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푼돈에 목숨 걸다

by 구민성

단편--푼돈에 목숨 걸다

<1>


민경일의 부인이 죽었다. 곱고 성실했던 부인은 이제 갓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생전에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했기에 모든 조문객들이 무척 애통하게 생각했다.

빈소에서 참배를 마친 임홍우가 민경일에게 말했다.

“친구야. 창규에겐 연락했나?”

“일없어. 그딴 인간은 안 와도 돼. 연락해도 안 오겠지만.”

민경일의 얼굴에는 불쾌감이 묻어있었다. 그는 강창규의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나빠진다. 물론 그가 조금 꽁한 구석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강창규에게 많이 시달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금천 마을의 삼총사였다. 날마다 붙어 다니면서 지지고 볶고 놀았다. 그런데 강창규의 유별난 행동이 민경일을 차츰 괴롭히기 시작했다.

강창규는 기운이 세고 공격적인 성향이다.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도 제일 잘한다. 또 그는 불리하면 땡고집을 부리거나 놀이판을 엎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는 제 아버지가 경찰인 것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집에 권총도 있다는 거짓말을 사실처럼 떠들어댔다. 그러니까 힘 약하고 소심한 민경일은 늘 주눅이 들었다.

강창규는 구슬을 팔아서 과자를 사 먹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눈곱만큼씩 나눠주고 대부분은 자기가 먹었다. 구슬을 다 팔아버리고 손에 없으면 민경일에게 빌려서 했다. 하지만 그는 빌린 것을 얼른 갚아주지 않고 미루기 일쑤였다. 자꾸 미루다가 끝내는 떼먹었다. 구슬이나 딱지나 다른 놀잇감도, 심지어 메뚜기나 칡뿌리조차 민경일에게 늘 뜯는 편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는 민경일에게 돈을 자꾸 빌려 달랬다. 며칠씩 미루다가 가끔은 갚아주고 대부분은 떼먹었다. 민경일이 보채기라도 하면 강창규는 18번 멘트를 날렸다.

“얌마, 푼돈에 목숨 걸지 마.”

그래도 민경일이 구시렁거리면 한 마디 더 보탠다.

“내가 빌린 만화책 너도 봤잖아? 과자도 나눠먹고 말이야. 그게 돈 갚은 거와 같지.”

양손에 동전을 가득 쥐고 짤짤이 연습하면서도 갚지 않을 때가 많았다. 민경일은 앞으로 절대 강창규에게 돈을 안 빌려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어떤 친구는 그런 민경일을 가리켜 강창규의 호구라고 했다. 손주필이라는 친구가 강창규의 삥 뜯는 버릇은 ‘짜바리 아버지’에게 배운 실력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강창규에게 일러바쳐서 손주필은 흠씬 두들겨 맞았다.


고2 가을이었다. 민경일은 조금씩 모은 돈으로 리바이스 청바지를 샀다. 그 옷을 입고 친구들을 만났을 때 강창규가 말했다.

“이야, 청바지 멋지네. 오호, 리바이스!”

강창규는 민경일의 앞뒤로 돌면서 살피더니 잠깐 입어보자고 했다. 잘 맞으면 자기도 사겠다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민경일은 미심쩍었지만 다른 친구들도 보고 있으니 설마 하면서 빌려주었다, 강창규는 학교 앞 스타사진관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겠다며 갔다. 그리고는 돌려주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 내일, 모레…… 자꾸 미루면서 거짓말만 하는 강창규에게 민경일은 지쳐버렸다. 추석날에도 그 청바지를 강창규가 입었다. 속만 끓이면서 6개월을 보낸 어느 날, 민경일은 공수부대에서 휴가 나온 사촌형에게 일러바쳤다. 민경일로서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휘파람 불며 군화를 졸라매는 형에게 민경일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형. 그 자식 있잖아……. 음, 그래도…….”

“그래도 뭐?”

“그래도……. 때리지는 마.”

“알았어, 임마. 쪼맨한 것들 때릴 거나 있어?”

