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목욕탕에서 만난 스님

by 구민성

단편-- 목욕탕에서 만난 스님

<1>

태규는 오늘도 맨 안쪽 샤워기 앞에 앉았다. 그가 그 자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의 왕래가 적기 때문이다. 샤워를 다 하고 가위로 수염을 정리하고 있는데 웬 체격 좋은 사람이 들어오더니 바로 옆 자리에 앉았다. 흘깃 보니까 풍채가 당당한데 머리는 빡빡이였다. 굵은 목에 18K 목걸이까지 건 그 남자는 앉을 때부터 콧노래로 반야심경을 웅얼거렸다.

‘아, 스님인 모양이다.’

태규는 단박에 짐작했다. 그 남자는 분홍색 목욕 가방에서 다홍색 비누를 꺼냈다. 남자가 분홍색 가방이라니, 게다가 남탕에는 자기 비누를 가지고 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약간 의외로 생각되었다.

어쨌거나 그 남자는 샤워기로 제 몸에 물을 쏘아댔다. 태규는 움찔 놀랐다. 여기까지 튕겨오는 물이 너무 차다. 태규는 한여름에도 더운물로 목욕하는데 지금은 겨울 아닌가. 기분이 상해서 미간을 찡그렸지만 그 남자는 못 본 것 같다.

다홍색 비누를 샤워 타월에 문지른 그 남자가 온몸에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비누거품도 몇 번이나 튀어왔다. 조심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남자가 반야심경을 계속 웅얼거렸다. 스님이 맞긴 맞는 모양인데 그 남자의 목욕 방법이, 아니 순서가 좀 이상하다. 그 남자는 목 언저리, 어깨, 가슴까지 씻어 내려오더니 배꼽 근처에서는 꽤 오랫동안 문질렀다. 배꼽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사람 같았다. 그다음에 음부, 사타구니, 허벅지를 씻었다. 엉덩이는 한쪽씩 번갈아 들면서 씻더니, 이내 타월을 내려놓고 손으로 항문을 문질렀다. 다시 타월을 잡고 종아리와 발을 씻기 시작했다. 발가락 하나하나를 아주 정성스럽게 씻었다.

이제 비누칠이 끝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다. 거품을 잔뜩 머금고 있는 그 타월을 머리에 문질렀다. 머리라고는 해도 털이 전혀 없는 배코인데 그 남자는 꽤 정성껏 씻었다. 이어서 얼굴을 문질렀다. 아니, 발까지 다 씻고 발가락 사이를 누비다가 항문까지 문지르던 그 타월로 얼굴을 씻다니 태규는 이해가 안 되었다.

마치 여자가 화장할 때처럼 입술을 입 안으로 오므려 넣으면서 야무지게도 문질렀다. 면도할 때는 반야심경도 멈추고 정성껏 했다. 태규는 옆 사람의 유별난 목욕 장면을 곁눈질하느라 제 몸은 어떻게 씻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태규가 탈의실에서 몸을 말리고 있는데 그 남자가 또 옆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태규는 빼빼 말랐고, 바로 옆의 그 남자는 풍채가 좋았다. 태규가 위축감마저 느끼고 있는 그 순간에 그 남자의 입에서는 놀라운 소리가 나왔다. 콰이강의 다리. 그 유명한 행진곡을 남자는 멋진 휘파람으로 불었다. 음률이 분명하고 소리도 또렷했다. 태규는 고교시절에 밴드부에서 드럼을 쳤기 때문에 그 음악을 잘 안다. 스타카토와 트레몰로가 경쾌한 음악으로서 영화 주제곡이기도 했다. 반야심경을 웅얼거리던 그 남자가 콰이강의 다리를 휘파람으로 불러재끼다니, 놀랍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겼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몸을 다 말린 그 남자가 옷장에서 꺼내 입는 옷은 잿빛 승복이었다. 역시 스님이구나. 어느 절에 계시는 스님일까? 태규는 호기심이 야금야금 커졌다. 옆 사람이 자꾸 힐끔거리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 남자가 불쑥 말을 걸었다.

