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첨성대를 훔쳐라
<1>
“좋아. 첨성대를 훔치자. 이게 내 은퇴작품이야.”
첨도가 나직하게 말할 때 그의 눈에는 불이 날듯이 광채가 났다.
“혀… 형님, 첨성대를 훔쳐요?”
“그래, 첨성대 도둑질을 위해 닉네임도 바꿨어. 줄이면 첨도, 어때?”
“첨도라구요? 아,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근데 그걸 어떻게 훔칩니까?”
용수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교도소에 들어와서 알게 된 그는 다음 달에 출소하니 첨도보다 한 달 먼저 나가는 셈이다.
“다 작전이 있으니 넌 내가 시키는 일만 하면 돼.”
“아무리 작전이 있어도 그렇지 첨성대가 얼마나 무거운지 압니까? 덩치는 또 얼마나 큽니까? 더구나 국보급 문화재를 훔쳐서 어디에 팝니까? 우리가 뜯어먹을 수도 없고…….”
“어허, 말이 너무 많구먼. 역시 사기범은 말이 많고 나처럼 절도범은 행동이 과감하지. 날 보라구. 말보다 행동을 먼저 하잖아.”
첨도가 용수를 은근히 얕잡아보는 투로 말하니 용수는 내심으로 반발했다.
‘흥, 대가리 나쁜 도둑놈아. 힘만 세면 다냐? 돌대가리 새끼!’
그러나 겉으로는 굽신거리며 알랑방귀를 뀌는 것이 용수의 강점이다.
“아이고 형님은 역시 대단하십니다. 첨성대 도둑질. 꿈이 정말 큰데 꼭 성공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성공할 거야. 멋지게 성공해서 한 밑천 잡고 말겠어. 그리고 나는 이번 프로젝트가 마지막이야.”
첨도가 어깨를 뒤로 약간 젖히며 말했다.
“마지막이라뇨? 왜요?”
“이 사람아, 나라고 언제까지나 도둑질만 할 수는 없잖은가?”
“그, 그야 그렇죠. 근데 마지막으로 성공하면 나중엔 뭐 하시게요?”
“뭐, 돈만 많으면 부모님도 잘 모시고 처자식도 호강시킬 수 있지. 아니 그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서 이웃 돕기를 먼저 해야지.”
첨도는 눈을 지그시 감고 결의를 다지는 표정으로 말하고 용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했다. 용수는 말도 안 되는 모순을 느꼈지만 굳이 표현하지는 않았다. 다만 속으로만 빈정거렸다.
‘흥, 가족을 위해서 도둑질을 한다고? 이웃 돕기 하려고 첨성대를 훔친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야. 살다 보니 별소릴 다 듣겠네.’
그때 첨도가 뜬금없이 말했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용수 자네에게도 한 10억 줄게.”
“네? 시, 십억이라고요?”
“왜, 적은가?”
“아니, 그게 아니고……. 저어…… 제가 뭘 해야 됩니까?”
“자넨 두 가지만 잘하면 돼. 첫째, 비밀 지키기와 둘째는 내 말에 복종을 잘하는 거야,”
“네 형님, 잘 알겠습니다. 비밀과 복종, 꼭 기억하겠습니다.”
용수는 가슴이 쿵쿵 울렸다. 10억이라니, 그런 막대한 돈을 준다니, 갑자기 첨도가 위대하게 보였다. 용수는 첨도가 꼭 성공하기를 빌었다. 아니, 성공하리라고 믿었다. 아니 아니, 성공을 도우기로 결심했다.
<2>
한 달 간격으로 출소한 두 사람은 자주 만나서 작전 회의를 거듭했다. 자동차 유지비와 기본적인 생활비는 어렵잖게 만들었다. 첨도가 보석점과 과일 상점을 한 번씩 털어서 돈을 조금 만들었다. 용수도 볼로초라는 이상한 풀뿌리로 부자들에게 세 번이나 사기 쳐서 자금을 보탰다.
그렇게 구한 돈으로 그들은 과업을 시작했다. 일단 월요일에 경주로 갔다. 아무래도 손님이 적은 월요일이 첨성대에 접근하기가 쉽다고 판단했다. 마침 초가을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이런 날에는 CCTV에도 잘 잡히지 않아서 침투가 용이했다.
첨성대 내부에 들어간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전기다. 그들은 미리 준비해 간 소형 발전기에 전선을 연결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켰다. 다음엔 모바일 핫스팟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경주시청을 검색해서 ‘열린 시장실’로 들어갔다. 첨도는 교도소에서 배운 컴퓨터 실력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존경하는 경주 시장님께-
안녕하십니까?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본론만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1. 우리는 첨성대를 수출할 준비가 이미 끝났습니다.
2. 우리의 요구사항에 시장님의 아낌없는 협조를 부탁합니다.
3. 우선 식수. 라면, 과일, 밑반찬 등을 보내주십시오.(2시간 이내)
4. 음식물의 독성 검사를 하도록 시장님의 애견 쫄이를 보내주십시오. 쫄이에게 좀 미안하면 세 살배기 손자를 보내셔도 됩니다. 식음료가 모두 안전하면 쫄이나 손자의 안전을 우리가 보장할 것입니다.
5. 우리에게 총을 쏘면 첨성대라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에 총알 자국이 남습니다. 그러면 문화재 훼손 혐의로 처벌 대상이 됩니다.
6. 위의 사항을 묵살하거나 저격수가 우리를 쏘면 경주시청에 실치해 놓은 고성능 시한폭탄이 터집니다.
7. 우리가 첨성대를 옮길 때까지 방해하지 마십시오. 만약 방해하면 시장님의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8. 나는 참을성이 부족하니까 시험하지 마십시오.
용감한 남자 첨도 올림 (010-8585-5858)
이메일 한 통으로 경주시청은 발칵 뒤집어졌고 시장은 부들부들 떨었다. 경북도지사가 1등으로 오고 이어서 행정 안전부 장관, 국방부 장관, 경찰서장, 문화재청장 등이 현장에 왔다. 하지만 모두 어찌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이었다. 잠시 후에는 국회의원 수십 명도 왔다. 경주시장이 먼저 첨도에게 카톡 대화를 요구했다.