형은 픽 웃고 가더니 금방 옷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튿날 학교에서 보니 강창규의 입술이 터져있었다. 그리고 이 일로 두 사람은 졸업할 때까지 한마디의 대화도 없었다.

그런데 졸업식날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졸업식장에서 나온 학생들은 교복을 찢거나 밀가루를 뿌리는 장난이 심했다. 별난 녀석은 계란을 옷에 던지고 밀가루를 뿌린다. 그러면 털어내기가 어렵다.

강창규는 언제 마셨는지 술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손주필의 머리에 계란을 터뜨리고 밀가루를 덮어씌웠다. 손주필은 머리, 얼굴, 어깨까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비록 심하긴 해도 장난이었다.

문제는 바로 다음에 터졌다. 두리번거리던 강창규가 민경일을 찾아냈다. 강창규가 민경일의 등을 향해 계란을 힘껏 던졌다. 그런데 바로 그 찰나에 민경일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란을 눈에 맞은 민경일은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 사고로 민경일은 시신경을 크게 다쳤다. 실명까지는 아니라도 병원 치료를 상당히 오래 받았다. 그날 이후로 민경일은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2>

임홍우는 두 친구를 화해시키려고 40년 이상이나 노력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인지 어릴 때부터 언행이 반듯한 모범생이었다. 초중고 내리 12년 동안 반장이나 전교 회장을 했기에 집안 어른들의 큰 자랑이었다. 특히 성격이 원만해서 따르는 친구가 많았으며, 남의 갈등을 중재하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고교 때는 국제 분쟁의 해결사로 이름을 날리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을 롤 모델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모태 신앙인 그는 지금 교회에서도 랍비와 같은 장로님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런 임홍우의 계속적인 중재로 얼마 전에 두 친구가 악수까지는 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다 풀린 것은 아니다. 강창규는 성격도 호방한 편이고 가해자의 입장이니까 손을 내밀 수 있었지만 민경일은 다르다. 내성적인 민경일은 오랫동안 누적된 피해의 기억이 쉽게 풀릴 리 없는 것이다.

그래도 임홍우는 계속 설득했고, 결국 민경일은 강창규에게 부고 문자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강창규는 소문 듣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문자까지 받았으니 조문하는 게 옳다 싶었다. 더구나 임홍우가 찾아와서 자꾸 권하니, 권하는 맛에 사돈 떡 얻어먹는다는 배짱으로 장례식장에 갔다. 동행해 주는 임홍우에게 기대는 마음도 컸다.

빈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처음에 데면데면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나름대로 예를 갖추었다.

가을에는 강창규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는데 민경일이 참석했다. 그리고 해 바뀌어 민경일의 딸 결혼식에도 강창규가 왔다. 이렇게 애경사에 서로 오가면서 두 사람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임홍우의 주선으로 셋이서 술자리도 가졌다.

임홍우는 말했다.

“너희 두 사람, 옛날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마. 사람이 현실에 충실하고 미래를 내다봐야지 허구한 날 과거로 돌아가면 어쩌나. 이제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말이야.”

강창규가 술잔을 내려놓으면서 뚜벅 말했다.

“그래도 옛날 추억도 좀…….”

“추억이라도 좋은 일이면 또 몰라. 싸운 이야기와 고생했던 이야기는 왜 자꾸 해?”

임홍우가 학생에게 훈계하는 투로 말하자 두 친구는 입맛만 쩍 다셨다.

민경일은 고추농사지으며 동네 이장직도 맡고 있다. 그런데 고추 농사가 시원찮은 데다가 10년 이상 암투병하던 아내의 치료비 등으로 빚도 적지 않았다. 아내가 떠난 이후에는 고추 농사도 이장도 다 시들하고 어깨가 처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냥저냥 남 간섭으로 날이 새고 자기변명으로 해를 지운다.