“지꿈 핸재, 혹시 시간 있습니까?”

‘지꿈 핸재’는 희한한 발음이지만 목소리 하나는 정말 좋았다. 아나운서나 성우 외에 스님도 목소리가 좋을 수 있구나 싶었다.

“처사님, 시간이 있냐고요."

“네? 저 말인가요?”

“그래요, 혹시 시간 있으면 소승에게 시주 좀 하시라고요.”

그 남자는 분홍색 목욕 가방을 들고 태규 옆으로 가까이 섰다.

“시, 시주라니요?”

“소승은 목욕 후에 아메리카노를 즐기는데 어떠신지요?”

“네. 뭐 좋습니다. 저도 커피를 좋아합니다.”

태규는 그 남자에게 아주 큰 호기심을 느꼈기에 급히 동의했다. 어정거리면 그가 변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지꿈 핸재, 소승이 단골로 가는 집을 안내하지요. 따라오십시오.”

말을 마친 그 남자가 최신형 제네시스에 올라탔고, 태규는 앞 범퍼가 덜렁거리는 구닥다리 무쏘를 타고 뒤따랐다.

<2>

두 사람은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아담 카페’에 들어갔다. 아담이라면 이브의 연인을 말하는지, 분위기가 아담하다는 뜻인지 약간 애매했지만 태규는 굳이 묻지 않았다. 향과 맛이 무척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날씨가 어떠니 이 집 분위기가 어떠니 따위를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그 남자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지꿈 핸재,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소승은 지핸스님이라고 합니다만 처사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 네. 저는 백태규라고 합…….”

“수원 백 씹니까?”

“네, 그렇습…….”

“수원 백 씨들은 양반이지요. 소승이 아는 백 씨들은 모두가 착하고 선량합디다. 처사님도 역시 좋은 사람인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스님 법명이 좀…….”

“지꿈 핸재, 그게 좀 이상하지요? 처음에 은사스님이 ‘지현’이라고 법명을 지어줬는데, 그 어른 열반하시고는 마누라가 지핸으로 바꾸었지요. 소승이 말머리에 ‘지꿈 핸재’를 항상 붙인다고 그렇게 바꾸더라구요. 우리 고향 사람들은 ‘지금’보다 ‘지꿈’을 많이 써요. 또 ‘갱제’를 살리고 ‘행제’를 사랑하자, 뭐 이런 식으로 발음해요. 그러니까 내 탓이 아니고 고향 탓 조상 탓입니다. 허허허.”

“그런데 ‘지금’이나 ‘현재’가 같은 의민데 굳이 두 단어를……”

“지꿈 핸재, 습관이 되어서 잘 안 고쳐져요. 이젠 고치기도 포기했고요. 그냥 편하게 사는 거지요, 뭐. 그래도 마누라 잔소리 때문에 옛날보다는 많이 줄었지요.”

“저……. 그런데 또 궁금한 게……. 마누…….”

“아, 마누라? 그게 궁금하지요? 중이 마누라 운운하니까 이상하지요?”

“네, 사실은 신부님이나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

“지꿈 핸재, 보통은 그렇지요. 하지만 소승은 좀 특별해요. 아니, 솔직하지요. 몰래 여자를 만나지 않고 공개적으로 데리고 살아요. 그 바람에 불국사에서 쫓겨 나왔지만. 허허허.”

지핸스님이 너털웃음으로 마무리했지만 태규의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저…… 스님, 죄송하지만…….”

“죄송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막 물어봐요.”

가만 보니까 이 스님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성미가 급하거나 교만한 사람이라고 태규는 생각했다. 아니면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거나.

“스님, 사모님도 혹시 스님이신지…….”

“지꿈 핸재, 그 이야기는 여기서 못 합니다. 소승은 커피 다음에는 곡차가 땡기니까 자릴 옮기지요.”

“아니, 저는 술은 별로…….”

“처사님이 커피를 시주했으니, 곡차는 소승이 대접하겠습니다.”

“저, 스님. 저는 술을 별로…….”