-첨도 선생님, 반갑습니다. 저는 경주시장 양상호라고 합니다.
-네, 저는 선생님이 아니고 첨성대 도둑놈, 줄여서 첨도라 하지요.
-아, 첨도가 그 말이군요. 그런데 이 일의 목적이 뭡니까?
-딴 거 아니고 돈이 좀 필요해서요.
-돈은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첨도는 카톡을 잠시 중단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많을수록 좋지만 최소한 1,000억 정도 필요합니다.
-아이고, 그렇게나 많이요?
-첨성대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겠지요.
-일단 알았습니다. 근데 이번 일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취소하시고 다른 돈벌이를 찾으신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시장님, 헛소리 그만하십시오. 카톡 몇 줄로 바뀔 마음이라면 이 일을 왜 시작했을까요?
경주시장은 첨도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카톡을 다시 보냈다.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경주시장의 권한으로는 결정할 수 없으니 윗분들과 상의하겠습니다. 3일만 기다려 주십시오.
-좋아요. 3일 후 정오까지 내 계좌에 1,000억이 입금되지 않으면 나는 첨성대를 외국으로 옮길 겁니다.
-네. 그런데 첨성대는 아주 무거운데 어떻게 옮길 겁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시장님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카톡이 너무 길군요. 식사할 시간입니다.
일단 이 정도로 첫 소통이 이루어졌다. 양 시장은 회의실에서 첨성대 보존 위원회 위원들에게 카톡 내용을 브리핑했다. 장관들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관련 공무원들이 대책 위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설렁탕을 먹어가면서 대책 회의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사건의 해결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쪽에서는 총을 쏠 수도 없다. 특등사수가 저격을 하면 깔끔한데 범인은 첨성대 안에 숨어서 지내니까 보이지를 않는다. 대책 위원들은 시간을 최대한 끌면서 범인이 지칠 때까지 장기전을 펼치자고 했다.
<3>
첨도는 요구했던 물과 기본적인 음식물을 받았다. 또 양 시장의 애견 쫄이도 함께 받았다. 낯선 곳에 온 쫄이는 하루 종일 낑낑대며 아무것도 안 먹었다. 그러나 이틀째부터는 조용해졌다. 라면, 과일, 음료수 등 주는 것마다 잘 먹었다. 물론 쫄이에게는 독극물 중독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첨도와 용수는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되어도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첨도는 화를 내면서 카톡을 보냈다.
-시장님, 아직 입금이 안 됐군요. 도둑놈보다 더 나쁜 인간이 거짓말쟁이 아닐까요?
-죄송합니다. 거짓말이 아니고 첨성대 지키기에 대해서는 정부 예산이 없어서 늦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늦어집니까?
-추가경정을 하자면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니까 임시국회까지 두 달 정도 걸립니다.
-네? 두 달이나 기다려요? 이틀도 갑갑한데요,
-그래도 정부에서 돈을 쓰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돈 1억도 쓸 수 없습니다.
-알았고요, 일단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또 연락 주십시오. 참, 우리 쫄이도 잘 부탁합니다.
양 시장은 카톡 내용을 대책 위원회에 보고했다. 참석자들은 여러 가지 의견들을 발표했는데 경찰서장의 발언이 많은 동의를 얻었다. 그는 명쾌하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장기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국회 동의를 명분으로 시간을 끌면 범인은 스스로 무너집니다. 그때까지는 첨성대를 폐쇄할 수밖에 없습니다.”
듣고 있던 문화재청장이 반론을 폈다.
“아닙니다. 지금은 관광철이라 수학여행이나 외국인들이 많이 옵니다. 이럴 때 우리 문화재를 알려야 하는데 첨성대 관람을 막으면 안 됩니다.”
“그럼 대안이 뭡니까?”
경북도지사가 짧게 물었고 문화재청장이 길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제 의견은 음식을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안 먹고는 못 살지요. 한 3일 정도만 굶기면 항복할 겁니다. 제 아무리 배 가 고파도 첨성대 돌을 뜯어먹을 수는 없거든요.”
“안 됩니다. 범인이 굶다가 눈 뒤집히면 우리 쫄이를 잡아먹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굶기는 것은 절대로 반대합니다.”
양 시장이 눈을 부라리며 항변하자 경찰서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범인들에겐 첨성대 자체가 감옥입니다. 저 속에서는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잠을 실컷 자도 갇혀있는 자유에 불과합니다. 갇힌 자유인은 얼마 못 가서 제 풀에 지칩니다. 범인들은 첨성대를 그대로 두고는 도망도 못 갑니다. 밖에 나오는 순간 잡힌다는 것을 알 테니까요.”
경찰서장은 갇힌 사람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갑론을박으로 길게 이어지던 대책회의는 경찰서장의 의견에 결론이 모아졌다.
한편 첨성대 안에서는 첨도가 속을 태우고 있었다. 벌써 주리가 틀리는데 국회 끝날 때까지 두 달 이상을 어떻게 기다릴지 답답해졌다. 그는 인터넷으로 크레인 임대를 알아보았다. 대형 크레인은 사용료가 상당히 비쌌다. 전화로 가격을 흥정하던 중에 상대방이 물었다.
“가격은 절충하면 되겠지만 크레인으로 무슨 일을 할 겁니까?”
“아, 네. 뭐 좀 옮기려고요.”
“글쎄 옮길 물건이 뭐냐니까요.”
“저, 첨성대를 부산항까지 옮기려고 합니다.”
첨도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뭐, 뭐요? 경주에 있는 그 첨성대 말인가요?”“
크레인 사장은 큰 목소리로 물었다. 거의 고함 수준이었다.
“네. 맞아요. 신라시대 때 만든 그 국보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할 건데요?”
“아, 내가 그걸 외국으로 수출하려고요.”
“국보를 수출한다고요? 정부 허가는 받았어요?”
“허가는 안 받았지만 내가 돈이 좀 필요해서…….”
