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꼰대와 애새끼

by 구민성

단편--꼰대와 애새끼

<1>

“끼이익! ”

자주색 페라리가 불과 1m 앞에서 멈췄다. 하마터면 받칠 뻔했다.

“야, 이 빙신 같은 꼰대. 죽고 싶어 환장했어?”

차창을 내린 젊은 놈은 거침없이 폭언을 퍼부었다. 차창은 짙은 색으로 선팅이 되어있고 젊은 놈의 선글라스도 꽤 짙은 색이다. 머리를 붉게 염색하고 귀걸이도 한쪽에 두 개씩이나 달고 있는 젊은 놈은 서른 안팎으로 보였다.

“아니, 젊은이. 이 좁은 길에서 그렇게 과속으로 달리면…….”

“과속 좋아하네. 이 꼰대가 살기 싫은가?”

젊은 놈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병우는 멈칫했다. 자신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크고 100kg도 훨씬 넘어 보였다.

“이봐, 영감! 눈깔 빠졌어? 여긴 횡단보도가 아니잖아!”

또 영감이란다. 아직은 이런 말이 낯설고 어색하다. 어르신 소리도 듣기 싫은데.

젊은 놈은 삿대질에 반말과 욕설까지 섞어가며 침을 튀겼다. 행인들은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고 제 갈 길만 재촉했다. 병우는 이 젊은 놈이 두려운 만큼 행인들도 박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군은 아무도 없고 복잡한 인도는 텅 빈 느낌이었다.

“죽고 싶으면 곱게 집에서 죽어! 객사하지 말고, 지기미!”

젊은 놈이 침을 찍 뱉으며 떠났고 병우는 하릴없이 차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차바퀴 자국이 왜 저럴까? 한쪽만 길고 한쪽은 짧네.’

병우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무너지는 모래성이 떠올랐다.

아, 나이 먹으면 이렇게 되는가? 자식 같은 놈에게 모욕을 당해도 그냥 고개 숙이고 끝내야 하는가. 어디 하소연하거나 위로받을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알까 봐 걱정되었다.

사실 병우는 환갑을 맞고서부터 무척 약해졌다. 체력도 그렇고 정신력도 마찬가지다. 상실감과 무력감 때문에 마음이 답답했다. 어디 가서 고함이라도 실컷 지르고 싶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곳도 없고, 또 지금은 목욕탕에 가는 중이다. 목욕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내의 잔소리에 떠밀려서 가는 것이다.

평일의 목욕탕엔 아이들이 없어 조용했다. 병우는 샤워를 하고 열탕에 들어갔다.

“어허, 시원하다.”

뜨거운 물에 어깨까지 담그니 굳은 근육도 풀리는 것 같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으려니 조금 전에 찻길에서 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차창에 비쳤던 늙수그레한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구시렁댔다.

“참, 나! 왜 이렇게 되었지? 내가 어쩌다가 그런 새파란 놈에게 수모당하고 꼬리 내리게 됐나?”

병우는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자수성가하여 시청 과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생활이 모범적이고 도덕심이 강했다.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고 할 말 다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털 빠진 독수리 모습이라 갑자기 무력감이 느껴졌다.

바로 그때였다. 이번에는 머리가 노란 젊은 놈이 샤워도 하지 않고 마른 몸 그대로 열탕에 들어왔다. 발도 안 씻고 똥구멍도 안 씻고 탕에 들어오다니!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병우는 고함을 지를 뻔했다가 꿀꺽 삼키고 말았다. 젊은 놈의 피둥피둥한 등에는 용 문신이 친친 감고 있었다. 더구나 그 용의 눈이 자기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또 가슴부터 배꼽 옆에까지 죽 그어진 흉터는 수술 자국인지 폭력의 흔적인지는 몰라도 어떤 도발성이 느껴졌다.

젊은 놈이 탕에 텀벙 앉으니까 물이 확 넘쳐나갔다. 하지만 녀석은 금방 일어났다.

“아이고, 뜨거워라. 씨발!”

젊은 놈은 혼잣말로 씨불대더니 찬물 밸브를 확 열었다. 찬물은 억지로 참다가 울음보가 터진 아이처럼 콸콸 쏟아졌다. 조금 후에는 열탕이 그냥 온탕처럼 미지근해지고 말았다.

“아니, 젊은이. 물이 뜨거우면 저쪽 온탕에 가지 왜 열탕을 식혀… 요?”

병우는 용기를 내어서 젊은 놈에게 한마디 했다.

“뭐요? 이 목욕탕 할배가 전세 냈소?”

“뭐, 뭐라고? 할배? 전세?”

병우는 더 참지 못하고 눈을 부라리며 날을 세웠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젊은 놈이 벌떡 일어나서 병우 쪽으로 오더니 눈에 힘을 딱 주었기 때문이다.

“왜요? 물이 식어서 억울한가요? 그래서 어쩔 건데요?”

“…….”

병우는 더는 말을 못 했다. 용 문신의 눈이 노려보는 것 같아서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면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버렸다.

“요새 할배들은 너무 건방지다 이 말이야, 씨발!”