“지꿈 핸재, 밸로 안 좋아해도 같이 가주는 겁니다. 그게 지성인의 메너라는 겁니다. 아, 술이야 좀 덜 마셔도 되고 안 마셔도 되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만…….”

태규는 썩 내키지 않지만 이 스님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 때문에 따라나섰다.

<3>

술집은 무척 시끄러웠다. 젊은 손님들이 많은 족발집이라 그런지 웃음소리도 크고 에너지가 넘친다.

“어이, 총각. 여기 소주 두 빡스, 족발 대짜 하나.”

지핸 스님이 남자 직원에게 주문했다. 스무 살이나 됐을까 아주 앳된 사내다.

“두, 두 빡스요? 정말로 두 빡…….”

“어허, 참. 우리 총각이 너무 순진해서 농담도 못 하겠네. 두 병이야 두 병.”

그제야 총각이 밝게 웃었다. 태규도 긴장을 풀면서, 참 재밌는 스님이라고 생각했다.

“지꿈 핸재, 소승이 소주 족발 먹자니까 이상하지요?”

“아, 네. 뭐 이상하다기보다 궁금해…….”

“궁금한 건 얼른 물어봐요. 돈 안 드니까.”

“……저어, 스님. 아까 마누라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함께…….”

“지꿈 핸재. 함께 사는 게 아니고 내가 얹혀사는 거지요.”

“얹혀사신다면, 처음에 어떻게 만나…….”

“거시기, 마누라는 본래 운문사에 있던 암쭝이었지요.”

“암쭝이라면…….”

“아, 암쭝 몰라요? 암컷 중년이라 이 말이지요.”

“아, 네…….”

태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암쭝이 비구니라고 바꾸어 생각했다.

“소주 두 빡스에 족발 대짜 나왔습니다.”

앳된 총각이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술, 안주를 내려놓았다.

"땡큐 이빠이!“

지핸스님도 활달한 목소리로 화답하고는 소주를 맥주잔에 부었다. 족발도 야들야들하게 맛있어 보였다. 지핸스님은 술과 안주를 먹기 시작했다.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얹혀사신다면, 그게 어떤 뜻…….”

“아, 말 그대로지요. 공밥 얻어먹고 살아주는 기둥서방이지요.”

지핸스님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처음엔 나도 촉망받던 중이었지요. 어쩌다가 묘한 인연으로 암쭝을 하나 만났는데 이 암쭝이 안 떨어지는 거요. 아, 하룻밤 몸 바쳐 충성했더니 죽어도 안 떨어져요. 뭐, 사실 나도 여자가 필요했고……. 그때 나는 몸 뜨거운 서른다섯이었고, 나보다 두 살 아래인 암쭝은 꽤 곱상하고 사근사근했지요. 우리는 속궁합이 끝내줬어요. 한 번 붙었다 하면 아침까지 그냥…….”

“어이, 중놈! 그 좀 조용히 먹읍시다.”

방금 들어와서 바로 뒷자리에서 앉은 남자가 괄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얼른 봐도 120킬로는 넘을 것 같다. 바로 그때였다.

“큰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까만 양복에 짧은 머리의 젊은 사내 두 명이 득달같이 뛰어왔다. 두 사내는 뚱보 앞에서 양팔을 침팬지처럼 늘어뜨리고 허리를 꺾었다.

“아, 별일 아니야. 너희들은 저쪽에 가서 술이나 먹어.”

사내들이 돌아가고 뚱보는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싸움이라도 한 판 벌어질 분위기라 태규는 불안해졌다. 저쪽은 젊고 체격 좋은 세 명이고, 이쪽은 나이 든 두 명이다. 태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이 바싹 마르는 걸 느꼈다. 그런데 지핸스님이 껄껄 웃더니 의외의 말을 했다.

“지꿈 핸재, 중놈이라?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그쪽… 중생놈은 어째 낯이 좀 익은데요. 어디서 봤더라? 기억이 날똥말똥한데, 씁…….”

고개를 갸웃하던 뚱보는 얼굴색이 확 변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넙죽 큰 절을 하는 게 아닌가.