“아니, 선생. 미쳤어요? 별 희한한 사람 다 보겠네. 전화 끊어요!”
첨도는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몇 군데 더 문의했으나 다른 회사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모두들 놀라거나 비웃기만 했지 일을 맡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첨도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밤늦도록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첨성대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별이 무척 많았다. 옛날 사람들은 이걸 왜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렇게 큰 돌을 어떻게 쌓아 올렸을까? 온갖 생각을 하다가 유난히 밝은 별 하나를 찾았다. 그와 동시에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
<4>
첨도가 생각한 사람은 풍운도사라는 마법사였다. 교도소에서 만난 그 남자는 신기한 마법을 부리는 사람인데 다행히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풍운도사는 정말 신통했다. 가령 참새를 독수리로 만들거나 풀잎을 토끼로 만들 수도 있다. 자전거를 고급 승용차로 만들 수도 있고 농구공을 골프공으로 바꾸는 것은 장난처럼 쉽다. 좌우간 못 하는 게 없다. 아니, 딱 두 가지는 안 된다. 첫째는 자신과 가족에게 이득이 되는 마법은 부릴 수가 없다. 예컨대 자신을 더 부자로 만들거나 아내를 더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아이들을 우등생으로 만들 수도 없다. 두 번째는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도 없다. 질병이나 사고와 노화는 어쩔 수 없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므로 신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두 가지 불능에 대해서는 교도소에 있을 때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렇지만 풍운도사라면 이번 과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첨도는 전화를 하여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바로 본론을 말했다.
“풍운도사님, 요즘도 마법이 가능합니까?”
“물론이지요. 아직도 짱짱합니다.”
“그럼, 저의 부탁을 좀 들어주십시오.”
“부탁이라니……. 뭔데요?”
풍운도사는 항상 거만하던 첨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탁이라 말하니 좀 이상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고 일단 이쪽으로 좀 오십시오. 저는 나갈 상항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해서 풍운도사가 나섰다. 그는 입구의 경찰에게 짜장면 배달 왔다고 했다. 경찰들은 철가방 속의 짜장면까지 확인하고 들어가게 했다.
“그래, 내가 할 일은 뭡니까?”
“여기 이 첨성대를 프랑스로 옮길 방법이 있을까요?”
“첨성대를 프랑스로 왜 옮깁니까? 여기가 딱 맞는 자린데요.”
“아, 내가 좀 필요해서 그래요. 일종의 자유형 수출이지요.”
첨도는 자기가 말했지만 자유형 수출이라는 표현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자유형 수출이라니, 그건 불법 아닙니까?”
“괜찮아요, 어차피 법대로 사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이니까요.”
“그래도 불법이면 좀……. 교도소 출감한 게 두 달 전인데…….”
“어쨌든 첨성대를 옮길 수는 있습니까?”
“가능은 하지만……. 이번에 또 잡히면 전과 6범이 되는데…….”
풍운도사의 가능하다는 말에 첨도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허허, 우리 선수들이야 별이 다섯 개든 여섯 개든 뭔 상관입니까? 돈 많이 벌어 가족들 배불리 먹이면 되지요. 그리고 요즘은 교도소 생활도 편하고 좋잖아요?”
“그래도 이번 물건은 워낙 세계적인 문화재라서 잡히면 처벌이 만만찮을 겁니다.”
첨도는 풍운도사의 갈등을 눈치채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좋습니다. 만약 구속되면 가족들의 생활비로 매월 5백만 원씩 부인 통장에 넣어 드리지요.”
순간 풍운도사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물었다.
“그럼 성공하면요?”
“저 물건을 프랑스까지 옮겨주면……. 현금 100억 원을 드릴게요.”
순간 풍운도사의 눈은 왕사탕만큼이나 커졌다. 믿기가 어려웠다.
“100억 원이라고요? 믿어도 됩니까?”
“물론이지요. 나는 도둑질을 해도 거짓말은 안 합니다.”
그때까지 한 마디도 없던 용수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용수는 생각했다.
‘뭐? 100억이라고? 처음부터 온갖 일을 다 한 나에겐 10억을 준다면서 이제 금방 들어온 저 인간에게 100억이나 준다고?’
용수의 표정은 비록 이슬비처럼 조용했으나 마음으로는 폭풍우 같은 불만이 생겼다. 그는 이 사업을 위해 첨도와 작전을 짜고 심부름도 다 했다. 심지어 집에도 갖다 주지 않은 돈으로 필요한 물품을 사다 날랐다. 그로서는 정말 피 같은 돈을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합류했고 땡전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은 풍운도사가 자기보다 열 배의 거금을 받는다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섭섭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 용기를 내어서 첨도에게 물어봤다.
“형님, 저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지만 풍운도사님이 저보다 열 배를 받는다는 것은 좀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처음부터…….”
“처음이고 끝이고 그게 문제가 아니야. 중요한 것은 역할과 실력이야.”
“역할과 실력이라뇨?”
“첨성대를 외국으로 가져가는 것이 역할이고, 그걸 해 낼 수 있는 게 실력이야.”
“그래도 저는 지금까지 라면도 끓이고 요강도 치웠잖습니까? 또 매일 형님 안마도 해드리고, 개 사료 주고, 개똥도 치우고, 청소까지 혼자서 다 하지 않습니까?”
“야, 그런 일은 알바생도 할 수 있어. 중요한 것은 남들이 못 하는 핵심적인 일이야.”
용수는 첨도의 말을 이해는 해도 불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형님, 그래도 제가 하는 일은 열 가지도 넘는데 저 사람은 한 가지뿐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거야. 단 한 가지라도 남이 못 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지. 그게 능력이고 사람의 가치라는 거야. 용수 네가 그런 능력이 있으면 100억 줄 테니 어디 한 번 해볼래?”
“…….”
용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입만 튀어나왔다.
“왜 말이 없어? 거짓말 잘하는 사기꾼이랑 거짓말처럼 이적을 일으키는 마법사는 다른 거라구. 알았어?”
첨도는 좀 강하게 몰아붙였고 용수는 조용히 말했다.
