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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구멍,한곳을 파라

깊이 파야 맑은 물을 만난다

by 영 Young

시골집에는 깊이 30미터에 달하는 우물이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우물물은 단순한 식수를 넘어 삶의 원천이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밥을 짓고, 마시며, 빨래하고, 씻는 등 하루하루의 생활이 우물과 함께했다. 무더운 여름날, 바가지에 가득 담긴 시원한 우물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면 더위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버지는 "이 물이 우리를 키운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그랬다. 우물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조상들의 노력과 땀, 그리고 자연이 선사한 축복이었다.

이 우물은 증조할아버지가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수년에 걸쳐 땅을 파서 만든 것이다. 삽과 곡괭이만으로 단단한 땅을 파 내려가며, 마침내 지하수를 만나 기쁨에 겨웠던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 물이 솟아나는 그 감격적인 순간은 단순한 노동의 결실을 넘어, 가족과 후손을 위한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물은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산이었다. 해가 갈수록 물맛이 변치 않는 이 우물은 단순한 식수가 아니라 선조들이 남긴 귀한 유산이었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다 우물가로 가서 물 한 바가지를 온몸에 끼얹으면 더위가 싹 가셨다. 우물가에는 늘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곳에서 형제들과 물장난을 치며 깔깔 웃곤 했다. 그 시절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물가는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어우러지는 따뜻한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냉장고가 귀했던 시절, 우물은 자연 냉장고 역할도 했다. 수박이나 참외 같은 과일을 두레박에 담아 우물 속에 넣어 두면 한나절도 못 가 얼음장같이 차가움을 유지했다. 한여름에 우물에서 건져 올린 수박을 한입 베어 물면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했다.

오뉴월 땡볕 아래에서 퍼 올린 우물물에 보리밥을 말아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먹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어른들은 점심때가 되면 시원한 우물물 한 바가지를 떠서 밥상에 올렸다. 물에 말아 먹는 보리밥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었다. 그 속에는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자연과 노동, 그리고 공동체의 따뜻함이 담긴 한 끼였다.


우물을 떠올리면 인도 남부에 있는 아잔타 석굴이 생각난다. 기원전 1세기경, 그곳 사람들은 거대한 절벽을 깎아 석굴을 만들었다. 법당과 스님들의 거처, 명상실을 포함해 수백 개의 깊은 석실이 형성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살인적인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바위를 뚫고 공간을 만들었다. 그 석굴 안은 여름에도 서늘해, 자연적인 피난처 역할을 했다.

이처럼 인류는 예부터 구멍을 뚫어 삶의 지혜를 만들어 왔다. 조상들은 바위를 파서 석굴을 만들었고,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었으며, 때로는 깊이 파서 터널을 내고 지하 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렇게 깊이 파 들어갈 때, 비로소 시원한 물을 만나고, 더위를 피할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 우물을 파라’는 옛 속담의 의미일 것이다. 한곳을 깊이 파야 비로소 맑은 물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너무 많은 곳을 파헤치기만 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사람들은 빠른 성공을 원한다. 단번에 성과를 내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가 쉽게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물을 파는 것처럼, 삶의 중요한 가치도 깊이 파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더 좋은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현재의 노력을 소홀히 한다. 하지만 여기저기 조금씩 파헤쳐서는 결코 맑은 물을 만날 수 없다. 깊이 파고 또 파야 지하수를 만나듯,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끈기와 집중이 필요하다.


위대한 예술가, 학자, 발명가들은 모두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피카소가 위대한 화가가 된 것은 수천 점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수 있었던 것도 1,000번 이상의 실패 끝에 얻은 결과였다. 그들은 한 우물을 깊이 팠다.

현대사회에서는 수많은 정보가 빠르게 변화하고, 다양한 기회가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깊이 있는 성찰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기간의 성공을 쫓기보다, 오랜 시간 한 분야를 파고들며 내공을 쌓는 것이 결국 더 단단한 기반을 만들어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한 우물을 깊이 파야 한다. 작은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파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맑은 물이 솟아오를 것이다.

우물이 가르쳐 준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깊이 파라. 그러면 반드시 시원한 물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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