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콕일기 (12) 고쳐 쓰는 기쁨

by 구민성

고쳐 쓰는 기쁨


d7d85395-609a-48db-9bcd-63cf586e22b2.png?type=w580 버리기 전에... 잠깐만 생각해요.


출입문 방충망이 계속 말썽이었다. 열 때는 괜찮은데 닫을 때마다 턱턱 걸려서 애를 먹었다. 옛날 성질대로라면 몇 개는 부수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강단도 없어서 속만 태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방충망을 떼어내고 아랫부분을 살펴보았다. 가만 보니 로울러를 고정시키고 있는 나사가 약간 헐거웠다. 십자드라이버로 꼭 조였다. 그리고 다시 끼워서 닫아보니 기가 막히게 부드러웠다. 고친 시간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애들 말로 기분짱이었다. 없던 애인이 생기면 이럴까?


텃밭에 물 주는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물이 자꾸 샜다. 공구점에서 다시 사 왔는데, 혹시나 싶어서 고장 난 꼭지를 풀었다가 다시 끼워보니 물이 새지 않았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느슨하게 조였던 모양이다. 사람이 왜 이렇게도 헐렁한지 몰라. 그러나 자책은 잠시였고, 내가 고쳤다는 기쁨으로 주먹을 아래로 힘차게 내리며, 나이스!


16년 동안 사용한 김치냉장고가 속을 썩였다. ROOM1은 괜찮은데 ROOM2에 전원이 켜지지 않아 음식만 버렸다. 오래 썼으니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며 인터넷으로 가격도 알아봤다. 한참 웹서핑을 하다가 혹시나 싶어 냉장고 앞쪽에 붙은 1588 어쩌고 하는 곳으로 전화했다. 목소리 좋은 상담원이 안내하는 대로 전원 버튼을 5초 정도 눌렀더니 불이 들어오는 거였다. 그걸 모르고 버튼 눌러도 불이 안 들어오니까 고장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상담원 아가씨(?), 땡큐 이빠이!!


단추가 떨어졌거나 봉제선이 터진 작업복도 대충 기웠더니 입을 만했다. 그런 옷은 몸 가리고 질기면 충분하다. 나들이옷이나 구멍 난 양말이 아니면 아무도 흉보지 않는다. 어차피 산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산신령님이 나를 혼내거나 다람쥐가 놀리지도 않는다. 다만 바느질하면서 손가락은 조심해야 한다. 찔려보니 되게 아프더라.


고장 난 나로, 선풍기, 부러진 삽자루, 손잡이 떨어진 물통 등등 여러 가지를 고쳐 써보니 새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더라. 아니, 오히려 새것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그 물건에는 나의 손때가 묻어있고, 나와 공유한 시간이 길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내 작업장에는 잡동사니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지저분하다고 하지 않고 다양하다고 말한다.


최근에 몇 번의 고쳐쓰기를 경험하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도 이럴 수 있겠다. 제대로 모르면 건강을 상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심하면 포기도 할 것이다. 언제나 잘 살피고 잘 고치면 몸도 오래 쓸 수 있으리라. 그러면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더 행복하게 즐기지 않겠는가.


생활 방식도 많이 바꾸려고 노력한다. 천천히 호흡하기, 노동 못잖게 휴식도 적절하게, 남에게 겸손하기(물론 자신에게도...), 많이 듣고 적게 말하기 등등... 어쨌든 물자나 인격에 약간의 결함이 있다고 다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모두 나와 연결된 소중한 인연일 테니.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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