“알았습니다, 형님. 그런데 그 사기꾼 소리는 이제 그만 좀 하십시오. 저도 어엿한 사업가의 꿈이 있습니다.”
이때 용수의 마음속에는 그 사업가의 꿈이란 것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풍운도사에게 준다는 100억을 내가 사기 쳐서 뺏을 거야. 그것만 차지하면 나도 사기꾼의 삶을 마감하리라. 상가 건물 지어서 월세 받아야지. 마누라에게 큰소리치며 똥차 없애고 볼보 새 차도 탈 것이다.’
<5>
대책 위원회 사람들은 범인들의 항복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 범인들은 첨성대라는 감옥 속에 스스로 갇혀있으면서 도망가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이란 먹고 자는 일의 불편이 누적되면 스스로 주저앉게 된다. 가재는 물 마르면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대책위로서는 국회 결정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이 시간 끌기에 최고 명분이다.
그러나 경주시장은 느긋할 수가 없다. 인질이 되어있는 쫄이 때문이다. 어린 손자는 쫄이 데려오라고 울면서 할아버지의 가슴을 때린다.
말 못 하는 쫄이도 불쌍하고 말로 달랠 수 없는 손자도 애처롭다. 그래 그는 설거지 중인 아내에게 가서 쭈뼛거리며 말했다.
“여보, 저 우리……. 정민이를 첨성대에 보내면 안 될까?”
“왜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저……. 쫄이 옆에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뭐라구요? 그게 말이라고 해요?”
역시 아내는 펄쩍 뛰었다.
“그럼……. 쫄이 데려오고 대신에 당신이 첨성대에 좀 있으면…….”
철퍼덕!
퐁퐁 거품이 잔뜩 묻은 수세미가 날아와서 경주시장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아내의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젊은 시절 말단 공무원의 쥐꼬리 봉급, 삼 남매 키우면서 열다섯 번의 셋방 이사, 도박과 주식 투자로 주공아파트까지 날린 남자, 설상가상으로 젊은 과부나 따라다니던 바람쟁이 등등 귀에 익은 넋두리가 속사포처럼 터져 나온다.
계속 듣기가 괴로운 그가 전화를 받는 척했다.
“네, 경주시장입니다. 아, 긴급회의라구요? 알겠습니다. 지금 나가겠습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 그에게 아내가 돌직구를 날렸다.
“전화 벨소리도 안 들리던데 혼자 통화해요?”
“아니야. 진동으로 돌려놨거든.”
그의 잔머리와 순발력은 경주 아니라 ‘서울시장깜’이라고 친구들이 인물평을 하는 수준이다.
양 시장은 운전기사를 부르지 않고 직접 차를 몰았다. 그는 강변의 호젓한 카페에 가서 시간을 때웠다. 젊은 애들의 노래는 너무 빨라서 알아듣기가 어려웠지만 커피 하나는 맛있었다.
풍운도사는 목소리를 착 깔고 말했다.
“내일부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첨도 선생은 여기에 적혀있는 돼지 대가리와 과일 등 제사상을 차려주십시오.”
첨도는 건네주는 메모지를 받으면서 좀 귀찮다고 생각했다.
“도사님, 그 제사상도 마술로 차리면 안 됩니까?”
“어허, 큰일 날 말씀. 제사상은 제주가 정성을 다해서 마련해야 하거늘, 그 무슨 망발입니까? 천지신명께서 노하시면 아무 일도 안 됩니다. 얼른 준비하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첨도는 용수에게 메모지와 돈을 주면서 시장에 다녀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녹차를 우렸다.
“또 하루에 세 시간씩 사흘 동안 진행 될 기도 시간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마십시오. 숨소리 외에는 절대로 안 됩니다.”
“수, 숨소리 외에는 저, 절대 안 된다구요?”
풍운도사의 일도양단식 지시에 첨도의 물음은 힘없이 버벅댔다.
“그렇습니다. 만약 말소리를 내면 벙어리로 만들어버립니다.”
“버, 벙어리요? 누가요?”
“천지신명께서 하시는 일이지요.”
“아, 네에. 그럼 말만 안 하면 됩니까?”
“아니, 또 있습니다. 기도 시간에 졸면 안 됩니다.”
“왜, 왜요? 조용히 졸아도 안 됩니까?”
“네. 졸면 정성이 없다고 장님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자, 장님요? 누가요?”
“역시 천지신명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아, 네. 아주 어렵군요.”
첨도는 잔뜩 겁을 먹었다. 목소리도 약간 떨렸다.
“그러나 세 시간씩 사흘 동안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대신에 기도를 마치면 벙어리와 장님에서 풀어드립니다. 단, 저의 사례금에 두 배 더 추가해야 합니다.”
첨도는 또 놀랐다. 두 배라면 200억 아닌가? 너무 어려운 조건을 자꾸 말하니까 풍운도사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돈에 대한 직접적인 말보다는 기도의 복잡성에 기대어 불만을 비쳤다.
“풍운도사님의 말씀은 알겠는데 기도의 조건들이 참 복잡하군요.”
“네. 조금 복잡하지요. 보통의 마술은 즉석에서 바로 해도 되지만 첨성대 이동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정성껏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법의 엄한 심판을 받아야 하니까요.”
첨도는 네, 네 하면서 연신 머리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흔쾌히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차를 댓 잔씩 마시고 있으려니 시장에 갔던 용수가 돌아왔다.
<6>
풍운도사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모두 조용하고 엄숙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 있는 모두는 기도하는 동안에 졸거나 말을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이것을 어기면 천지신명님의 진노를 막을 수가 없으니 조심들 하십시오.”
첨도는 같은 소리를 또 들으니까 짜증도 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겁이 나서 말을 못 했다.
