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길어서 말이 짧아졌습니다 #009
- 싫은 인간들이 많아 열렬히 미워했지만 실은 내가 제일 밉다. 나쁜 놈, 죽일 놈, 잔뜩 성난 거울 속 네가 제일 악인이야.
- 엄마의 행복이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행복을 짊어지는 일은 실로 고역이다. 갈수록 더해지는 무게에 속절없이 휘청휘청. 너무 뜨겁거나, 무겁거나, 냉장고에 10년은 방치된 채 유통기한도 지난 행복을 나더러 어쩌라는 건가. 고백건대 나는 누구의 의미도 되고 싶지 않다. 네. 제가 그 유명한 불효자입니다.
- 아파서 병원에 가는 걸까, 병원에 가서 아픈 걸까. 대체 내가 왜 병원에 다닐까. 징그럽도록 하얀 벽면을 한참 쳐다보다 갑자기 불린 제 이름에 덜컥 놀란다. 네에-. 오늘도 어김없이 무기력의 출석부에 몸과 마음이 도장을 찍는다.
- 그러니까 산다는 건 역시 별 거 아닌가? 무언가 이루는 것도, 남기는 일도 실은 낯선 여행지 담벼락의 2022.01.25 나 다녀감. 정도에 지나지 않는 위안이나 자기만족였던 걸까? 기왕 온 김에 맘 편히 살다 가면 그뿐인 건가?
- 여름이 너무 길어 가을이 반가워졌다. 변덕스럽게도 한풀 꺾인 우울함을 느끼며 문득 정말이지 사심 없이, 최악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늙었구나. 늙는구나. 그래도 가을은 덥지 않아. 허튼 위로는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