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콕 일기(36)
최고의 변소

by 구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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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변소입니다.


내 둥지의 동쪽에 변소를 만들기로 했다.

약식으로 만드는 측간이라서 굳이 설계도를 그리지는 않았다.

전에 바닥을 사각형으로 만들면서 고생했기에 이번에는 삼각형 바닥을 선택했다.

내 솜씨가 시원찮은 점을 감안하여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일단 쇠 파이프 세 개를 박고 참나무를 기둥으로 연결할 요량이었다.

반생 철사로 묶는 것은 숙달이 되었으니 나름대로 자신 있었다.

팔뚝보다 약간 굵은 참나무를 세 개 골랐고 이제 여덟 자 정도의 길이로 잘라야 한다.


먼저 엔진 톱을 찾았다.

그런데 엔진 톱에 기름이 없다.

기름 가지러 임시 창고까지 오르막 산길 150미터를 가야 한다.

별다른 방법 없이 가야만 한다.

산 생활하는 사람이 걷는 것 겁내서 되겠나.


하지만 창고에 가보니 기름이 없다.

기름 사러 주유소에 가야 된다.

주차장에 가서야 자동차 키를 둥지의 기둥에 걸어 두었던 게 기억났다.


다시 둥지로 돌아가야지 도리 있나.

하지만 둥지 기둥에 자동차 키는 없었다.

내가 착각했던 것이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방금 창고에 벗어 놓은 작업복 점퍼에 키가 있는 것 같다.

이놈의 키는 매일 사람의 혼을 뺀다.

해도 짧은데 이렇게 헷갈려서 어쩌나.


아, 이럴 수가 있나? 갑자기 똥이 마렵다.

나는 바쁘거나 헷갈리면 시도 때도 없이 뒤가 급해진다.

근데 지금 기름 사 와서 언제 화장실 만들겠나?


옆에 보이는 삽을 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참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굴참나무 아래, 그곳에 흙 한 삽을 퍼내니까 최고의 변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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