첫날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승복 비슷한 옷을 입은 풍운도사는 목탁 치면서 이상한 주문도 외었다. 불경과 좀 다르게 들리는 주문은 처음부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규칙적인 리듬의 목탁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졸면 장님이 된다고 했으니 허벅지와 볼을 꼬집기 바빴다. 그래도 졸리면 일어서서 돼지 대가리를 향해 무수히 절을 했다. 다리가 아프면 앉고 졸리면 또 절을 했다. 얼핏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40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문제가 터졌다. 한쪽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쫄이가 졸기 시작했다. 언제 봤는지 풍운도사의 눈에서 푸른빛이 나오더니 쫄이의 눈을 비추었다. 쫄이는 당장 앞을 못 보게 되었다. 답답해진 쫄이가 낑낑대니까 풍운도사의 눈에서 붉은빛이 나왔고 쫄이는 즉시 벙어리 개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짖어도 소리가 없으니 조용하긴 했다.
첨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제도 경주시장이 요구해서 강아지의 건강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냈지 않은가. 손자를 달래야 한다는 시장에게 첨도는 건강한 쫄이의 사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 강아지가 이런 상태인 것을 시장이 안다면 돈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인질이란 안전하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 법이고, 그렇다면 협상의 실패는 불문가지이다.
첨도가 깊이 고민하는 중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드디어 기도가 끝났다. 말이 세 시간이지 정말 석 달 같이 느껴졌다.
사흘 중에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쫄이가 저렇게 되어버리니 첨도로서는 당장 다음 문제가 걱정이었다. 그는 풍운도사에게 매달렸다.
“저, 도사님. 쫄이는 좀 용서해 주십시오. 쟤가 뭘 압니까?”
“안 됩니다. 천지신명님은 엄격하십니다.”
“아이고, 도사님. 그래도 쫄이가 저 모양이면 우리가 위험해집니다.”
“왜요? 저 녀석이 덤빕니까?”
풍운도사는 갑자기 겁먹은 표정으로 변했다.
“아뇨. 강아지에게 문제가 생기면 주인이 흥분합니다. 만약 저쪽에서 공격을 강화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어쩌면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일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첨도가 계속 요구하니까 풍운도사도 어쩔 수 없이 쫄이를 원상태로 돌렸다.
기도 둘째 날은 별문제 없이 지나갔다. 첨도는 지루한 것이 힘들긴 했지만 장밋빛 꿈을 그리면서 견뎠다. 용수도 역시 힘들었지만 풍운도사가 차지할 돈을 뺏기 위한 사기 수법을 구상하면서 억지로 버텼다.
기도 마지막 날에도 잘 진행되다가 마치기 2분 전에 용수가 말을 해버렸다. 쫄이가 낑낑대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조용히 해! 또 벙어리 될래?”
바로 그 순간에 풍운도사의 눈에서 붉은빛이 나오더니 용수를 노려보았다. 졸지에 용수는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용수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면서 애원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마치 팬터마임 같았다. 기도를 다 마치고 용수는 메모지에 써서 첨도에게 건넸다.
<형님. 좀 도와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용수가 하도 매달리기에 첨도는 조용히 설명했다.
“안 돼. 너를 본래대로 만들자면 돈이 필요해.”
<하지만 이제 기도를 마쳤잖아요? 제잘 부탁해 보세요.>
“그래도 지금은 안 돼. 첨성대를 팔아야 돈이 생기잖아. 아니면 너 돈 많아?”
<돈이 얼마나 필요해요?>
“200억 원이야. 도사님 사례금까지 합하면 300억 원이지.”
그 말에 용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사례금만 해도 자신의 몫보다 열 배나 되는데 300억이면 30배 아닌가. 그 돈을 주지 않으면 평생을 벙어리로 살아야만 한다니 미칠 지경이었다. 장마철 먹구름처럼 절망감이 몰려왔다.
잠시 후에 풍운도사가 말했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첨성대를 보며 108배를 정성껏 하십시오.”
“그러면 다 됩니까?”
“질문은 하지 말고 시키는 것만 하십시오.”
첨도는 어쩔 수 없이 절을 시작했다. 용수도 절이야 하지만 머릿속에는 분노와 반감이 가득했다. 그럭저럭 108배가 끝났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풍운도사의 주문과 목탁 소리가 갑자기 커지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말이다.
<7>
첨성대가 차츰차츰 작아지는 게 아닌가! 성벽처럼 거대하던 첨성대는 풍운도사의 주문에 따라서 조금씩 줄어들더니 승용차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첨도와 용수가 서로를 마주 보며 할 말을 못 찾고 있는데 첨성대는 다시 보온병 크기로 줄어들었다. 풍운도사가 첨성대를 들어보니 그래도 무거웠다. 아무리 작아져도 명색이 돌덩이 아닌가. 그는 다시 주문을 외우면서 목탁을 세게 두드렸다. 그랬더니 세상에! 첨성대는 휴대폰 크기가 되어버렸다. 그는 첨성대를 한 손으로 들어서 옆에 있던 라면 상자에 넣었다. 누구나 한 손으로 달랑 들 수 있는 무게였다.
바로 그때 대책위원회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쪽을 지켜보던 경찰관이 상급자에게 보고를 한 것이다.
“과장님! 큰일입니다. 첨성대가 없어졌습니다.”
“뭐, 뭐라고? 야 임마, 잘 지키라고 했잖아! 어, 진짜 없네.”
졸다가 보고 받은 보안과장은 머리가 띵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그가 경찰서장에게 보고해서 경주시장과 대책위원들이 급히 모였다.
위원들이 CCTV 모니터를 보니까 첨성대는 없고 세 남자와 강아지뿐이었다. 그리고 돼지 대가리와 라면 상자 하나만 보였다.
위원들이 서로를 쳐다보니 모두들 하얗게 질렸다. 이제 일이 잘못되면 공직에서 파면될 것이다. 대통령이 알기 전에 첨성대를 찾아야 한다느니 지금이라도 보고를 하자느니 의견이 분분했다. 경주시장이 떨리는 손으로 카톡을 보냈다.
-첨도 선생. 첨성대는 어떻게 됐나요?
-아, 네. 수출을 위해서 옮기는 중입니다.
-옮기다뇨? 어떻게요?
-우리는 울트라 매직이라는 최첨단 마법을 접목했지요.