병우는 젊은 놈의 말 폭탄에도 아무런 대꾸를 못 했다. 깨갱 하고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완전한 참패였다. 아, 요즘 젊은 놈들은 왜 이리도 거칠까?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아서 이 모양일까? 그러나 이런 말은 속에서만 맴돌았지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젊은 놈이 샤워기 아래에서 면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면도를 다 마칠 동안 샤워기의 물을 그냥 틀어 놓았다. 물을 보통 낭비하는 게 아니었다. 면도를 마친 놈이 한쪽 옆에 있는 소변기로 가서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병우는. 얼른 가서 샤워기를 잠갔다. 젊은 놈이 돌아오더니 병우를 노려보며 굵은 목소리로 따졌다.

“할배, 남이 쓰고 있는 물을 왜 잠가요?”

“아니,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오줌 누고 있기에… 물을 아껴야 하니까…….”

“흥! 할배가 목욕탕 주인이요? 왜 남이 쓰는 샤워기를 건드려? 건방지게!”

건방지다는 소리를 벌써 두 번째 하는 건방진 젊은 놈이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플라스틱 대야를 집어던지며 포악질을 시작했다.

“이런 씨발! 물을 아끼라고? 목욕비 냈으니 물 쓸 권리가 있잖아!”

젊은 놈이 떠들고 설치는 동안 다른 손님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병우는 말없이 한증탕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젊은 놈은 거기에까지 따라 들어왔다.

“보시오, 할배! 너무 건방진 거 아니오? 도대체 할배가 뭔데 물 아껴 쓰라고 강요하냐 이 말이오. 씨발!”

“아니, 내 말은… 쓰는 물은 쓰더라도, 안 쓰는 물은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글쎄, 그 물이 할배 물이요? 내가 돈 낸 만큼 쓰겠다는데 왜 간섭하냐 이 말이요. 씨발!”

젊은 놈은 눈을 부릅뜬 채 씨발! 을 양념처럼 뿌리고, 병우는 용 문신의 눈을 흘끔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증탕에서 나온 병우는 울컥하면서 눈물까지 나올 뻔했다.

<2>

병우가 탈의실 선풍기 앞에서 몸을 말리고 있을 때였다.

“아이고, 과장님. 목욕 오셨습니까?”

거울에 비친 사람은 목욕탕 3층 헬스클럽의 정상철 코치였다.

“아, 정 코치. 오랜만이구먼.”

40대 초반인 정 코치는 옛 로마 시대의 검투사처럼 웅장하고 당당한 체격이지만, 보기와는 달리 싹싹하고 인사성이 밝은 사람이다.

“과장님. 왜 요즘은 운동하러 안 오십니까? 퇴직하시고도 여전히 바쁘십니까?”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지.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하잖아?”

병우는 상철과 소소한 잡담을 하면서 몸을 말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젊은 놈이 나왔다. 용 문신이 그려진 몸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게 마치 용이 열을 뿜어내는 것 같다. 병우는 눈을 피하며 얼굴에 로션을 발랐다.

젊은 놈은 마른 수건을 석 장이나 쓰면서 몸을 닦고, 두 대의 선풍기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 잠시 후에는 병우가 쓰던 선풍기의 모가지도 제 쪽으로 돌려버렸다. 아끼는 것도 없고 거침도 없는 폭군 같은 행동이었다. 면봉을 집어 올리니 두 개가 더 딸려 나와 통 옆에 떨어졌다. 줍지도 않는다.

젊은 놈이 몸을 다 말리고 로션을 바르기에 병우는 선풍기 두 대를 껐다.

“할배, 또 왜 그래요? 왜 내가 쓰는 선풍기를 할배 마음대로 꺼요?”

“아니, 다 쓴 거 같아서… 전기를 아끼자고…….”

병우는 우물쭈물 겨우 대답하고 젊은 놈은 신경질적으로 선풍기를 다시 켰다.

“이 할배 진짜 웃기네. 할 일 없으면 집에 가서 자빠져 자든지, 왜 남의 일에 간섭하냐 이 말이요. 씨발!”

그때였다.

“뭐라? 야, 이 자식아! 너 방금 뭐라 했어?”

정 코치의 말에는 힘이 있고 눈빛도 강렬했다. 젊은 놈이 할 말을 못 찾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정 코치가 또 일갈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부모 같은 어른께 무슨 말버릇이 그따위야?”

정 코치가 세차게 나가니까 젊은 놈은 얌전해졌다. 그 틈을 타서 병우가 말했다.

“보시오, 젊은 양반. 물이나 전기를 아끼지 않으면 목욕탕의 운영 원가가 올라가지 않겠소?”

“…….”

“원가가 올라가면 목욕비도 오를 가능성이 크지 않겠소?”

“…….”

병우는 옆에 정 코치가 있으니까 마음 놓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환경이니 정책이니 뭐 그런 복잡한 게 아니고, 우리가 아껴 써야만 목욕비 인상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거요.”

이번에는 정 코치가 거들었다.

“맞습니다, 과장님. 요새 젊은것들은 당최 아낄 줄을 모릅니다. 아끼면 쩨쩨하고 함부로 마구 쓰면 멋지다고 생각하지요. 고생들을 안 해봐서 그럴 겁니다. 대가리 빈 것들!”