강창규는 군청 옆에서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거의 매일 파리만 날리고 있다. 다행히 한창 잘 되던 시기에 장만해 둔 상가건물에서 월세라도 조금씩 들어오니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맨날 소주 삼겹살로 세월만 허랑 허랑 보낸다.

임홍우는 모교의 교장으로 발령 났지만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다. 경제적으로 별 문제가 없었으나 손아래 처남의 사업자금을 빌려줬다가 큰돈을 잃게 되었다. 그 스트레스로 부인은 속병을 얻어 3년째 고생하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상황이 이러니 푼돈이라도 아끼면서 살아야 할 입장들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민경일과 강창규는 커피숍으로 갔다.

“이야, 국밥이 7천 원인데 커피가 4천 원이면 너무 비싼 거 아냐?”

커피 값을 카드로 결제한 민경일이 구시렁거렸다. 카드를 지갑에 넣는 손도 조금 떨렸다. 그다지 큰 병은 아니지만, 화가 나거나 긴장할 때 그는 손을 조금씩 떤다.

“만사천 원 목돈 낸 사람은 가만있는데 4천 원 푼돈 내면서 뭔 불만이 그리 많아?”

강창규가 다리를 꼬고 앉으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미성이던 강창규는 군대에서 하도 고함을 많이 질러 목소리가 바뀌었단다. 군대에서 좋은 목소리를 잃어버렸으니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되겠다고, 술만 먹으면 열을 올린다. 술자리에서는 음성이 더 커지는데, 동석자들이 좀 낮추라고 하면 또 국가상대 소송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40년이 넘었어도 아직 변호사에게 상담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소송이 어쩌고 하는 말은 습관성 공갈이다.

“너, 국밥은 두 그릇 값을 말하고 커피는 왜 한 잔 값만 말해? 그 의도가 뭐야?”

민경일이 눈을 흘기면서 따졌다.

“의도는 무슨……. 말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지, 뭐.”

“그게 아니고 니가 국밥값 냈다고 유세하는 거 아냐?”

“유세 좋아하네. 야, 진짜 유세하자면 내가 현수막이라도 걸지. 친구에게 국밥 사줬노라고 말이야. 파하하하!"

“하여간 넌 푼돈이라도 쓰면 꼭 티를 내더라.”

강창규는 여전히 장난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민경일은 정색하고 따지는 편이다. 하지만 따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강창규가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그건 그렇고 너, 전에 안전벨트 벌금 냈어? 삼만 원 말이야.”

“소문 빠르구만. 근데 삼만 원 아니고 사만오천 원 냈어. 써보지도 못하고, 빌어먹을!”

“왜? 벨트 단속은 삼만 원 짜린데?”

강창규가 잃었던 장난감 찾은 아이처럼 눈을 번쩍 뜨면서 물었다.

“납부 기한 며칠 지났다고 할증 붙었어. 만오천 원이나 말이야. 떠그랄!”

“에이, 진작 내지 그걸 왜 미뤘어?”

“그게 말이야. 그땐 마누라 49제 올릴 때라서 다른 생각할 여유도 없었어.”

“아, 맞아. 그때였지……. 그놈의 경찰청, 부인상인데 좀 안 봐줘? 써보지도 못한 돈 삼만 원이 얼마나 아까울까?”

강창규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위로하듯이 약 올리는 것이다.

“사만오천 원이라니까.”

“아, 맞아. 내 정신 좀 봐. 써보지도 못한 돈 사만오천 원이지. 정말 땅을 칠 노릇이야.”

“할증료는 또 50%가 뭐야? 5%도 비싼데……. 도둑놈의 새끼들!”

민경일은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강창규는 능글맞게 말했다.

“어이, 그만 잊어버려. 국가 재정에 보태줬다고 생각해.”

“아, 시끄러! 국가 재정 같은 소리 하네. 도둑맞은 기분인데.”

민경일이 소리를 빽 질렀지만 강창규는 한 마디 더 걸쳤다.

“기왕 지나간 일이데 자꾸 성질부리면 건강에 해로워. 통 크게 생각하라고.”

