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였더니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많다. 욕심일까? 세상을 다 품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바탕 내 지른 뒤 시작한 인생의 시작은
기어코 내 주변에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될 욕심들을 하나씩 둘씩 쟁이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빠져나갈 욕심들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는 그리움
잊어도 될 순간들이 기록된 멈춰버린 찰나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고야 말겠다는 고집
비싼 값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힌 허세
꼭 나니까 이룰 수 있다고 여겨지는 자만감
버려도 상관은 없지만 버리기엔 아깝다는 미련
♡옷장 가득
♡책꽂이 가득
♡앨범 가득
♡책상서랍 가득
♡신발장 가득
♡애마의 트렁크 가득
♡바지 양쪽 주머니 가득
♡양복 상의 안 주머니 가득
♡비즈니스 가방 수납공간 가득
♡필통함에 볼펜 가득
♡명함집에 공허한 직함과 이름 가득
빠져나가라고 길을 터 주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묵묵부답.
터 놓은 길 위에 비워냄의 처음으로
가득 찬 필통에서 말라버린 잉크를 끌어안은 채
눈치를 보고 있는 삼색볼펜 한 자루를 올려놓았다.
거래하던 세무사 사무소에서 방문기념으로 건네주었던
삼색볼펜이다. 이제 거래할 일도 없고 잉크도 말랐으니
<버려도 상관없지만 버리기엔 아깝다는 미련> 하나를
첫 실천으로 비운다. 감사하다. 이제 시작이다.
2025.07.04(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