말은 병우에게 했지만 날카로운 눈빛은 계속 젊은 놈을 향하고 있었다. 요새 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정 코치에게 젊은 놈이 찍소리 못하고 눌려버린 것이다.

젊은 놈은 말대가리 모양으로 끄덕 인사하고는 꽁지 빠지게 나가버렸다.

병우는 거실에서 TV를 켰다. 뉴스 시간이다. 마침 정호가 들어왔다. 늦둥이 정호는 제대하고 복학을 기다리는 대학생이다. 뉴스에서는 진보정당의 해산에 대한 보도와 논평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여튼 꼰대들이 문제야. 나라 다 망친다니까.”

정호의 말에 병우는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삼켜버렸다.

“대법관들이 너무 늙었어. 완전 경로당이야, 경로당.”

하지만 이 말에는 병우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정호야. 너도 알겠지만 대법관은 법과 절차에 따라 임명하는…….”

“법과 절차에 따라서 노인들만 임명해요? 젊고 유능한 판사는 아무도 없어요?”

진보와 보수의 진영을 대변하는 듯한 대화는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되기 마련이다.

“하여간 50세 이상은 다 물러나야 해요. 경로당 꼰대들이 진보의 싹을 다 죽이고 있으니 미래가 어찌 되겠어요?”

“그래도 정호야. 세상일이란 경험과 경륜이 꼭 필요하잖아?”

“경험, 경륜, 그것이 고정관념이 되어 참신한 변화를 막지요. 지긋지긋해요, 정말.”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면 거의 뻔한 방향으로 간다.

병우는 ‘우리 젊었을 땐 어른들 말씀을 잘 들었다’로 시작해 가난과 고생의 이야기까지 길고 느리게 이었다. 험난한 시대를 극복하는 데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눈물이 밑바탕이 되었고, 파월 장병과 사우디 근로자들의 피땀이 밑거름이었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은 역사의 훈장이다, 지금의 화려한 디지털도 실상 그 바탕은 아날로그에서 시작되었고, 그 아날로그의 주역은 지금 너희가 꼰대라고 부르는 우리 장년층이다, 일하면서 싸운 우리가 경제와 민주화의 불을 피웠다, 그 결과는 세상이 놀라는 한강의 기적이었고, 그 기적을 지금 너희가 즐기고 있다는 말까지,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이었다.

“정호 너, 이런 말 들어봤어? 앉아 있는 노인이 서 있는 청년보다 더 멀리 본다는 말. 그건 노인의 경험과 지혜가…….”

“경험과 지혜도 좋아요. 하지만 멀리 보이는 길만 있어요? 바로 옆에도 길이 있지 않아요? 어째서 어른들은 케케묵은 관록이나 나이로 이기려고 해요? 젊은 사람은 매사에 서툴고 지혜가 모자란다는 생각은 정말 심각한 고정관념이지요.”

아들은 독재와 군사문화를 비판하고 기성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에 독한 칼날을 겨눈다. 세월호 침몰의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그 배의 선장은 경험 많은 노장이었고, 그 회사의 유병언 회장도 경륜이 화려한 노인이었다, 버캐 같은 관행과 부정으로 세상이 온통 썩었다, 경제 발전도 독재가 아니었으면 더 빨랐을 것이다, 재벌만 살찌고 노동자는 헌신짝이 되었다, 뭐 이런 주장까지 아들의 반격은 속사포처럼 전개되었다.

목소리와 말의 속도에 눌린 병우는 피곤하다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병우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나이 탓인지 아들과의 논쟁도 버겁다. 그래서 홍시는 생감이랑 부딪치면 안 되는 거야. 깨어지지 않으려면 충돌을 피해야지.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애들은 모두가 말을 너무 잘해. 돼지 한 마리 놓고 한참 토론하면 황소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토론의 달인들이야. 하기야 우리는 4 지선다형 교육이었고, 지금 애들은 논술 교육을 받으니까 말을 잘하겠지, 논술 그거 논에서 술 먹는 거 아니지,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놈의 자식, 아비한테 좀 져주면 안 되나? 울컥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3>

병우는 기원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찡그렸다. 뿌연 담배 연기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냥 나온 병우는 입구에서 김창일 교장을 만났다. 그는 지난 2월에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는데 병우가 무척 좋아하는 선배다.

“형님, 나가서 차나 한잔 하십시다.”

“왜? 바둑은 안 두고?”

“아이고! 굴뚝입니다, 굴뚝. 눈을 못 뜨겠어요. 박 상무하고 골초 패거리들 나간 후에 다시 와야지, 원.”

“그래, 맞아. 흡연실 금연실 구분했으면 실천해야지, 주인부터 규칙 어기고 벌금조차 안 내는데 뭐가 되겠어? 모레 회의 때 내가 한마디 할 거야.”

기원 옆의 찻집에 들어가서 보이차를 시킨 병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나 어제 황당한 꼴을 당했어요. 하루에 세 번이나 힘없는 꼰대 취급을 당하고 나니까 정신이 없어요.”

“왜, 무슨 취급을 어떻게 당했기에 정신까지 없어?”