“통 크게? 그래, 넌 통이 커서 그러냐?”

“나? …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유들유들하던 강창규가 날을 세우니 드디어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됐어. 그만 두자, 그만.”

“야, 남자가 칼을 뺐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야지 이게 뭐야?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치사하게…….”

“좋아, 썩은 호박 아니라 익은 호박 찔러주지. 안 치사하게.”

“그래, 얼른 지껄여봐라.”

민경일이 강창규의 지난 이야기를 했다.

“너 저번에 선글라스 깔고 않아서 오만 원 날렸다고 두 달 동안 열 번 넘게 말했어. 기억나지?”

“그건 운전석 의자에 있는 걸… 못 보고 앉았으니 화가 나지.”

“통 크다며? 통 큰 사람이 오래 쓴 선글라스가 그렇게도 아까워?”

“오래 쓰긴 뭐, 한 3년 썼을까?”

“흥, 3년이나 쓴 물건과 써보지도 못한 범칙금 중에 뭐가 더 화날까? 대답해 봐, 통 큰 사람.”

민경일이 조리 있게 말하자 강창규는 화가 벌컥 났다.

“그래, 너 잘 났어. 이장질 좀 하더니 입만 살았구먼.”

“입만 살았다고? 좋아, 칼 뽑은 김에 호박 하나 더 찔러볼까?”

“뭔데, 또?”

“너, 지난달에 주차위반 걸렸다며?”

“그, 그걸 어떻게 알았어?”

강창규는 놀란 듯 쑥스러운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야, 이장질 오래 하면 고성능 안테나가 되는 거야. 입만 사는 게 아니고.”

“그게 저……. 약국에 진통제 사러 갔다가 영팔이 만나……. 재수 없이…….”

“이것 봐. 걸렸으면, 얼른 벌금 내지 뭘 그런 걸 군청 아들에 동사무소 조카까지 찾아가서 부탁해? 부정 청탁으로 아들 조카 모가지 날리고 싶어?”

“아니, 그냥 ……. 혹시 무슨 방법이 없나 하고…….”

강창규가 꼬리를 내리자 민경일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냥 푼돈 던지면 되잖아. 국립주차장에 주차비 준다 생각하고 말이야. 통 크게!”

“안 그래도 나중에…… 후회도 좀 했어. 푼돈으로 …… 애들에게 쪽 팔리고…….”

강창규가 좀 약한 모습을 보이자 민경일은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이 집 커피 괜찮지? 두 잔에 팔천 원이야. 푼돈 갖고 헷갈리지 마.”

강창규는 짧은 생각에 잠겨서 민경일의 말을 건성으로 흘렸다.

<3>

오후에 임홍우는 교장실에서 카톡을 보냈다.

♥ 내일은 이 형님이 짜장면을 쏘겠다.

일시: 토요일 정오.

장소: 흥화춘 (우리 학교 옆)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꼭 참석하도록! 이상!!-

두 친구는 알았다는 댓글을 보냈다. 강창규는 기분 좋다는 댓글을 썼고, 민경일은 카톡이 참 편리하다고 답했다.

토요일 정오. 청바지에 푸른색 모자를 쓴 민경일은 오늘 꽤나 젊어 보인다.

“애들 오는 날인데 저녁을 함께 하기로 조정해 놓고 왔어.”

“그래. 모처럼 이 형님이 사니까 많이들 드시게. 명색이 교장인데 친구들 짜장면 정도야…….”

“내가 1등으로 왔으니 간짜장 곱빼기에 만두까지 먹어야지,”

임홍우의 말을 끊으며 강창규가 빠르게 말했다.

민경일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아니, 그걸 다 먹는다고? 밀가루 음식을 과식하면…….”

“야야, 먹는 걸로 쩨쩨하게 굴지 마. 밥심으로 사는데 많이 먹어야 힘도 쓰지.”

“그래도… 소화력이 옛날과 다른데… 다 먹으면 해롭고, 남기면 아깝고…….”

