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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인형이 되었다.

by Anna


억센 시골 청년은 자신의 일에 모든 것을 쏟았다.




사람들을 모으고, 밭을 일구고,




물건을 팔러 다니고, 학교를 다니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신문을 만들고,




의회에서 진출하고, 땅을 사고,




그렇게 계속해서, 언제나 고양이처럼




난관을 사뿐히 헤쳐나갔다.







그는 도시에서 곱게 자란




수백 명의 ‘인형’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그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대학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앞에 놓은 삶을 뒤로 미루지 않고




이미, 앞서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에게 기회는




단 한 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백 번 있었다.







-랄프 왈도 에머슨
















남들처럼 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이 정도는 해야 기초는 다지지 않을까?


많이 시키는 건 아냐. 기본만 하는 거지.


내년에는 학년이 높아지는데 미리 대비를 해야지.


나중에 아이가 학벌이나 성적 때문에 원망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좋은 대학이 아니라도 괜찮아.


그래도 대학교는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성인이 되었는데 제대로 된 밥벌이를 못하면 어떡하지?






실제로 내가 했던 생각들이다.



이제는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의식적으로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없애려고 한다.





내 아이가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내 아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하다.





그런 생각으로 바라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기대와 욕심이 커져서


아이의 인생에 끼어들어


방해를 하고 간섭을 했다.



정말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기보다는


남들 하는 식으로 끼워 맞춰 넣으려고 했다.



학교, 학원, 가정에서


아이를 삼중으로 둘러싸고 괴롭혀댔다.



어디서든 공부를 못하면 안 되고


성적이 낮으면 힘들어지고


학벌이 딸리면


후회하게 된다는 말만을 남기며


열심히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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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정말로 인형이 되었다.





하기 싫은 것이 있으면


불처럼 화를 내고 반항을 하거나,


불안한 마음 때문에 모른 척 잘 따라오기도 하였다.



작고 약한 인형은 그렇게


점점 가슴에 불타오르는


호기심과 열정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고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규칙과 질서들이 그렇게 만들어갔다.



'인형'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완벽한 수동형 인간이 되었다.



자신의 생각이 있긴 한 걸까?


할 정도로 내 아이는 달라졌다.



의욕이 없어진 아이를 보면서


내 탓을 많이 하게 됐다.





결론은 달라질 건 없었다.



아이와 함께 보낸 지난날들이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 둘 사이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임에도


틀어지고 극으로 치달았으며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결국 우리 둘에게 남은 건


상처이고 흔적이다.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아이를 코너로 몰아넣고


나의 불안함을


해소하는 도구로 쓰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내 소유물이 아니다.


내 인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 나의 거울로 여겨


아이를 내가 원하는 길로만 가라고 다그쳤다.



후회스럽고 미안한 마음만 남았다.



열정과 의지는 스스로 가져야 한다.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성적이 낮든 학벌이 낮든


그건 절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고


의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학벌이 낮다고 비아냥 거리는 말은


거슬리지도 않는다.



더 늦기 전에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곧 사춘기가 올 텐데 걱정이다.


무심한 엄마였다.



이제부터라도 의지를 다진다.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다.



내가 끼어들 자격이 없다.



남들 다 하는 식으로는 너를 대하지 않겠다.



학습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나의 몫이다.


그건 허상의 공포이다.



엄마가 인생을 어떻게 열정적으로 살아내는지


뒷모습을 보고 따라갈 수 있게


나부터 세상과 부딪혀보련다.



분명히 분명히 힘을 내어


무서움을 극복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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