김 교장이 차를 마이며 물었다. 병우는 폭주족 젊은이, 목욕탕 젊은이, 그리고 아들과의 대화까지 대충 이야기했다. 딴에는 차분하게 시작했으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새삼스럽게 흥분되었다.

“맞아, 자네 심정 이해하겠네. 나도 비슷한 일을 더러 겪었거든. 요새 젊은것들은 왜 그리 거칠고 버르장머리 없는지 정말…….”

“사실 기성세대의 잘못도 크지요. 청문회 할 때마다 후보자들의 한심한 꼴을 보세요. 본인과 아들의 병역 기피는 왜 그렇게 많아요? 혼외 자식에, 위장 전입, 세금 포탈, 부동산 투기, 논문 도둑질까지 더러운 짓이 얼마나 나와요? 마치 불법 백화점 같지요. 이러니까 애새끼들이 꼰대들을 더 욕하지요.”

“그래, 그것도 맞아. 하지만 병역기피는 요즘 애들도 많이 하잖아? 연예인들 중에 생니를 뽑거나 외국으로 내빼는 녀석들도 있지. 멀쩡한 놈이 군대 안 가려고 이상한 진단서 만들어서 별짓을 다 하더라고.”

이번에는 김 교장이 병우 찻잔에 차를 따랐다.

“어느 사회에나 특권의식이 있고 옛날에도 권력자들의 탈법이 많았지요. 이것은 세대 차가 아니고 개인의 가치관 문젭니다. 그래도 요즘은 언론과 인터넷으로 사회 고발 기능이 강해서 많이 투명하지요.”

“솔직히 우리 세대가 제일 과도기적이야. 수동타자기의 마지막과 전동타자기의 처음을 연결했지.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문턱이 우리야. 부모님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에게 노후를 기대지 않는 첫 세대야. 정말 파란만장한 세대 아닌가?”

김 교장은 시선을 창 쪽으로 보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이마 주름이 세월의 더께를 보여주는 흔적 같았다.

“형님, 우리 집 아들놈은 꼰대들이 물러나야 한다고 해요.”

“흥, 물러나면? 기둥이 약간 비뚤어졌다고 빼버리면, 그래 지붕만 떠 있을 수 있어? 그리고 저희는 꼰대 안 되는가?”

“애들은 꼰대들이 창의와 혁신을 모른다고 비판해요.”

병우는 마음에 안 드는 애들을 일러바치는 투로 말했다.

“창의? 그거 요새만 나오는 거 아니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과 장영실의 발명품들이 모두 창의였고, 이순신의 거북선도 혁신이었어. 경부고속도로와 새마을 운동도 창의적인 도전이었고, 정주영과 박태준의 성공 신화는 최고의 혁신 모델이었잖아. 그리고 기술과 경제의 발전이 모두 그 당시 꼰대들의 전리품이지.”

김 교장은 차근차근 설명하면서도 열정이 넘쳐 보였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의 말은 언제나 논리 정연했다.

“맞아요. 애들은 창의와 혁신이 요즘 갑자기 생겼거나 저그들의 전유물처럼 말하지만, 기성세대에서 만든 바탕이 더 많지요.”

“요즘 스마트폰이 어쩌고 해도 그 뿌리는 모두 아날로그에서 시작된 거라고. 목마를 때 물 떠먹던 헌 바가지를 함부로 부수면 안 돼. 헌 바가지는 그것대로 쓰임새와 역할을 찾아야 해. 그런 노력이 창의와 혁신의 마중물이지. 지금 새로운 물컵이 생겼다고 옛날 바가지를 다 버리면 안 돼. 사람이나 물건이나 마찬가지야.”

“그렇죠. 요즘 젊은것들은 뭘 아끼는 게 없어요. 조금만 필요하면 카드로 덜렁 사고, 조금만 필요 없으면 멀쩡한 것도 마구 버려요. 애들이 너무 풍족하게 자라서 그래요.”

병우는 어제 목욕탕의 노랑머리를 생각하면서 젊은이들의 낭비벽을 비판했다.

“우리가 이면지 쓰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는 애들도 많아. 비닐봉지나 종이 상자 모으는 노인을 궁상스럽게 보면 안 돼. 그건 절약과 저축의 실천이지. 만약에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풍요가 어디에서 나왔겠나?”

한참 열 올려 이야기하다 보니 시장기가 돌았다. 벽시계는 12시 15분을 가리킨다.

“형님, 곰탕 먹으러 가십시다. 오늘은 제가 쏘는 날입니다.”

3대째 영업하는 곰탕집에는 점심시간이 전쟁판이다. 현관에는 손님들의 신발로 넘쳐난다. 병우가 실수로 남의 운동화를 약간 밟았다.

“에이 씨, 왜 남의 신발을 밟아요? 재수 없게!”

마침 밖으로 나오던 신발 주인은 정호 또래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아니, 일부러 밟은 것도 아니고, 복잡해서 좀 실수한 걸 갖고 뭘 그리…….”

젊은이가 병우의 말을 자르면서 팩 쏘았다.

“그러니까 조심해야지요. 그리고 잘못했으면 사과부터 해야지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요? 재수 없게, 에이 씨!”