“어허, 또 그놈의 잔소리! 니 짜장면도 내가 좀 먹어줄까?”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너스레를 떨던 강창규가 단무지 양파에 식초를 듬뿍 뿌렸다. 민경일은 그 모습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식초는 돈 따로 안 받으니 많이 뿌리자고 했던 강창규. 늘 간빠장 곱빼기와 군만두를 시키던 그에게 참 많이도 뜯겼던 시절이었다. 어떤 날은 세이코 시계까지 잡히면서 어울려 먹었지.


민경일은 입가의 짜장을 티슈로 닦아가며 조용히 먹었다. 그 모습을 본 강창규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어이, 입은 왜 그리 자주 닦나? 또 묻을 건데.”

“남이야 입을 닦든 코를 닦든,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아?”

“아니야, 본래 짜장면은 입가에 묻혀가면서 한주먹씩 넣어야 제 맛이야. 다 먹고 한 번만 닦고 말이야. 이게 내 철학이라구.”

“철학 좋아하시네. 무슨 개똥 같은…….”

바로 그때, 강창규의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크게 울렸다. 박상철의 ‘무조건’은 언제나 시끄럽고 신난다.

“예, 형님. 창홉니다. …… 예, 말씀하십시오.”

몇 마디 대화하던 강창규가 일어섰다. 아파트 사고 싶다는 사람이 왔는데 빨리 사무실로 오라는 전화란다.

“야, 먹다가 가면 어째?”

임홍우가 말했지만 강창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지금 짜장면이 문제야? 한 껀 올릴 판인데……. 아, 사장님, 이 만두는 포장해 주세요.”

그러면서 다시 앉아 짜장면을 마저 먹었다. 만두 포장하는 틈에 전광석화의 실력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내 정량 안 남기고 다 먹었어. 임 교장, 잘 먹었소이다.”

강창규가 나간 후에 임홍우가 말했다.

“저 친구 참 괜찮은 친구야. 안 그래?”

“괜찮은 친구? 흥, 욕심 많고, 거짓말 잘하고, 어쩌다 국밥이라도 사면 오만 생색 다 내고, 허구한 날 부부싸움에…….”

“그만해. 왜 나쁜 점만 들먹이나? 좋은 점부터 생각해야지.”

“저 인간 좋은 점이 뭐가 있어?”

“있지이. 항상 밝고 낙천적이잖아. 이거 굉장히 중요한 거야. 또 건강하고 기운이 넘치지. 이건 제일 중요하잖아. 게다가 손재주 좋겠다, 음주가무 잘하고, 유머 감각 좋겠다…….”

“흥, 남의 돈이나 물건 잘 빌리고, 빌려 가면 떼어먹고, 민폐 끼치고 적반하장에, 푼돈에도 벌벌 떨면서 큰소리만 뻥뻥…….”

“됐어, 고만하고 일어나. 커피 마시러 가자.”

“커피는 내가 살게. 잘하는 집 알아. 두 잔에 팔천 원.”

민경일은 팔천 원에 힘을 주는 듯했다.

<4>

“아이쿠!”

민경일이 휘청하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쟁반에 받쳐 든 아메리카노 두 잔은 다 쏟아졌고, 머그잔은 안 깨어졌지만 카페 바닥은 난장판이 되었다.

“어머, 고객님! 왜 그러세요? … 하여간 노인들은 골치 아파.”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민경일 쪽으로 오면서 짜증을 부렸다.

"뭐라? 노인들? 골치 아파? 아니, 얘가 지금……. 저리 비켜! “

짱짱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른 사람은 주방에서 나오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발목을 주무르고 있는 민경일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제가 병원으로 모실까요?”

“괜찮소, 젊은 양반. 그나저나 이렇게 어질러서 미안하오.”

“아, 아닙니다. 이거야 닦으면 되고 사람이 안 다쳐야죠.”

젊은이가 이번에는 아까 그 아가씨를 보고 말했다.

“어이, 보라야. 여기 어르신들 커피 새로 가져와.”

