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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있는 고야(2)

추억이라는 이름표

by 최병석

겹겹이 쌓여있는 추억을 벗겨버렸다.

사실 이 추억의 흔적들은 돌아보면 반드시 그리움에 대한 대답 정도는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흔적들을 흔들어 대며

밤하늘의 별빛만큼이나 무수한 질문을 해대도

언제나 단답형 메시지

지금과는 괴리가 있는 어린 시간들이 박제되어 있었고

교복을 입은 소풍 시간은 하얀 웃음뒤에서 멈춰있었다

지금은 연락해도 전화조차 못 받을 얼굴도 멀뚱하다

찐득한 바닥 위에 철퍼덕 주저앉은 20대의 비쩍 마른 젊음이

덮어놓은 얇은 비닐포대기 안에서 가녀린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시절 파안대소는 20년 혹은 30년을 지내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줄곧 한점 오차 없이 동일하다.

네 번의 입학식과 졸업식

한 번의 결혼식

신혼의 달달한 냄새가 웃음으로 묶여있다.

그래도 간헐적인 들여다 봄을 기대했었겠지.

결국 분주했기에 본드처럼 굳은 채 할 말을 잃은 지난 흔적들이

앨범이라는 주머니 속에서

오랜 시간 숨겨진 채 사각거리고 있었다.


이제 그 숱한 순간들을

놔주기로 했다.

자유롭게 고정됨에서 터트림으로

웃는 모습에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거나 입을 다물어도 되겠다.

박제시켜 놓고

본드처럼 붙인 채 멈춰 놓았던 흔적들을

파쇄기 속으로 집어넣고 봉인해제!


육십여 년을 아낀다고 감싸 놓았던 사진들이

불에 타거나 파쇄되어

이제 그야말로 머릿속에만 들어있다.

나 말고 아무도 나의 옛 모습을 들여다 봐 줄 이유가

사실은 없을 터.

그저 한 번이나 두 번

그랬었네, 그랬었구나, 그런데 이젠.


그래도 꼭 간직하고 싶은 사진 두어 개는

핸드폰 속 앨범에 묻는다.

그 순간만큼은 잊고 싶지 않아서...


두 번째 버리는 실천이다.

<추억이라는 이름표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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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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