그때였다. 김 교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봐, 젊은이! 너무 지나치네. 어쩌다가 실수한 걸 갖고 부모 같은 어른에게 그 무슨 태도가 그래?”

“글쎄, 실수했으니까 사과부터 해야지요. 아직 사과를 안 했잖아요? 진짜, 재수 없게.”

젊은이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눈을 똑바로 떴다.

“그래요. 내가 실수했소. 미안하외다.”

병우는 젊은이와 계속 입씨름하는 게 남사스러워서 그냥 사과를 해버렸다.

“다음부턴 조심하세요. 내 신발은 엄청 비싼 이태리제니까요.”

젊은이는 아무런 흠집도 없이 깨끗한 운동화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탁탁 털었다.

병우와 김 교장은 곰탕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즘 애새끼들 겁나요, 정말.”

병우가 깍두기를 씹으면서 짧은 푸념을 했다.


<4>

<오빠. 퇴근 후 주꾸미 어때? 전에 그 집. 6:10. OK?>

최지수가 보낸 문자였다. 9급 공무원 3개월 차 지수는 정호보다 2년 후배인데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사귀는 연인이다.

“주꾸미 3인분에 소주 한 병 주세요.”

지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문했다.

“왜 3인분이야?”

“오빠 많이 먹으라고…….”

정호는 싱긋 웃으며 지수에게 술을 권했다.

“지수 넌, 완전히 칼퇴근이구나.”

“그럼. 여섯 시 땡! 하면 사정없이 나오지.”

“윗사람들이 안 싫어해?”

“처음에는 좀 싫어했지만, 요즘은 안 그래. 퇴근 시간 되어서 퇴근하는데 뭐가 틀린 거야?”

지수는 권리와 의무를 확실히 구분하지만, 정호는 그런 게 은근히 걱정되었다.

“하지만 윗사람들이 퇴근하고 나서…….”

“왜? 그들은 자기들 시간, 나는 내 시간에 퇴근하면 되지. 솔직히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은 일 많이 안 해. 근무 시간에는 어영부영하다가 나중에 바쁜 척하는 거야. 대충 그래.”

지수는 똑소리 나게 처신한다. 업무는 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불합리한 일로 손해 볼 마음도 전혀 없다. 동장은 젊은 직원들이 자리에 앉은 채 인사하는 걸 싫어했다. 버릇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였고, 우리 때는 안 그랬다며 몇 번이나 훈계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동장이 들어오면 엉거주춤 일어서는 척했다.

하지만 지수는 ‘동장에게 일어서서 인사하기’라는 법 규정이 없다면서 그냥 앉아서 인사했다. 대신에 업무를 빈틈없이 처리했고 동사무소의 직원들과 민원인에게는 항상 웃음 띤 얼굴로 대했다.

정호는 평소에 아버지에게 보수를 비판하지만, 그래도 다른 젊은이들보다는 보수에 가까운 성향이다. 그것은 아버지와의 잦은 대화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기 때문이다. 자신을 포함한 요즘 젊은이들의 문제점도 적잖게 공감하는 편이다.

정호는 아버지의 의견을 많이 인용하여 자기 생각을 지수에게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많이 달라. 과거에는 상사의 이삿짐도 옮겨주면서 휴일까지 충성했대. 하지만 지금은 전설 같은 이야기지. 어떤 젊은이들은 직장에 근무하면서도 다른 곳에 이력서를 내거나 문의 전화도 하잖아. 좀 더 자기를 인정해 주는 곳이 있으면 언제라도 떠나는 거지. 이익을 위한 선택권이 인간관계의 의리를 덮어버린 거야.”

눈을 빛내면서 듣고 있던 지수가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그건 당연하잖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거든. 오빠도 수학여행 단체 사진 볼 때 자신의 얼굴을 맨 먼저 찾잖아? 아무리 친해도 친구를 먼저 찾지 않고, 아무리 존경해도 선생님을 먼저 보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지. 그런데 그게 문제야. 자기 밥그릇을 키우려고 회사의 출혈을 계속 요구하잖아? 그러다가 결국 회사가 문을 닫거나 외국으로 나가버리지. 자기중심적으로 투쟁하다가 결국엔 자기의 일자리가 없어져 버리는 거야. 귀족 노조와 전교조, 공무원 노조 등에 소명의식이나 고통 분담을 기대한다는 것은 짝사랑에 가까운 사치라고 봐. 그들은 밥그릇을 단순히 지키는 게 아니라 최대한으로 키우려고 주먹 흔들지.”

“오빠도 이제 보니 완전 보수네. 갑의 관점에서만 사물을 보는 것 같아.”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젊은이들이 직장에 충성한다는 개념은 애초부터 없잖아? 그러다 보니 이직률도 엄청 높지. 실력도 안 되면서 눈은 높아서 여기저기 이력서만 내고 어지간한 곳은 외면해 버리지.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희망자는 잔뜩 몰려. 그래서 좀 인기 있는 자리라면 경쟁률이 장난 아니지. 약간 눈을 낮추면 일자리는 많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자리에 집착하지. 그렇게 심한 병목 현상이 청년 실업의 가장 큰 원인이 되잖아. 게다가 부모님의 재산이 머잖아 넘어오는 걸 아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기 싫고 말이야.”