“아이고, 스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지꿈 핸재, 이게 누구야? 핸수 학생? 아니, 이제 학생은 아닐 꺼고, 이야, 진짜 반갑네. 맻 년 만이고?”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뚱보와 함께 있던 노랑머리 여자도 이쪽 테이블로 오게 해서 네 명이 앉았다. 노랑머리에게서는 진한 향수 냄새가 나서 음식 냄새가 좀 복잡해졌다. 태규는 갑자기 불편을 느꼈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일어설까 하는데 지핸스님이 말했다.

“지꿈 핸재, 난 줄 어떻게 알았어요? 벌써 30년도 훨씬 지났는데.”

“하하하, 스님의 그 지꿈 핸재 때문에 알았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지꿈 핸재를 계속 말머리에 붙이시니 제가 알지 않습니까.”

두 사람은 권커니잣커니 술잔이 바삐 오가고 이야기도 활기찼다. 스물세 살 때 운주암에서 고시 공부하던 현수는 법대 휴학생이었고 지핸스님은 젊은 주지였다. 그런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고시에 다섯 번 떨어지고는 결국 포기했단다. 선배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며 연상의 여인을 만나 결혼까지 했단다. 그러다가 어느 해 가을에 사기 사건에 얽혀서 감옥생활을 처음 했단다.

출소 후에는 술집에서 조폭 보스를 두들겨 패서 또 감옥에 갔단다. 별 두 개가 되니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홧김에 때린 아내는 오른쪽 어깨뼈가 부러지는 등 몸을 많이 상했단다. 아내의 오빠가 고소하여 별은 금방 세 개로 늘었단다.

“지꿈 핸재, 이 중놈 하고 한 판 붙었으면 별 네 개가 될 수도 있었겠네. 사성장군, 허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껄껄.”

출소해 보니 아내는 두 돌 지난 딸을 친정에 맡기고 잠적해 버린 뒤였다. 인연이 아니다 싶어 아내를 찾지도 않았단다. 처남이 가져온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주고 일주일이나 술독에 빠져있기도 했단다. 조금 아는 법률 상식을 밑천으로 중개인 노릇하며 똘마니들 몇 명 거느리고 사는데, 인물이 좋아서 그런지 여자는 많이 사귀었단다. 앞에 앉아서 꼬박꼬박 졸고 있는 노랑머리는 새로 알게 된 애인이고 이제 갓 서른이란다.

“지꿈 핸재, 핸수 학생, 염복은 있구만.”

“염복요? 아이구, 말씀 마십시오. 이년 저년 잡년 다 만나봤지요. 스님, 저는 세상의 여자는 모두 창녀라고 생각해요. 돈만 주면, 아니 밥만 해결해 주면 다 붙게 되지요. 불빛에 모여드는 나방처럼…….”

“지꿈 핸재, 마누라는… 조강지처는 안 그래요.”

“뭐가 다릅니까? 마누라도 똑 같…….”

“아니지요. 조강지처는 창녀가 아니지요. 창녀가 애 낳아서 길러줘요? 창녀가 가난을 함께 갠디면서 미래를 설개하던가요?”

지핸스님은 약간 흥분한 듯 목소리가 크고 빨라졌다. 태규는 계속 있기가 불편했다.

“저어, 스님, 저는 이제 좀…….”

“아, 아, 미안해요. 술이나 먹고… 그럼 핸수 학생은 다음에 다시 만나요. 정식으로 날 잡아서 술도 마시고 끝장 토론도 해요. 조강지처가 창년지 아닌지.”

현수는 지핸스님과 연락처를 나누고 노랑머리를 깨웠다. 하품을 입에 문 노랑머리도 현수를 따라 합장했다.