첨도는 답글을 보내면서 씨익 웃었다. 울트라 매직과 최첨단 마법은 즉흥적으로 썼지만 꽤 괜찮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대책위원들은 그제야 CCTV를 되돌려 보았다. 화면에는 스님 옷을 입은 남자가 목탁을 치면서 뭐라고 읊었다. 그런데 거대한 첨성대가 휴대폰 크기로 줄어들더니 라면 상자에 쏙 들어가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는가 하면서 그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경주시장이 카톡을 보냈다.
-그럼 첨성대는 어디로 옮길 건가요?
-그건 사업상 비밀입니다.
-도대체 왜 이러세요? 며칠만 기다리면 되는데…….
경주시장은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시장이 되었는데 이 사고로 끝장난다니 애간장이 타는 거였다. 그러나 시장의 정치적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한 첨도로서는 솔직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시장님이 돈을 안 주니까 수출이라도 해야지요.
-돈은 준비 중입니다. 근데 수출은 어디로 합니까?
-나중에 알게 됩니다. 이제 카톡 보내지 마세요.
경주시장은 카톡창을 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에 그는 대책위원들에게 경과를 보고했다.
듣고 있던 경찰서장이 전화기를 달라더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첨도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저 지금 바쁜데요.”
“잠깐만요. 전 시장님이 아니고 경찰서장입니다.”
“글쎄. 시장이든 서장이든 바쁜 사람에게 왜 이러시오.”
첨도가 불쾌하다는 듯이 툭 쏘았다. 그러나 경찰서장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첨도 선생, 잘 들으시오. 만약 첨성대를 원상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경찰 특공대가 당신들을 체포할 것이오. 국내 최고의 특공대가 완벽한 작전을 펼치면 당신들은 3분 이내에……. “
“3분이든 30분이든 필요없수다. 특공대가 다가오면 나는 첨성대를 폭파하고 자살해 버리겠소.”
첨도가 라면 상자에서 다이너마이트 두 개를 꺼내더니 천천히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권총도 꺼내어 자신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 모습을 보던 경주시장과 대책위원들은 모두 바짝 긴장했다. 경주시장이 폰을 받아서 말했다.
“여, 여보세요. 경주시장입니다. 우리가 특공대를 투입하기 전에 자수하세요. 자살보다는 자수가 훨씬 좋잖아요.”
“아니. 자수할 거면 왜 시작했을까요. 그리고 나는 이미 전과가 많아서 이번에 또 잡히면 평생 햇볕 보기 어려울 겁니다.”
“여보세요. 잠깐만요. 체포되기 전에 자수하면 처벌이 많이 가벼워집니다. 겁먹지 마시고 용기 있게 자수하십시오.”
“흐흐, 겁먹지 않고 용기 있게 수출할 겁니다.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8>
첨도는 휴대폰을 꺼버리고 풍운도사에게 물었다.
“도사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자, 이제 이것을 옮기면 됩니다. 그전에 돈부터 주십시오.”
“도, 돈은 지금 없고……. 외국으로 수출을 해야 생기지요.”
“뭐요? 그럼 외상입니까?”
“아니, 외상이 아니고 후불제라는 겁니다. 수출이란 본래 상품을 다 인도한 후에 돈을 받으니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용수가 첨도의 팔을 끌면서 무언극 연기를 했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키면서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쳤다. 말을 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는 표현이었다.
첨도가 풍운도사에게 부탁했다.
“저, 도사님. 이제 일이 다 끝났으니 저 사람의 벌칙을 좀 풀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안 됩니다. 200억 원을 더 받아야 풀어줍니다.”
“그럼, 사례비까지 모두 300억 원입니까?”
“네. 처음에 말했잖습니까?”
첨도는 한숨을 푹 쉬더니 용수에게 말했다.
“야, 너도 들었지? 200억 원이 더 필요한데 돈 있어?”
용수는 세차게 도리질을 하면서 제 가슴을 쳤다. 그런 거금이 있으면 이런 일 따위를 왜 하겠는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말을 할 수는 없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풍운도사가 물었다.
“첨도 선생. 내가 듣기로는 이 사람이 사기꾼이라던데 맞습니까?”
“네.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내 사업을 도우면서 착실히 살지요.”
“아, 그럼 벙어리를 고치지 말고 이대로 살면 되겠네요.”
“이대로 살다니, 왜요?”
첨도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내 말은 벙어리로 살면 첨도 선생은 200억을 아끼고, 또 저 사람은 앞으로 사기를 안 치잖아요. 말을 못 하면 사기 칠 수가 없겠지요.”
용수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치다가 머리도 치면서 참느라 용을 썼다. 그 모습을 보던 첨도는 풍운도사에게 다시 부탁했다.
“도사님, 저 사람 갑갑해서 미치면 어떡합니까? 일단 풀어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돈을 드리겠습니다.”
“안 됩니다. 200억 원 받기 전에는 절대 안 됩니다. 천지신명님은 사기꾼 하나 정도야 티끌처럼 생각합니다.”
용수는 메모지에 급히 썼다.
<개는 풀어줬잖아요. 내가 개보다 못합니까?>
풍운도사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개보다 못할 수도 있지요. 개는 주인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아, 그리고 첨도 선생도 이 사람 조심하십…….”
바로 그 순간 용수는 주먹으로 풍운도사의 입을 쥐어박았다. 참다가 폭발한 용수는 계속 주먹을 날렸다. 그것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질풍노도였다. 그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어떤 액션 영화보다 더 리얼했다.
잠시 동안에 풍운도사는 코뼈와 이빨이 부러져서 그야말로 묵사발이 되었다. 풍운도사는 자신의 몸을 지키는 마법만은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뜯어말리던 첨도까지 배를 걷어 차였다. 첨도는 숨이 턱 막히면서 꼬꾸라진 상태에서도 방금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사람 조심하라는 풍운도사의 덜 끝난 말이 머리를 스쳤다.
다급해진 첨도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용수에게 겨누었다. 총구는 많이 떨리고 있었다. 용수는 픽 웃더니 첨도의 뺨을 후려지고 권총도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는 총을 첨도에게 겨누는 것이 아닌가.
첨도는 꿇어앉아서 싹싹 빌었다.
