 가득

♡책상서랍 가득

♡신발장 가득

♡애마의 트렁크 가득

♡바지 양쪽 주머니 가득

♡양복 상의 안 주머니 가득

♡비즈니스 가방 수납공간 가득

♡필통함에 볼펜 가득

♡명함집에 공허한 직함과 이름 가득


빠져나가라고 길을 터 주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묵묵부답.


터 놓은 길 위에 비워냄의 처음으로

가득 찬 필통에서 말라버린 잉크를 끌어안은 채

눈치를 보고 있는 삼색볼펜 한 자루를 올려놓았다.


거래하던 세무사 사무소에서 방문기념으로 건네주었던

삼색볼펜이다. 이제 거래할 일도 없고 잉크도 말랐으니

<버려도 상관없지만 버리기엔 아깝다는 미련> 하나를

첫 실천으로 비운다. 감사하다. 이제 시작이다.


2025.07.0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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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