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물리 시간에 배운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떤 물체를 들고 수평 방향으로만 이동하면, 그 물체에 대해 한 일은 0이다.” 교과서 속의 정의는 분명했다. 힘과 변위가 같은 방향일 때만 일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복도를 걸으면 어깨가 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이 난다. 교과서에 따르면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셈인데, 내 몸은 왜 이렇게 힘들어했을까?
그 해답은 근육 생리학에 있었다. 어떤 물체를 일정한 높이로 유지하려면 근육은 등척성 수축을 해야 한다. 이때 근육 속에서는 수많은 마이오신 머리가 액틴에 붙었다가 떨어지는 ‘교차다리 사이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 결합이 한 번 이루어지면 끝까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ATP라는 에너지 분자가 계속 공급되면서 붙고 떨어짐을 반복해야만 장력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마치 줄다리기를 할 때 사람들이 줄을 계속 움켜쥔 채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잡았다가 미끄러졌다가 다시 움켜쥐며 전체적인 당김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택했을까? 만약 마이오신이 한 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다면, 정말로 에너지 소모 없이 물체를 들고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사후강직, 즉 rigor mortis 상태가 바로 그런 경우다. ATP가 고갈된 시체의 근육에서는 마이오신이 액틴에서 떨어지지 못해 단단히 굳어버린다. 하지만 이 상태는 장력을 조절할 수도 없고,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도 없다. 단단한 고정일 뿐, 살아 있는 근육처럼 미세한 균형을 맞추며 버틸 수는 없다. 오히려 힘이 가해지면 단백질이 파손되기 쉽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쓸 수 없는 방법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의 근육은 어쩔 수 없이 ATP를 태워가며 끊임없이 교차다리를 순환시킨다. 이 과정에서 역학적 에너지는 열로 빠져나가고, 우리는 땀을 흘리며 피로를 느낀다. 결국 교과서의 물리학이 말한 “일은 0”이라는 정의는 맞지만, 그 문장 뒤에는 생리학적 현실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수평으로 이동하는 동안 물리적으로는 일을 하지 않았지만, 내 몸속의 근육들은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시절에 품었던 의문이 이제야 풀린 듯하다. 교과서의 깔끔한 정의와 현실의 땀방울 사이에는, 미세하게 춤추는 교차다리들이 있었다. 물리학과 생리학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나는 과학을 배우는 진짜 재미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