정호의 논리는 아버지의 생각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지수의 생각은 좀 달랐다.

“고용주에게도 문제가 많지. 직원이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금방 해고하고 새로 뽑잖아. 인건비를 줄이려고 비정규직만 늘리잖아? 이런 악질적인 갑질 때문에 노사관계가 삭막해지고 경쟁과 선택이 복잡해지는 거야.”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 정호가 화제를 약간 바꾸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도 보통 문제가 아니야. 학교에서부터 끼리 의식이

강해서 무슨 동아리니 모둠이니 하면서 편 가르기에 열을 올리지. 그 과정에서 왕따가 생기고 마음의 상처와 청소년 자살까지 이어지기도 하거든.

끼리 의식은 말씨에서도 많이 나타난다고. 젊은이들의 언어습관도 거의 비슷하게 닮아가지. ‘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하면 될 것을 ‘저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좋아한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로 길게 늘여 말해. 또 ‘도로가 막힌다.’처럼 간단한 말도 ‘도로가 막히는 모습을 보인다.’로 길게 늘이지. ‘이 물건은 국산입니다.’ 할 것을 ‘이 물건은 국산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와 같이 길게 말하잖아. 문제는 길게 늘여 말하는 것의 폐단이야. 가뜩이나 외국인이 한국말을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가 우리말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좋을 게 뭐냐고. 우리말이 이렇게 복잡하면 번역도 어렵게 되잖아. 영어로 번역이 어려우면 노벨 문학상은 영원히 멀 수밖에 없어.”

“그건 나도 동의해. 사실 요즘은 이상한 신조어들도 판을 치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먼지처럼 풀풀 날리면서 ‘외계어’라고 부르는 것도 많아. 한국인끼리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말이 돌아다녀. 정부는 방송이나 컴퓨터에서 엉터리 말을 쓰면 어떤 벌칙을 줘서라도 바른 언어 사용을 유도해야 할 거야. 언어의 이질감이 세대 간 이해 부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지수는 국문과 출신답게 젊은이들의 굴절된 언어생활을 비판했다. 정호가 지수의 잔에 맥주를 따르면서 말했다.

“그런 여러 가지 사정이 얽혀서 꼰대들은 애새끼들에게 눈을 흘기는 거야. 지금은 컴퓨터를 잘 쓰는지 아닌지, 카톡이나 유튜브를 잘 쓰는지 아닌지, 끼리끼리 말이 통하는지 아닌지 따위로 세대 간의 편 가르기가 이루어진다고.”

정호는 지수를 만나면 보수가 되고, 아버지와 이야기하면 진보로 바뀌는 자신이 박쥐처럼 생각되어 피식 웃었다.

<5>

병우는 원두커피를 두 잔 내려서 아들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 며칠 전에 겪었던 폭주족과 목욕탕 젊은 놈의 이야기를 했다. 또 곰탕집의 이태리 운동화 사건도 말했다.

“아이고, 아버지. 이제는 젊은 사람들과 부딪치지 마세요. 걔들이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 두세요. 요즘 젊은이들은 꼰대 잔소리와 간섭을 제일 싫어해요.”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고 틀린 것은 바로잡아야지.”

"그게 잡혀요? 괜히 아버지만 속상하고 봉변당하니까 그만두세요. “

정호가 말렸지만 병우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정호야. 아직도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는 젊은이가 있으니까 희망은 있어.”

“갈수록 그런 젊은이가 줄어드니까 문제지요.”

“그래, 그건 맞아. 그러나 포기하면 안 돼. 비록 소수의 젊은이라도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차츰 늘어날 거야.”

정호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병우는 모처럼 아들과 말이 통하는 게 흐뭇했다.

“사실 요즘 애들의 행동은 어른들의 잘못이야. 부모와 사회가 그렇게 키웠거든.”

“어른들의 본보기가 안 좋았지요.”

“그래 맞아. 애가 어른을 키운 게 아니고 어른이 애를 키웠으니…….”

“어른들도 반성이 필요하지만, 생각을 바꿔야 할 젊은이들도 많아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젊은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억지 소리하는 젊은이도 많아요. 그런 인간은 싸가지 없는 애새끼가 맞아요.”

“지금 진보의 주축인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60∼70년대 근대화 노력을 이해해야 하지. 그리고 그 이후의 민주화 노력을 바르게 알아야만 소위 꼰대라는 사람들을 제대로 알 수 있어.”

병우는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아들에게 쏟아내는 중이다.

“물론 군사독재가 옳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비가 많이 올 때는 일단 비부터 피하는 게 맞잖아. 그 당시엔 굶는 사람도 많았어. 배고픈 국민들에겐 배를 채우는 게 가장 급했지. 어떤 사람은, 박정희가 삼만 명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삼천만 명을 먹여 살렸다고 말했어. 그것도 고통받았던 삼만 명 중에서 양심 바른 사람이 한 말이야.”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세월이 더 흘러야 해요. 지금은 보수 진영이 너무 세니까 불공평하거든요.”

