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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귀신

by Anna

백발 노인 귀신이

3층 발코니에서 흐느적리고 있었다.


지난 생에서 사람을 죽여

안락사를 당한 강아지 귀신이

누군가를 따라가고 있는것이

백발 노인 귀신의 눈에 들어왔다.


저승사자가 강아지를

눈빛으로 포박하며

강아지를 앞세워 걷고 있었다.


사람 죽인 강아지 귀신은 진정제를 맞은 듯

온순한 모습이었다.


"저 유명한 개가 드디어

다른 곳으로 가는가보군.

그것 참 잘 됐어."


사람을 죽인 개가 이동하는 것을 보며

백발 노인 귀신은 팔짱을 꼈다.

사람을 죽였다니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이 핫한 소식을 떠벌리며 전하려던

백발 노인 귀신은

저승사자의 시선이 3층에 닫자,


가벼운 몸을 펄럭였다.


백발 노인 귀신의

팔짱 낀 몸은 더욱 옴츠러 들고

다른 곳을 더듬 더듬 찾아 시선을 돌렸다.


저승사자가 도착한 곳에는


강아지의 주인이

방금 막, 망자가 되어 있었다.


너덜너덜한 티셔츠에

앙상하게 나와 있는 두 팔에는

주사 자국이 여러 군데였다.


푸석한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흐트러져 ,

그의 튀어나온 광대뼈와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알약을 씹다 숨진 입은

여전히 오물거리고 있었다.


귀신의 깊이 패인 관자놀이가

입과 함께 덩달아 움직였다.



피부에 탄력을 잃어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관자놀이의

모양이 눈에 띄게 보일 정도였다.


약에 취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몸뚱이는

죽어서도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입을 오물거리던 주인이

저승사자가 데리고 온

강아지 귀신을 발견했다.



"아니, 저게 뭐야. 내가

저 세상 보내버린 똥개잖아?"


휘적 휘적 강아지 귀신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강아지는 겁에 질려

몸을 웅크렸다.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지?

분명히 죽였는데."


망자는 머리를 휙 털며

정신을 가다듬고는


늘 그래왔듯,

강아지에게 발길질을 했다.


강아지가 아니라 마치,

축구공을 멀리 차서 보내려는 발길질 같았다.


망자의 발은 당연히

강아지에게 닿지 않았다.


주인의 발이 허공에

'휙' 하고

휘둘러졌다.


마약에 중독되어 죽은 귀신은

누군가 던진 음료수 캔마냥

바닥에 뒹굴었다.


"이게 바로 환각인가?

아이고야.

내가 마약을 수도 없이 했지만

저 똥개를 그동안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이고, 아이고 아파라!"


강아지 귀신은

마약 냄새에 절어 있는 주인 앞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강아지 귀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절대 발로 차이지 않아.

생전에 그렇게 많이 차이고 맞았으니

이제는 갚아줘야지."


저승사자의 손이 닿자

강아지의 눈빛이 달라졌다.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정신을 잃고 있는 마약에 취한 귀신은

강아지를 보고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더 거센 발길질로

강아지를 날려버리려 했다.


또다시 허공에 휙 하고 날아간 발 때문에

마약 귀신은 한 바퀴 돌아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졌다.


"이. 이런. 아이고. 아이고.

저 똥개가 왜. 왜. 왜."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마약 냄새가 진하게 나는 귀신에게

저승사자가

검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뺨을 갈겼다.


"철썩!"


"네가 저질렀던 죗값은

절에 곱절로 치루게 될 게다."


뒤돌아 선 저승사자가 스르륵 사라지자


강아지는 뺨을 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마약쟁이 귀신을 향해 날았다.


송곳니를 끝까지 드러내어

전생에 주인이었던

마약쟁이 귀신의 손가락을 씹어버렸다.



저승사자로부터

운명을 부여 받은 강아지 귀신은

전생에 주인이었던

이 망자가 된 주인을 물어 뜯을 수 있었다.


주인의 앙상한 팔뚝의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손가락에 송곳니 자국이 선명하게 생겼다.


살이 찢겨지자

흥분한 강아지 귀신은

더욱 날뛰며 주인을 물어댔다.


다리와 어깨 코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때리던

손과 팔을 쉬지 않고 물고 늘어졌다.


마약에 취한 채 죽어버린 주인은

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죽어 귀신이 되었지만,

한 마리 강아지에게만은 물려

살이 찢기고 고통을 당하는 벌을

저승에 올라가기 전까지 받게 될 것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망자가 소리쳤다.

"사, 살려주세요!"

턱을 덜덜 떨며 고통스런 울부짖음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주인을 보며 떨던 강아지는 그곳에 없었다.


오로지 살을 찢어 사람을 죽이며

흥분을 멈추지 못한 강아지가

눈을 희번덕 거리며

다음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숨에 100km 밖으로 멀어진 저승사자가

그 모습을 보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 강아지는 네가 만든 업보야. 아직 한참 멀었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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