<4>

태규는 사흘 후에 목욕탕에서 다시 지핸스님을 만났다. 지핸스님은 역시 코음으로 반야심경을 웅얼대면서 씻는 순서도 똑같았다. 사타구니와 항문과 발가락 사이를 다 누볐던 수건으로 얼굴을 씻었다. 손으로 한참 동안 엉덩이를 문지르는 것은 항문 마사지를 하는 것이라 여겼다. ‘치질인가?’ 약간 궁금했지만 묻기가 어색했다. 민간비방을 가르쳐줄까 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지핸스님은 탈의실에서 역시 콰이강의 다리를 휘파람으로 불었다. 트럼펫 고음처럼 깨끗한 휘파람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핸스님이 불쑥 말했다.

“지꿈 핸재, 아메리카노 한 잔 하십시다. 오늘은 소승이 사겠습니다.”

“안 그래도 커피 생각이 납니다. 사는 거야 누가 사든지…….”

“아니 오늘은 소승이 사야 합니다. 소승은 테이크 앤 기브를 지키니까요. 얻어먹는 것만 밝히는 중놈이 아니지요. 분맹히 달라요.”

두 사람이 목욕탕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겨울비치고는 빗줄기가 제법 세다.

아담 카페에 도착한 그들은 창가의 조용한 자리를 택했다.

“지꿈 핸재, 오늘 커피 향이 정말 좋지요?”

“네. 비 오는 날의 커피 향은 생전의 제 아내도 좋아했…….”

“생전의… 아내요? 그럼 지꿈 핸재는 부인이 안 개신가요?”

“…….”

태규는 잠깐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허 참, 답답해라.”

“네. 아내는 암으로 한 10년 고생하다가…… 3년 전에…….”

“지꿈 핸재, 처사님 혼자 삽니까? 간세음보사알……. 그래 사는 곳은 어딘가요?”

“네. 산에서, 비닐하우스 만들어 사는 독거남…….”

“오호, 자유로운 영혼이시네. 근데 혼자서 밥 빨래 다 하자믄 안 불팬해요?”

“약간 불편하지만 견딜 만…….”

“지꿈 핸재, 소승이 좋은 여자 하나 소개해줄까요?”

질문할 게 많았던 태규가 도리어 질문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무 자르듯이 대답했다.

“제 마음에 다른 여자 담을 자리가 없습니다.”

태규는 처음으로 완전한 문장을 다 말했다.

“그래도 남자가 혼자 살기는 불팬하…….”

“하여간 싫습니다.”

이번에는 태규가 지핸스님의 말을 중간에 잘라버렸다. 깔끔하고 재밌다고 생각되었다.

“그럼 그 얘긴 다음…….”

“저는 지금 스님께 궁금한 게 많습니다.”

또 한 번 잘랐다. ‘오호, 이거 재밌네’ 싶었다.

“지꿈 핸재, 궁금한 게 뭡니까?”

"스님은 왜 얼굴을 맨 나중에 씻는지요? 발가락까지 다 씻은 후에……. “

“아, 그건 간단해요. 발은 정직하지요. 피곤하믄 피곤한대로, 좋으믄 좋은 대로 솔직하거든요. 그리고 하는 일이 얼매나 중요합니까? 항문도 마찬가집니다. 얘들은 꾸밈이 없지요. 가식을 몰라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얘들을 자랑하거나 맹함에 박지 않아요. 또…….”

“스님 그건…….”

“지꿈 핸재, 더 들어보세요. 왜 남의 말을 중간에 끊어요? 어… 어디까지 했지?”

“명함에 박지 않고…….”

“아, 걔들은 역할이 많아도 갬손하지요. 그런데 얼굴은 하는 일이 밸로 없어요. 섹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배설을 하지도 않지요. 걷거나 뛰거나 운동도 못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비싼 화장품을 발라주고, 사진까지 찍어 여기저기 자랑해요. 콧대 세우기, 쌍까풀 수술, 주름 펴는 수술, 그 이름이 뭐더라?…… 하여간 이 놈은 또 얼마나 교할하고 위선적인가요?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필요에 따라서 표정도 바꾸고……. 정말 고약한 녀석이지요.”

“스님, 그러면…….”

