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같은 양의 마음을
서로 가지게 된다는 것은
더욱 이례적인 일이다.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다 내비치는 것을
꺼려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마음이
타인보다 크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가진
마음의 크기가 더
크다고 판단되면
상대방의 작은 행동하나부터
말 한마디까지
더욱 신경을 쓰게 되고
상대방의 마음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마저 엄습한다.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고
가늠할 수 있는 무게가 없는 이상
사람의 마음을 은 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크기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불어나는 현상을
두려워하고 걱정을 한다.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마음이 커져서
상대방의 마음이 바뀔까 봐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그 두려움에서
상대방을 마음의 크기를
어림잡아 보는 것인지....
사람의 평균 인생이
80세라고 치면
80세가 될 때까지
수없이 상처받고
상처를 주게 된다.
아마도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조차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의 상처들이
오고 갈 것이다.
수백 번은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그 수는 결코 비약이 아닌 듯하다.
무릎이나 손가락에
상처가 나면
아물고 밴드를 붙였다가
연고도 바르고
그렇게 딱지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우리는 그런 상처를
자연스럽게 어루만진다.
구급상자라는 것을
미리 대기시키면서
언제 생길지 모르는
상처에 대한 대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대비를 할 수는 없다.
밴드를 붙이거나
딱지가 앉는 것 따위를
눈으로 관찰할 수도 없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마음의 상처는
말 그대로 상처이지만
어느 정도 긁히고 부딪치면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연고를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자신만의 연고를
자신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쓰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과
굴곡 있는 삶 속에서 얻는 연고는
다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매우 값비싼 값어치를 하는
연고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따뜻한 그늘 아래서
안전하게 잘 성장했다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뭇매
그리고 힘겨운 인생 의의 굴곡까지
견뎌봐야
그다음부터는
그 정도의 구덩이쯤이야 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감싸주어도
죽을 때까지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그런 상처를
'나만 겪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우울해하고 자책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나 겪는 일이다.
이런 것쯤이야 하고 괜찮다고
툴툴 털어내고
금세 일어서는 사람이 있고
이런 아픔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 말하면서도
그 아픔의 굴레에서
내내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삶은 두 가지이다.
잘 이겨내고 버텨서
나의 에너지로 만들던지
아니면 그 굴레에서
영원히 맴돌면서
자신의 피부처럼 딱 붙이고
불편하게 살아가던지.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단순한 것이기도 하다.
그 단순함을 받아들이지 못해
인간은 고뇌하고 힘들어한다.
'자신이 가진 신념대로
사람은 살아간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신념이
시키는 대로 산다고 생각하면
그 신념 따위
얼마든지 바뀌어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 뜻을 알 것 같다.
겉으로 보면 참 단순한 일이지만
깊이 고뇌하고
신념이 시멘트 굳듯이 굳어져
더 이상 바뀔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있다는
신념만 있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한겨울 시린 기온에
굳어져 버린 시멘트는
더 이상 삽이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런 사람 속은
알 길이 없으며 알고 싶지 않다.
묵처럼 야 들하게...
건너 지나가는 산들바람처럼
많은 것을 거쳐가도
거쳐간지 모르듯 하는 사람이라면
한 길까지 우리가 손을
넣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저 슬쩍만 보아도
그 사람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잘 알 수 있다.
받아들임을 잘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갈 수 있는지는
포용력이 넓은
수용적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언제가 마지막일지는 모르지만
마지막이 된다면
잠들어있을 그 얼굴이
마지막이 아닌
영원할 것 같은 느낌처럼
그렇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감내하고도
유연하고 부드러운 향을 내보자.
버터 향이 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살아있는 동안
한 번뿐인 인생을
무두질하여
부드럽게 잘 다듬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