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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있는 고야 (4)

언젠가는 쓰고야 말겠다는 욕심

by 최병석

잔뜩 벼르다가 쟁여놓기만 한 욕심들을 둘러본다. 지금은 안 쓰지만 언젠가는 꼭 필요할 것이란 기대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꽤 많다. 그 막연한 기대감에 속았다.

시간은 흘렀고 기대감은 여전하기에 주변은 비워지지 않았고 <혹시나>라는 변수가 쌔근쌔근 잘도 자고 있다.

옷장을 열어봤다. 세상에나! 허리 사이즈 29 바지가 <나온 배가 들어가면 언제든 입을 수 있어>라는 기대감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못 입고 내버려 둔 지가 수 년째다.


어디 옷뿐이랴? <지금은 못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마음도 수 년째 아직 그대로다.


사놓고 혹은 쟁여놓고 뒤로 미루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벌써

60년이 지난다. 수 년째 방치해 둔 욕심을 놔주자. 사실 사용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고 나도 모르는 신호를 엄청나게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붙들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그 한 날을 기다리며 욕심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자. 그래서 홀쭉해지자.

생긴 건 멀쩡하지만 안 쓰는 건 <나누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미룸은 <실행하자>

꼭 쓰고야 말겠다는 욕심은 <버리자>

지금까지 모셔만 두고 있는 것들은 <처분하자>


이쯤에서 정리가 안 된다면 또다시 10년 후 아니 20년 후

내일이면 넘어야 할 죽음 앞에서 <이 많은 욕심들을 다 어찌하누?> 한탄하며 큰 숨을 쉬느라 벅찰 수도 있다. 그러기 전에 비워내야만 한다. 좀 더 가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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