“더 들어보세요. 그래서 나는 얼굴은 대접해주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지요. 불알이나 똥꾸녕이나 발가락은 남을 속이지도 않고 주인에게는 충성을 다 하지요. 갤론은 얘들이 얼굴보다 더 대접받아야 한다, 이게 내 생각입니다. 뭐 더 궁금한 거 있습니까?”

“저어, 스님. 그러면 항문을 손가락으로 그렇게 오래 씻는 것은…….”

“지꿈 핸재, 그거는 스킨십이지요. 애무라고 알지요? 대갠하고 귀한 녀석이거든요. 얘가 삐치믄 큰일 나요. 밴비나 치질, 그건 안 갞어보믄 몰라요.”

말을 멈춘 지핸스님은 물을 홀짝 마시고 태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궤변 같기도 하고 합리적인 주장 같기도 했다. 듣고 보니 얼굴의 역할이 별로 없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과 구별하는 역할, 남에게 자신의 미추와 감정을 표현하는 정도일까?

“지꿈 핸재, 맻 시나 댔지요?”

“7시 20분입니다.”

“아이고, 벌써요? 일어납시다. 더 늦으믄 쫓겨납니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싸락눈으로 바뀌고 있었다. 차에 올랐던 지핸스님이 다시 태규에게 와서 한 마디를 더 했다.

“지꿈 핸재, 아까 소승이 했던 말 다시 생각해 봐요.”

“무슨 말씀이신지…….”

“좋은 여자 소개…….”

“생각 없습니다.”

어느새 태규도 남의 말을 자르고 있었다.

<5>

“지꿈 핸재, 왜 전화를 안 받아요? 네 번이나 했…….”

“아, 네. 죄송합니다. 엔진 톱으로 일할 때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알았어요. 나중에 점심 한 그릇 합시다. 소승이 사겠…….”

“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됩니까?”

“12시에 운문산 가든 특실로…….”

“네. 이따가 뵙지요.”

태규는 상대의 말을 자르는 것에 은근히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태규는 깜짝 놀랐다. 지핸스님 혼자가 아니다. 비구니 스님과 귀부인까지 모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지꿈 핸재, 이쪽은 소승과 함께 사는 소운스님이고, 여기 부인은…….”

“스님, 왜 이러십니까? 저는 스님뿐인 줄 알고 입은 옷 그대로…….”

“아, 미안합니다. 미처 말씀드릴 시간이 없었어요.”

“하여간 좀 불편합니다. 다음에 뵙지요.”

태규가 돌아서려는데 부인이 얼른 말했다. 테이블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잡는 동작처럼 빨랐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초면에 실례인 줄 압니다만 잠깐 좀 앉으시지요.”

“…….”

“제가 저녁 비행기로 어디 좀 나갈 일이 있어서 스님께 급히 부탁드렸어요.”

태규는 이상하게도 이 여인의 청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더 버티면 옹졸해 보이겠다 싶기도 했다.

“지꿈 핸재, 소승이 소개를 계속하겠습니다. 여기 이 부인은 정미영 여사님이고, 이 신사 분은 백태규 선생입니다.”

태규는 고개를 약간 숙였고 정미영은 살짝 웃기만 했다. 태규는 정미영의 미소에서 여유와 따뜻함을 느꼈다. 지핸스님의 수다는 날씨 이야기부터 예술 이야기까지 길기도 했다. 지꿈 핸재를 앞세우면서 계속 이어지니까 소운스님이 눈을 살짝 흘겼다.

“지꿈 핸재, 왜 이리 밥이 늦나.”

머쓱해진 지핸스님이 투덜대자 때마침 식사가 들어왔다. 깔끔한 한정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두 스님은 먼저 나갔다.

정미영은 어색한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비교적 편한 대화를 유도하려고 노력했다.

취미가 뭐냐, 일이 힘들지 않느냐, 글은 잘 써지느냐 등등 일상적인 질문을 주로 했고 태규는 짤막하게 대답만 했다. 하지만 그는 문학에 대한 열정과 소신은 힘주어 말했다. 마치 면접 시험장의 수험생처럼 진지하게 말했다.