“그래. 그럴 수도 있어. 그런데 나는 이걸 꼭 말하고 싶어. 박정희는 18년을 독재했지만, 우리나라가 이 만큼 살도록 바탕을 모두 만들었어. 그는 개발 독재를 했지.

하지만 김일성은 49년 동안 독재했고 아들과 손자까지 모두 70년 이상의 독재가 진행되고 있어. 그런데 오늘날 북한의 모습을 보라고. 일부 특권층을 빼고는 완전히 거지 생활이잖아. 그들은 6. 25를 일으키고 600여 차례의 도발 만행을 저질렀어. 70년 동안에 무려 300만 명의 북한 인민을 처형했지. 급기야 형과 고모부까지도 죽이고…….”

“하지만 아버지, 박정희도 반대파에게 엄청난 고통을…….”

“내 말 더 들어봐. 진보 진영에게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은, 북한의 인권 탄압과 거지처럼 비참한 생활상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안 하는가 그 말이야. 진보 진영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졌다면 북한의 폭압 정치와 거지꼴 경제에 대해서 비판해야 마땅한 거 아니야?”

병우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계속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공화당 독재와 노동당 독재의 결과를 보라고. 지금 남과 북의 차이를 보라고. 더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외국의 객관적인 평가를 살펴야 하는 거야. 국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남한과 북한에 대한 평가 말이야.”

묵묵히 듣고 있던 정호가 냉장고에 가더니 사과를 가져와서 깎기 시작했다.

“우리가 북한보다 풍족한 건 인정해요. 그러나 빵만 먹고사는 건 아니잖아요? 자유와 정의가 있어야 사람답게 사는 거잖아요?”

“그래, 맞아. 그럼 지금 북한에 자유와 정의가 있니? 네가 지금 깎아서 버릴 사과 껍질, 북한 애들은 그런 걸 시장바닥에서 주워 먹는 거야.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그곳에 자유와 정의가 있니? 북한이 우리보다 더 사람답게 사는 거니?”

“…….”

아들의 침묵을 딛고 병우가 계속 말했다.

“사람들은 평소에 공기가 좋은 걸 못 느끼며 살고 있어. 하지만 굴속에 갇혀보면 알게 돼. 그러니까 주사파나 종북파 애새끼들이 1년이라도 북한에서 살아보면 좋겠어. 희망자만 보내주면 되잖아.”

오늘은 정호가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모습에서 아버지의 주장에 공감하는 태도까지 보였다.

<6>

병우는 오전 10시에 기원으로 갔다. 오늘은 골초 회원이 안 와서 담배 연기가 없었다.

병우는 김 교장과 내기 바둑을 두었다. 오늘은 병우가 이겼다. 그렇다면 병우가 얻어먹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병우가 돼지국밥을 샀다. 병우와 김 교장의 내기 방식은 좀 독특하다. 항상 이긴 사람이 장원주라는 이름으로 점심을 산다. 이긴 사람은 이겨서 좋고, 진 사람은 얻어먹어서 기분이 좋다. 만약에 진 사람이 산다면 패배주가 되는데 그건 좀 곤란하다. 못 이겨서 서운한데 패배주까지 산다면 속상하니까 두 사람은 전부터 ‘거꾸로 내기’를 했었다. 대신에 메뉴 선택은 사는 사람이 하니까 그것만은 승자의 권리다.

병우는 국밥 먹으면서 어제 아들과 나눈 대화를 죄다 말했다.

“그래. 이제 자네 아들은 말이 좀 통하는군. 다행이야.”

김 교장이 종이컵의 커피를 마시며 정호를 치하했다.

“형님. 세대 간의 갈등을 없앨 방법이 정말 없을까요?”

“그건 어른들에게 해결책이 있어. 어른이 좋은 모범을 보이면서 잘 가르쳐야 해.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어주고, 병아리가 어미 닭을 따라가는 이치와 같아.”

김 교장은 적절한 예시를 잘 들어준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먼저 각성해야겠지요.”

“그렇지. 어른이 먼저 팔을 벌려야 애들이 안길 수 있어. 어른이 팔짱을 끼거나 등을 돌리면 애들이 안길 공간이 없거든.”

“그렇겠죠. 선거 때마다 어른들이 애들을 원수같이 취급하니 세대 간의 갈등이 자꾸 깊어지는 거지요.”

“애들은 적군이 아니야. 우리와 생각이 조금 다른 아군이지. 철부지 조카들이고 덜 익은 제자들인데 구박만 하면 안 돼. 안아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지.”

“하지만 불순한 의도를 갖고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특히 정치 세력과 언론의 이간질이 제일 심하지요.”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말이 잘 통했다.


거의 같은 시각에 정호는 자주 가는 카페에서 지수를 만났다.

“오빠, 나 좀 전에 엄마랑 한 판 붙었어.”

“그게 뭔 소리야? 한 판 붙다니?”

“엄마가 자꾸 내 옷을 간섭하잖아. 치마가 너무 짧고 블라우스도 목이 너무 파였다고 자꾸 잔소리를…….”

“그 문제는 나도 엄마 말씀에 동의해.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노출이 얼마나 심하니?”

