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물건을 고르는 신중한 태도
물건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에게 물건은 단순한 소비재라기 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반려인처럼. 생활의 동반자에 가깝다.
그래서 무엇이든 쉽게 고르지 않는 편이다.
어느 순간 부터 물건을 고를때 신중함이 생겼다.
마음에 든다고 덜컥 바로 사지 않고 며칠, 길게는 몇 달을 두고 생각해본다.
정말 이 물건이 나의 일상에 들어와도 괜찮을지
지금의 기분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필요할지.
마음속의 질문을 수백번 던져본 뒤에야 구매를 결정한다.
길에 가다가 충동적으로 산 옷이나 신발등은 대개 오래가지 못한다.
처음엔 설레지만 금세 손이 가지 않게 되고 어느 순간 구석에 밀려난다.
지금도 당근에 올려 누군가의 구매를 기다리고 있는 프라이탁 숄더백 처럼..
반대로 시간을 들여 고심해서 고른 물건은 쓰는 내내 애정이 따라온다.
신혼 여행으로 갔던 스페인에서 사온 냄비 받침.
거실 장식장 위에서 대답도 하고 음악도 들려주는 애플 스피커.
몇년 전 도쿄에서 고르고 골라 구매했던 꼼데가르송 지갑.
오래 쓰는 물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 어디에도 어울리는 색상과 질감.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한 형태다.
튀는 물건보다 무난한 물건이 시간 앞에서는 훨씬 강하다. 왠만해선 질리지 않고 배경처럼 오래 남는다.
물론 품질과 내구성도 중요하다.
아무리 예뻐도 쉽게 망가진다면 손에서 멀어지게 되어있다.
오래 쓰겠다고 마음먹은 물건이라면 쓸고 닦고, 고장나면 고쳐가며 아껴주는 과정까지도 존중되어야 한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물건을 대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자연스럽게 나만의 취향이 된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쓴다는 건 소비를 줄이기 위한 태도보다도 삶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에 가까운 것 같다.
적은 물건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고, 하나의 물건과 오래 관계 맺는 법을 알게 된다.
가끔은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기분 소비도 좋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살 때 망설이게 되는 그 마음 덕분에
집 안에는 쉽게 버리지 않는 것들, 쉽게 질리지 않는 것들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