정미영은 자신의 이야기는 한 가지만 말했다. 그녀도 한때는 소설가를 지망했으나 신춘문예에 몇 번 낙방하고는 포기했단다. 그래봐야 두 사람의 대화는 30분도 안 걸렸다.

<6>

열흘 정도 지나서 또 전화가 왔다.

“지꿈 핸재, 어디 개십니까?”

“네, 산에 있습니다. 오늘은 낙엽 모아서 퇴비 만드…….”

“그럼 잠깐 좀 만납시다. 소승이 그리 갈까요?”

“네, 그러시죠. 기다릴게요.”

전화 끊고 조금 후에 지핸스님이 왔다. 태규는 난롯가에 자리를 권하고 원두커피를 준비했다. 마침 다 익은 군고구마도 접시에 담아냈다.

“이야, 커피와 군고구마를 같이 먹으니 맛이 특이하구먼. 흠, 좋으네요,”

“네, 고구마 더 있으니 많이 드십…….”

“지꿈 핸재 그건 그렇고, 소승이 꼭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니, 그냥 놀러 오셔도 되…….”

“백 선생. 그 왜 정 여사님 있죠. 백 선생에게 간심이 아주 많습디다. 문학에 대한 백 선생의 열정도 도와주고 싶고, 인연이 되믄 갤혼까지 생각하…….”

“저는 생각 없습니다.”

“왜요? 미인이고 조건도 좋은데…….”

“미인이나 조건보다 제 형편이…….”

“지꿈 핸재, 백 선생의 행팬은 상간 없어요. 정 여사는 엄청나게 부자거든요. 자기 재산이 얼만지도 잘 모를 정도지요. 그래서 말인데…….”

“스님, 그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고구마 더 드십시오.”

태규는 난로에서 군고구마를 더 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게 맛있어 보인다.

“만약 갤혼하믄 그날부터 백 선생은 아무것도 안 하고 글만 써도 충분히 살 수 있지요. 갤혼 기념으로 외제차도 사 줄 겁니다. 단, 두 가지의 요구사항만…….”

“스님, 커피 다 식었습니다. 약간 데울까요?”

“지꿈 핸재, 커피가 문제 아니고, 그 두 가지 요구사항이 머냐믄, 밸로 어럽지도 않아요. 첫째는…….”

“스님, 저는 별로 생각 없습니다.”

“끝까지 들어봐요. 왜 자꾸 남의 말을 중간에 잘라요?”

“…….”

남의 말을 중간에 잘라? 자꾸? 태규는 어이가 없었지만 입을 닫아버렸다.

“지꿈 핸재, 첫째 조건은 백 선생의 그 수염을 깨끗이 깎는 건데, 쉽지요? 내가 봐도 백 선생은 수염 때문에 환자처럼 보여요. 두 번째 조건은 이 산에서 나가는 것입니다. 넓은 사회로 나가서는 사람답게, 문화인답게 사는 겁니다. 쉽지요?”

“쉽지 않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수염 이야기는 제 자유를 침해당하는 거니까 절대로 싫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나가는 순간 제 꿈이 사라지는 겁니다. 자유와 꿈을 포기하면 사는 의미가 없고…….”

“지꿈 핸재, 호텔 같은 채고급 아빠뜨에 살면서 외제 차 타고 도서간에 가서…….”

“더 들어 보십시오. 왜 남의 말을 중간에 자꾸 끊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최고급 아파트나 외제 차보다는 자유와 꿈을 선택해서 사람답게 살겠습니다. 사람답게요.”

태규는 또 잘리기 전에 빠른 속도로 결론을 말해버렸다.

“지꿈 핸재,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꿈도 자유도 좋지만 좁은 움막에서 이게 뭡니까? 원시인처럼…….”

“원시인이 아니고 자유인입니다.”

“좋아요. 꼭 그렇다믄 일단 갤혼부터 하고, 나중에 수염도 기르고 다시 산에 들어올 수 있잖아요. 조금 융통성을 살려서 사람답게 사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사기 치는 것이고, 두 가지 요구를 받아들이면 제가 사육되는 것입니다. 사기나 사육은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라…….”