정호가 정색하고 말하니까 지수는 김샜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털썩 내렸다.

“피, 오빠도 꼰대 냄새 풀풀 날리네.”

“아니, 꼰대가 아니라… 너의 몸을 다른 사람이 유심히 보는 거, 사실 나도 싫더라고.”

“그래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 건 여자의 마음이지.”

“야한 차림이 꼭 예쁜 건 아니지. 짧은 옷, 착 달라붙는 옷이 성추행 발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던데.”

“…….”

“어른들은 자식의 안전과 품격을 위해서 그럴 거야. 어른들을 이해해야지.”

지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또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코 세우는 것도 반대야.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모두 반대하거든.”

“코? 그건 나도 반대했잖아? 괜히 수술 잘못하면 더 흉해. 부작용도 걱정이고 말이야.”

“아니, 내 친구 수연이도 했는데 예쁘기만 했어.”

“그건 그 친구 이야기지. 꼭 친구처럼 할 필욘 없어. 넌 지금 이대로가 더 예뻐.”

지수는 지금이 더 예쁘다는 정호의 말에 기분이 좀 풀어졌다.

“그리고 말이야. 우리가 어른들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어. 남의 어른까지 어렵다면 최소한 우리 집 어른에 대해서 만이라도 이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해. 사실 젊은 사람들도 문제가 많기는 해.”

지수의 동의에 탄력을 얻어서 그런지 정호의 말에는 힘이 실렸다.

“젊은이들이 자기 집의 어른만 이해하고 존중해도 세상은 많이 좋아질 거야. 우리 아버지만 봐도 그래. 어릴 때부터 춥고 배고픔을 극복하며 치열하게 살아오셨더라고. 모진 세월을 살아오면서 고목처럼 늙으셨는데 우리 자식들이 존중해드리지 않으면 그분들은 정말 허탈할 거야.”

“고목이라 하니까 나무의 삶이 생각나네. 나무의 뿌리가 상처 입으면 줄기가 마르면서 잎이 시들고, 결국엔 꽃도 죽잖아. 연쇄반응이지.”

지수가 정호의 눈을 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지. 우리가 꽃이라면 잎과 줄기와 뿌리에 감사해야지. 그런 다음에 우리는 또 열매를 맺어야 하고.”

“열매? 맞아, 열매를 맺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근데 오빠, 내가 퀴즈 한 문제 낼까?”

“뜬금없이 웬 퀴즈를?”

“아기가 엄마 몸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 주먹을 꼭 쥐고 나오는 이유가 뭐겠어?”

“음… 힘든 세상에 나오면서 열심히 살겠다는 각오를 외치는 걸까? 응애, 응애!”

정호는 두 주먹을 자신의 볼에 갖다 대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아기 울음을 흉내 내었다.

“땡! 틀렸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드립니다.”

지수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정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나중에 빈손으로 갈 거니까 아예 지금 맨주먹으로 등장한다는 의미?”

“땡! 틀렸습니다. 정답은… 엄마의 자궁 내벽에 상처 내지 않도록 조물주가 배려한 거래. 그건 우주의 섭리라고 했어.”

“와우! 지수 굉장한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장차 엄마가 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겠지?”

지수는 정호가 몰랐던 걸 말할 때는 항상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맞네. 아기가 손가락을 펴고 나오면 엄마가 다치니까… 그것 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효도한다는 말이군. 부모가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아이도 효성으로 부모를 공경하면 그것이 바로 유토피아일 거야.”

정호는 지수와 함께 생각의 틀을 자꾸 키우면 ‘싸가지 없는 애새끼’에서 벗어날 거라는 생각을 가졌다.

정호는 부모님께 참외를 깎아드렸다. 싱글싱글 웃는 것까지 평소에 잘하지 않던 행동이라 부모님이 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눈치만 살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정호야, 너 용돈 떨어졌니?”

“아뇨. 용돈은 아직 남아 있어요.”

“그럼?”

“뭐가 그럼이에요? 그냥 효도 연습하는 건데요.”

“이야. 연습이 이 정도면 진짜 효도할 때는 어떨까? 기대가 큰데. 호호호.”

어머니는 맑게 흐르는 시냇물 같은 소리로 웃었다.

지수는 집에 와서 옷장을 정리했다. 짧은 치마와 핫팬츠, 배꼽티, 목이 많이 패인 블라우스까지 노출이 심한 옷을 꽤 많이 골라냈다.

“이 옷은 수연이에게 주고, 저 옷은 미라가 탐을 냈었지.”

지수는 두 개의 종이 가방에 옷을 나눠 넣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자신도 모르게 흥얼흥얼 나온 노래는 노래방에서 엄마가 불렀던 동백 아가씨였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말 못 할 그 사연…….”

지수는 뒷부분 가사를 잘 몰라서 콧노래로 멜로디만 웅얼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이 노랠 배워서 엄마랑 노래방에 가야겠어. 엄마 애창곡이 또 뭐였더라? 아, 맞아!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또 모르겠네. 나중에 제목 물어봐야지.’

인터넷 검색창에 ‘동백 아가씨’라고 찍는 지수의 눈은 빛났다.

- 끝 - 200자 원고지 101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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