“결재는요? 또 카드로…….”

“야, 무슨 소릴 해? 그냥 가져와.”

“그냥요? 공짜 커피 내주면 내가…… 사장한테 짤리는데…….”

젊은 직원이 사장님이라고 님 자를 붙이지 않는 것은 존경심이 전혀 없다는 뜻이라고 임홍우는 생각했다. 아가씨가 쳐다보는 천장에는 계란 크기의 카메라가 붙어있었다. 저놈의 카메라 때문에 하품도 제대로 못 한다고 보라는 평소에도 불만이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말할 테니. …… 아니야, 내 카드로 결제해.”

그는 자신의 지갑에서 카드를 빼주었다.

그 상황을 보고 있던 임홍우가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이봐요, 젊은이. 아까는 내 친구가 샀으니 이번에는 내가 사리다. 이걸로 결재해요.”

“아, 아닙니다. 제가 어르신들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젊은이는 이 카페의 지배인 김상태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자리에 앉았다. 올해 서른아홉 살이며 결혼 3년 차인데 아들은 여섯 살이라고 했다. 그는 이 카페의 사장에 대해서 꽤 구체적으로 말했다. 자신보다 2년 선배인 홍 사장은 자수성가해서 여기저기 세 군데의 카페를 운영한단다. 그런데 그는 너무 쫌생이라서 일하는 직원이 사흘이 멀다 하고 바뀐단다. 콩나물값까지 따지는 사람이라서 아내와 늘 싸우다가 작년 가을에 이혼도 당했단다. 신경성 위장병으로 오래 고생했는데, 이혼 후에는 위암 수술까지 했단다. 그래서 카페 운영을 남에게 맡기고 아는 절에 갔단다.

“요양한다고 절에 갔지만, 제가 보기엔 요양이 아니라 귀양인 것 같습니다. 하루에 대여섯 번씩 전화가 오는데, 손님 많은가, 얼마 팔았는가 하고 지겹게 묻습니다. 그렇게 걱정되고 불안하면 마음이 지옥이지요. 맡겼으면 믿어야지, 안 그렇습니까? 어르신.”

“아니, 내가 보기에는 자기 사업에 애착과 열정이 강해서,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게 아니고요, 쫌생이의 의심증입니다. 푼돈에 목숨 거는 사람이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민경일이 끼어들었다.

“푼돈에 목숨 건다고요? 빈손으로 시작해서 이 정도 가게를 이룬 것은 푼돈을 절약한 덕분 아닌가요? 그런데 절약, 저축을 비난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비난이 아니고, 그, 뭐랄까… 건강한 비판이랄까 뭐 그런 겁니다. 제 말씀은 그 양반이 남에게 베풀 줄 모른다는 거죠. 적어도 직원에게는 베풀고 신뢰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겁니다. 그런 걸 모르고 푼돈을 꼭 쥐고 있다가 귀양 간 것이죠. 저희 사장은 나중에 동전 쥐고 죽을 겁니다.”

“비난이든 비판이든,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그만하죠.”

임홍우가 점잖은 목소리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는 젊은 사람이 말이 너무 헤프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남 험담을 많이 하는 것은 푼돈에 목숨 거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5>

“어, 자네들 여기 있었나?”

강창규가 카페 ‘지금’에 들어서며 크게 말했다. 젊은 여자와 함께였다.

“아니, 강 소장. 아파트 계약한다더니?”

“했지. 다 끝나고 커피 한 잔 하려고 왔어. 잠시만 기다려.”

강창규는 싱글벙글 웃으며 젊은 여자에게 갔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두 사람이 뭔가 심각한 분위기로 변했다.

자리가 멀기도 했지만 실내에 흐르는 음악 소리 때문에 저쪽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아 보였다. 강창규가 제 가슴을 치면서 섰다앉았다를 반복했다. 저런 행동은 그가 무척 답답할 때 보이는 습관이다.