“사, 살려만 주게. 돈 많이 줄 테니. 100억, 아니 200, 아니 300억…….”
그러나 용수는 첨도의 머리에 총을 쏴버렸다. 그런데 첨도는 죽지 않았다. 다만 무릎 앞에 오줌만 흥건했다. 그 총은 실물과 너무나 닮은 장난감이었다. 이 작전 시작하던 날 완구점에서 구입한 것이다. 둘이 함께 완구점에 갔던 사실을 첨도는 깜빡 잊었고 용수는 기억하고 있는 차이였다. 용수는 통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웃음소리는 안 들리고 얼굴로만 웃었다. 마치 하회탈 같았다.
용수가 무음의 파안대소를 하는 중에 풍운도사가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는 살고자 하는 일념에서 본능적으로 도망을 감행하는 것이다. 용수는 자신을 고쳐주지 않고 도망가는 풍운도사에게 증오심이 폭발했다. 화산처럼 폭발한 용수는 풍운도사를 세게 걷어찼다. 흡사 이종격투기 선수의 맹공격 같았다.
그런데 그 세찬 발길질은 정확하게 풍운도사의 명치를 타격했다. 풍운도사는 축 늘어졌다. 첨도가 풍운도사의 가슴에 얼른 귀를 대어보았으나 조용했다. 급소 피격으로 절명한 것이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려다가 진짜로 죽어버린 것이다.
첨도는 용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면 어떡해!”
용수는 메모지에 얼른 썼다.
<죽일 생각은 없었고 우발적인 사고였어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야, 임마. 이제 첨성대를 수출해도 헛빵이야.”
<왜요?>
“프랑스에 가져가봤자 실물로 복원할 수 없잖아. 니가 복원할 수 있냐? 그리고 프랑스 대통령이 장난감을 거금 주고 사겠냐?”
용수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풍운도사의 100억 원을 사기 칠 수 없으니 새로운 사업도 볼보 새 차도 물거품이었다. 가슴 뛰던 그 꿈이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렸다. 용수는 눈물을 글썽이며 급히 썼다.
<실수였습니다. 진짭니다.>
메모를 읽던 첨도가 냉소적인 어투로 뱉었다.
“야, 그리고 너 말문도 영원히 못 뚫어. 이제 평생 벙어리야. 알아?”
그 말에 용수는 충격을 먹었다.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다가 상의를 홀랑 벗더니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실실 웃기도 했다. 특수 절도에 살인까지 저지르고 게다가 평생 벙어리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는 어쩌면 무기징역이나 사형까지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체포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권총과 다이너마이트도 장난감인데 그걸로 경찰특공대를 어떻게 당할 것인가.
용수는 저항을 포기했다. 그리고 급히 썼다.
<형님. 자수합시다.>
“안 돼! 아니, 잠깐 기다려 봐. 생각 좀…….”
하지만 첨도는 말을 못 마치고 턱이 휙 돌아갔다. 그 짧은 순간에 잔머리를 굴린 용수가 주먹을 날린 것이다. 용수는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차고 머리로 받으면서 맹수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당한 첨도는 2분도 못 되어 녹다운되었다. 마치 빈 자루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이윽고 용수는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경찰 특공대원들이 먼저 달려와서 현장을 장악하고 대책위원들이 뒤이어 따라왔다. 1명은 사망이고 1명은 중상인데 의식이 없다. 그리고 자수자는 벙어리다.
“먼저 권총과 다이너마이트부터 주시오.”
경찰 지휘지의 말에 따라 용수가 장난감 두 가지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모두 헛웃음을 터뜨렸다. 쫄이를 어르고 있던 경주시장이 라면 상자에서 첨성대를 찾아냈다. 하지만 일행들은 모형 같은 이 첨성대를 보고 웃을 수도 없었다. 명색이 국보로서 전 세계에 자랑하던 문화유산이 장난감처럼 라면 상자에 들어 있다.
모두들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발 빠른 지방신문 기자가 사건 보도를 해버렸다. 이 사실은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급기야 외신으로도 알려졌다.
경찰의 조사가 진행되었다. 용수는 필담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다. 내용은 복잡하지 않았다.
--첨도가 주동자이며 죽은 사람은 첨성대를 축소시킨 마술사입니다. 처음에 저는 심부름만 하고 용돈 정도 받는 것으로 생각해서 가담했습니다. 그런데 작업이 진행되면서 가만히 보니까 너무 엄청난 일이라서 자수하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반대했고 마술사는 인간적으로 저를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술사는 저를 벙어리로 만들었습니다. 홧김에 그를 때렸지만 죽일 마음은 전혀 없었으며 우발작인 사고입니다.
주동자 첨도와도 심하게 싸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책임 추궁과 모욕적인 언사에 자극받아서 이성을 잃고 때리다가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의 과오를 깊이 반성합니다. 죄송합니다.--
자술서는 악필이었으나 논리성만은 꽤 괜찮았다. 교도소에서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이다.
용수는 두 사람에게 자수를 권유한 노력이 참작되었다. 또 실어증이라는 절망적 상태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자수한 사실을 감안하여 형량이 무겁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소집해서 첨성대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무엇보다도 외국 관광객이나 외신에 이 사실이 얼마나 비판적으로 보일지 걱정이었다.
국무위원들은 첨성대를 원상 복구할 방법을 아무도 몰랐다. 과학자들이나 대학교수들도 주야장천 토론만 했지 해법을 찾지는 못했다. 기껏 나온 의견이 이 장난감을 없애고 다시 처음의 모양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반대였다.
4개월 후에는 정당의 사활이 걸린 총선이 열린다. 그런데 문화재 하나도 관리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를 야당이 얼마나 공격할 것인가. 국가적인 걱정거리란 야당에겐 꿀 같은 호재이므로 맹공격이 예상된다. 걱정하던 국민들 중에는 무당에게 굿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여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자 대통령은 속이 바싹바싹 탔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진다면 대통령은 허수아비가 될 것이다. 깊이 고민하던 대통령은 식욕을 잃고 잠도 설치다 보니 체중이 5킬로나 빠졌다.