“지꿈 핸재, 혹시 남자 구실을 못 합니까? 이 나이 되믄 대부분…….”

“말을 잘라서 죄송하지만, 산에 살면서 그건 좋아졌고…….”

“그럼 머가 문젭니까? 자유와 꿈 이야기 말고…….”

“말씀드렸지요? 자유와 꿈이 없으면 사육되는 거라고요. 그건 싫습니다. 싫은 이유가 하나 더 있지만 사육되는 상황에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

“참 답답합니다. 좋아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연락드리지요.”

지핸스님은 다 식은 커피를 홀짝 마시고 일어났다.

<7>

사흘 후에 또 전화가 왔다. 결혼 문제라면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오늘 마지막으로 결판내자는 지핸스님의 말에 태규는 몸을 일으켰다. 아담 카페에는 소운스님도 함께 있었다.

“백 선생님. 외람되지만 제가 조금 끼어들게요. 그 언니는 제 여고 선배이고 우리 절에 열심히 나오시는 신도입니다. 언니는 결혼하고 3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보냈지요. 실의에 빠져있던 중에 친정아버지도 고혈압으로 세상을 버리셨고요. 언니는 어머니의 권유로 아버지의 토목 회사를 떠안았는데 이게 대성공이었어요. 지금도 사업이 잘 되고, 최근에는 외국에까지 부동산 투자사업을 넓히고 있어요. 사업 재미에 빠져서 재혼도 안 하고, 그 옛날 품었던 문학소녀의 꿈도 접었지요. 그런데 언니는 최근에 절에 와서 재능 있는 문학인을 좀 지원하고 싶다고 했어요.”

“…….”

소운스님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계속할게요. 그 자리에서 지핸스님이 백 선생님을 추천했고, 일전에 첫 만남이 있었지요. 언니는 백 선생님이 선량해 보이고 인간적인 매력이…….”

“스님, 60년 이상 살아온 저도 제 자신을 잘 모르는데, 그분은 저를 60분 남짓 보시고 어떻게 알겠습니까?”

“글쎄요. 사업가의 사람 보는 안목은 남다른 데가 있겠지요. 하여간 언니는 불심도 깊고 사람이 참 진실해요. 남과 나눌 줄 알고 남의 입장도 잘 배려해 주는 속 깊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백 선생님이 마음만 좀 바꾸시면 여유 속에서 글도 쓰실 수 있겠지요.”

“스님. 그분이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는 것부터 제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기를 치거나 사육을 당할 마음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지핸스님께 충분히 말씀드렸으니 이 정도로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태규는 호수에 돌 던지듯이 확실히 의사를 밝히고, 딴 소리 나오기 전에 말머리를 얼른 돌려버렸다.

“그보다 지핸스님께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

지핸스님은 동그란 눈으로 소운스님과 태규를 번갈아 보았다.

“스님. 어떻게 휘파람을 그리 잘 부십니까? 콰이강의 다리, 그 정도 불려면 얼마나 연습해야 됩니까?”

“지꿈 핸재,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연습…….”

갑자기 지핸스님이 말을 멈추었다. 입구 쪽에 덩치 큰 남자와 노랑머리 여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고, 스님. 여기서 또 뵙네요. 반갑습니다.”

현수는 지핸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태규에게도 인사를 했다. 지핸스님이 헐헐 웃으며 말했다.

“지꿈 핸재, 이 암쭝, 아니, 이 스님은 소운스님이고…….”

“저, 먼저 일어나겠어요. 천천히들 오세요.”

소운스님은 황급히 나가버렸다. 붙들거나 인사조차 할 틈도 없었다. 지핸스님은 ‘암쭝’소리에 토라졌구나 하는 짐작으로 뜨끔했지만, 소운스님은 덩치 큰 남자를 보고 간이 철렁했다. 오른쪽 어깨도 갑자기 아파왔다.

하지만 현수는 김명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월이 30년도 더 지난 데다, 비구니가 되었으리라고는 상상인들 했으랴.

끝. 원고지 77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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