몇 번 그러다가 우연히 이쪽과 눈이 마주쳤다. 바로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임홍우가 야구 감독 같은 손동작을 보였다. 양 손바닥을 아래로 두어 번 누르는 동작은 차분히 하라는 뜻이고, 고개를 숙이며 합장하는 동작은 친절하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저쪽의 분위기가 금세 달라졌다. 강창규가 웃음 띤 얼굴로 몇 마디 더 하면서 뭔가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젊은 여자가 일어서서 여중생처럼 다소곳이 인사하고 나갔다.

세 사람이 다시 합석하자 임홍우가 물었다.

“어떻게 되었어?”

“응, 임 교장 덕분에 마무리 잘 되었어.”

“뭔 이야기가 그렇게 심각했어?

“아니, 그 젊은 년이 글쎄, 집을 너무 싸게 팔았다며 복비를 100만 원만 깎아달라고 얼마나 떼를 쓰는지…….”

“복비 총액이 얼만데?”

듣고만 있던 민경일이 불쑥 물었다.

“얼마 안 돼. 350만 원이야.”

“양쪽에 각각?”

“그, 그렇지. 매도인 매수인에게 각각 받지.”

“우와, 많네. 근데 넌 꼭 이럴 땐 반쪽만 말하더라. 누가 돈 빌려 달라는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여간 젊은 년이 어찌나 빡빡하던지…….”

“얼마 깎아줬어?”

임홍우가 짧게 물었다.

“50,”

강창규는 더 짧게 답했다.

“그래도 오늘 650 벌었네. 이 불경기에 그게 어디야? 한 잔 사라, 야.”

민경일이 의자를 뒤로 젖히며 진담을 농담처럼 말했다.

“그래, 기분이다! 당장 가자.”

강창규가 호기롭게 말했다.

“지금? 지금은 안 돼. 저녁에 애들 온다고 했잖아. 내일 먹자.”

“내일은 늦어. 나는 열 식으면 지갑이 안 열리거든.”

“그럼 임 교장에게 한 50만 원 맡겨 두면 되겠네. 먹고 남으면 가져가고.”

“5, 50이라고? 그건 너무……. 그냥 5만 원 맡겨두지.”

“뭐, 5만 원? 야, 김밥 사줄래?”

민경일은 강창규의 수입금에 은근히 샘을 내는 표정이다. 그때까지 빙긋이 웃고만 있던 임홍우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그만들 둬. 돈 맡길 필요 없이 다음에 자리 한 번 만들지 뭐.”

“흥, 강창규를 믿을 수 있나? 푼돈에 목숨 거는 사람인데.”

“푼돈에 목숨 건다고? 내가? 아니, 너……. 사람을 어찌 보고…….”

강창규는 바짝 약이 올랐다. 그래서 푹 내뱉었다.

“내가, 니 집사람 장례식 때도 부의금을 20만 원이나 냈는데, 푼돈에 목숨 건다고?”

“야, 그런 이야기까지……. 좋아, 니 마누라 죽으면 나도 그만큼 낼게. 됐어?”

민경일도 기분이 틀어져서 쏟아 부었다.

“뭐? 뭐라고? 아니, 이 사람이 너무 심하네, 정말.”

강창규는 눈썹이 움찔하고 손가락이 심하게 떨렸다. 둘이서 티격태격하는 게 얼른 끝날 것 같지 않아서 임홍우가 말했다.

“자네들끼리 푼돈이든 목돈이든 알아서 목숨 걸어. 나는 가련다.”

임홍우가 먼저 나가자 열없어진 두 사람도 구시렁거리며 따라 나섰다.

<마지막 회>

강창규는 집에 오더니 맥주부터 찾았다.

“민경일 그놈이……. 뭐? 내가 푼돈에 목숨 건다고?……. 건방지게…….”

“혼자 뭐라고 중얼거려요?”

최정미가 사과를 깎아 와서 마주 앉았다.

“글쎄 민경일이가…… 당신 죽으면……. 20만 원……. 에이, 됐어.”