그날도 잠이 안 와서 와인을 조금 마시고 겨우 잠들었다. 그런데 꿈을 꾸었다.
“대통령, 나 좀 보세요.”
“누, 누구십니까?”
대통령 앞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TV에서 보던 여왕의 복장이었다.
“과인은 선덕여왕이오.”
“아, 여왕님께서 여길 어떻게 오셨습니까?”
“천사백 년 전에 과인이 만든 첨성대가 이젠 장난감이 되었구려.”
여왕에게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여왕님, 죄송합니다. 이상한 마법사가 그렇게 만들어놓고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마법을 풀 수 없어서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대통령은 풀이 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 방법을 알려주려고 과인이 왔다오.”
“여왕님. 방법이 있습니까? 있다면 제발 도와주십시오.”
“알았소. 내일 당장 경북 청도에 있는 적천사로 가시오. 그 절 입구의 토굴에 법연대사라는 스님이 있소. 거기서 삼배 올리고 직접 부탁하시오. 다른 사람을 보내면 대사님은 돌아앉으니까 대통령이 직접 가시오.”
“네, 여왕님, 직접 가겠습니다. 그런데 거기 부탁하면 정말 되겠습니까?”
“그렇소. 과인이 보냈다고 하면 될 것이오.”
“아이고, 여왕님. 고맙습니다. 제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할 테니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알았소. 이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 살 수 있도록 힘써주시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은 과학의 힘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오. 때로는 비과학적인 기운이 과학을 압도할 수도 있으니까요. 자, 그럼 과인은 이만 가겠소.”
잠에서 깬 대통령은 경호실장과 경호원 두 사람만 대동하고 헬리콥터를 탔다. 적천사 토굴에서 삼배를 올리려고 하자 법연대사는 절을 받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님은 나라를 대표하는 분인데 소승에게 삼배를 하시면 온 국민이 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개 수도승에게 절을 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 그래도 선덕여왕님이 시키셨는데요.”
“그건 착오였을 겁니다. 아마 대웅전 부처님께 삼배 올리라는 것이 와전되었을 겁니다.”
“네에. 그렇군요. 그럼 대웅전으로 올라가겠습니다.”
대통령은 법연대사, 주지스님, 경호실장 등과 나란히 서서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그리고 요사채로 옮겨 차를 마시면서 이번 첨성대 사태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듣고 있던 법연대사가 말했다.
“대통령님. 이번 사태처럼 어려운 일이라면 반드시 풍운도사가 끼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국내에는 그런 술법을 부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었으니 어떡합니까? 혹시 대사님께서는 첨성대를 복원하실 수 있습니까?”
“네. 저는 할 수 있습니다. 풍운도사는 소승과 동문수학하던 도반인데 은사스님의 당부를 저버리고 환속했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술법을 배웠으나 한 가지만은 못 배웠습니다.”
“그 한 가지란 무엇입니까?”
“네, 그것을 소승도 찾고 있습니다. 마침 사흘 전에 천일기도를 마치면서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였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대통령은 궁금증을 참지 못 하고 계속 질문했다. 하지만 법연대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더 말하는 것은 천기누설이 됩니다. 자, 이제 현장으로 가시지요.”
일행들은 모두 대통령 전용 헬기를 타고 경주로 이동했다.
현장에는 수갑을 찬 용수가 간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옆에 라면 상자가 있었다. 법연대사는 라면 상자에서 장난감 같은 첨성대를 꺼냈다. 마치 다 알고 왔다는 태도 같았다.
그것을 절에서 가져온 빨간 보자기 위에 놓았다. 또 파란 보자기로 첨성대를 덮었다. 이어서 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통령님, 북쪽 하늘을 향해서 108배를 올리십시오. 국민을 대표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스님.”
대통령은 나라를 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했고 법연대사는 맑은 음성으로 염불을 외웠다. 대통령의 절이 끝난 후에도 30분가량이나 염불이 계속되었다. 날씨는 무척 좋아서 심해 같은 하늘이었다. 마침 어디선가 아홉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면서 연꽃 향기도 따라왔다.
잠시 묵상하던 법연대사가 일어나서 파란 보자기를 걷었다. 그랬더니 첨성대가 차차 커지기 시작했다. 참시 후에는 첨성대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숨죽이고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기자들은 셔터를 누르기 바빴고 아나운서들은 현장 중계에 열을 올렸다. 이 상황은 실시간으로 방송되었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잠시 차를 한 모금 마신 법연대사가 용수를 쳐다보더니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쯧쯧, 고생 많이 했군요. 풍운도사가 이렇게 했지요?”
그 물음에 용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고 북쪽 하늘을 향해서 108배를 하십시오. 진심으로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면서요.”
용수는 절을 시작했고 법연대사는 목탁 치면서 경을 외웠다. 잠시 후에 법연대사가 말했다.
“내 말을 따라서 하십시오. -이제부터는 착하게 살겠다.-”
“이제부터는 착하게 살겠다. 어? 말이 되네요. 아이고 스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까요?”
용수는 기적에 감읍하면서 법연대사에게 정성껏 절을 올렸다.
“이제부터라도 남에게 봉사하고 성실하게 살면 그것이 보은입니다. 부디 선한 마음으로 사십시오.”
“네, 스님. 제가 형기를 다 마치면 평생 스님의 수발을 들겠습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시고 교도소에서는 내가 보내는 책을 읽으십시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 덕분에 저는 오늘 새로 태어났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용수는 거듭거듭 절을 하고 교도관이 끄는 대로 호송차에 올랐다.
한편, 식물인간처럼 병원에 있던 첨도의 의식도 깨어났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서 며칠 만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더듬으면서 마음속으로 말했다.
‘용수 그 새끼 때문에 폭망이네. 풍운도사를 안 죽였으면 프랑스에 첨성대 팔고 대박인데……. 그리고 에펠탑도 라면 상자에 넣어서 가져올 수 있었는데……. 아깝다, 지인짜!’
병원 마당에는 은행잎이 날리고 첨도의 꿈도 그렇게 날아갔다.
-끝- 원고지 124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