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 신호는 생명이다.
북한산 백운대 앞에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바로 인수봉이다. 등반가들 사이에서 이곳은 ‘암벽등반의 성지’로 통한다. 높이 150미터, 수십 개의 루트가 얽힌 이 바위는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초보에서 중상급코스를 찾아 붙는다. 수많은 산악인이 도전과 열정을 불태우는 곳이다.
다음날 일찍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기 위해 많은 등반자들이 전날 밤에 암장 아래에서 캠핑을 한다. 이 캠핑장에 가기 위해서는 북한산 ‘깔딱 고개’라는 험한 경사길을 지나야 한다. 숨이 턱에 차오르는 그 고개를 오를 때, 산우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으스스한 괴담이 따라붙는다.
바로 ‘귀신의 울음소리’다. 오래전부터 인수봉에서는 안타까운 사고들이 가끔 발생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수직의 바위 앞에서 많은 이들이 삶의 끈을 놓았다. 등반 장비가 불량했거나, 갑작스러운 낙석과 돌풍, 파트너의 실수 등이 원인이었다.
흐리고 비가 내리는 궂은날 밤이면 인수봉 아래에서 비박을 하던 산악인들이 “밤새 귀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라고 증언하곤 한다. 그것은 사람의 울음과는 달랐다. 멀리서 흐느끼는 듯한 소리, 원망 섞인 외침, 때로는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함. 수십 명이 한꺼번에 우는 듯한 그 소리는 골짜기를 메아리치며 깔딱 고개를 타고 올라온다. 어떤 이는 그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어떤 이는 그날 이후 인수봉을 다시는 찾지 않았다고도 한다.
나는 직접 그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몇몇 산우들은 “귀로 들린다기
보다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라고 말했다. 마치 차가운 손길이 등을 훑고 가듯, 깔딱 고개를 오를 때 갑작스레 몸이 얼어붙고, 바위틈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 강풍으로 인해 대규모 등반 사고가 있었던 해 이후, 그해 겨울엔 밤마다 그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인수봉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전설이자,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암벽등반을 하다 보면, 그보다 훨씬 더 절실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울음이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의 신호다.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소리는 괴담이 아닌 ‘안전 신호’다. 인수봉을 오르는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다. 항상 둘 이상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인다. 선등(먼저 오르는 사람)과 후등(뒤따라 오르는 사람)은 로프 하나에 생명을 걸고, 철저한 확보로 호흡을 맞춘다.
등반 중에는 큰 소리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등반 시작!” "출발!"“당겨!” “풀어!” “추락!” “하강!” “하강 완료!” 이 짧고 강한 말들이 바로 생명줄이다. 한 단어의 실수, 한 순간의 오해가 바로 추락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소리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바위에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순간, 로프를 확보하는 동료의 소리만이 전부인 때가 있다. 그 신호는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안전과 믿음의 언어다.
괴담 속 귀신의 울음소리는 죽은 자의 통곡이다. 그러나 암벽을 오르고 내려오는 자들의 신호소리는 생명을 지켜내는 외침이다. 등반의 진정한 목적은 ‘살아서 함께 돌아오는 것’에 있다. 아무리 높고 험한 봉우리를 정복했다 해도 혼자라면 그것은 미완의 성공이다. 함께 올라, 함께 내려와야만 등반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