“아니, 당신 대체 무슨 소리를 해요?”

강창규는 대답하지 않고 맥주를 한 잔 더 마셨다. 답답한지 윗옷을 모두 벗더니 가슴을 퍽퍽 쳤다. 일어서서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약간 비틀거렸다.

잠시 후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최정미가 뛰어갔다.

“악! 여보! 왜 이래요? 여보, 여보! 정신 차려요.”

강창규는 쓰러져 있었다. 머리 쪽에는 피가 약간 흘렀다. 동공이 허옇게 풀렸으며 누운 채 오줌도 쌌다. 최정미는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는 중에 최정미는 남편의 휴대폰에서 오늘 통화자를 찾았다.

민경일과 임홍우가 있었다. 모르는 이름도 몇 사람 있었지만, 일단 임홍우에게 먼저 전화했다. 민경일에게는 아까 남편이 좋지 않은 감정을 보인 것 같아서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홍우가 민경일에게 연락하여 병원에는 같이 왔다. 두 사람은 최정미로부터 대략의 상황을 들었다. 응급실에 있던 강창규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진단 결과는 심근경색이라고 했다.

의료진들의 걸음이 빨라지고 주위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는 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최정미가 실례하겠다며 자리를 떴다.

복도로 나간 최정미는 남편의 휴대폰으로 카톡을 보냈다.

“교장선생님, 따로 좀 뵙고 싶어요. 휴게실에서 기다려요.”

임홍우가 곧 휴게실에 나타났다.

“선생님, 애들 아빠가 민경일 씨랑 다퉜어요?”

최정미가 임홍우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전에 아들의 담임이었기 때문이다.

“아뇨, 다툰 게 아니고 그냥 조금……. 왜요?”

“애들 아빠가 집에 오자마자 술을 마시면서 민경일 씨 욕을 하더니…….”

“아하, 그랬습니까? 뭐, 농담이 약간 선을 넘긴 했지만……. 근데 두 친구는 60년 넘도록 그렇게 지냈어요. 어깨 걸고 놀다가 싸우고 토라지고…….”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죠. 사람이 저렇게 됐는데…….”

최정미는 말끝을 흐리며 창밖으로 눈길을 던졌다. 여차하면 한 바탕 결전이라도 치를 사람처럼 입술을 꼭 다물었다.

“엄마, 여기… 아,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지용이 왔구나.”

30대 후반의 지용이는 군청 총무과에 근무하고 있다. 엄마로부터 상황 이야기를 대충 듣고 지용이는 시원하게 말했다.

“엄마, 걱정 마세요. 아빠는 이번에 처음도 아니고……. 스탠트 수술 벌써 두 번이나 했잖아요.”

“그래도 이번에는 달라. 민경일 씨와 크게 다툰 모양인데…….”

“지용이 어머니, 나중에 친구 일어나면 말씀 나누시고, 지금은 환자의 쾌유를 위해 마음 모아 기도하십시다.”

임홍우는 최정미의 별난 입심을 알기에 얼른 기도를 제안했다. 그리고 소리내어 기도하니 최정미 모자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저희 형제 강창규가 지병으로 수술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의료진들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시옵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하여 환자에게 쾌유의 축복을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가족들도 걱정하지 말고 담대한 마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옵니다. 수술이 끝나는 시간까지 아버지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믿사오며, 전능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임홍우의 청산유수 같은 기도 때문에 최정미는 아들과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네 사람은 수술실 앞에서 커피를 마셨다. 지용이가 자판기에서 에스프레소 냉커피를 빼온 것이다. 뚜껑까지 따서 주는 캔 커피는 차기 때문에 쓴맛이 더 강했다.

“병원 옆 카페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있는데……. 조금 비싸지만…….”

“…….”

지용이는 민경일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빈 깡통만 챙겼다.

“커피 하나는 제대로 마셔야지, 푼돈에 목숨 걸지 말고…….”

습관처럼 중얼거리는 민경일을 최정미가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끝. 원고지 7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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