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에 올라서자 차밭이 계단처럼 펼쳐져 있었다. 겨울의 차밭은 생각보다 단정했다. 초록의 줄들이 능선을 따라 천천히 굽어 내려가고 있었고, 멀리 바다는 구름 사이로 떨어진 빛을 받아 은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한동안 그 풍경을 보고 서 있는데 어깨 위로 작은 것이 하나 떨어졌다. 눈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사이에서 눈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눈이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잠깐 뒤 그가 다시 말했다.
"여기 처음 오셨어요?"
"네."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모르죠. 올라와 보면 조용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올라왔어요."
그는 잠깐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데를 찾는 사람은 대개 이유가 있더라고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이 조금 더 내려 차밭 위에 흩어지고 있었다. 능선 아래 길에서는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여기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멀리 바다를 가리켰다.
"저기 보이죠. 날씨 맑은 날에는 더 또렷해요."
나는 잠깐 바다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데요."
그는 조금 웃었다.
"맞아요. 가끔은 이렇게 흐린 게 더 좋죠."
눈이 조금 더 굵어졌다. 나는 물었다.
"자주 오세요?"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생각 많을 때요."
나는 웃었다.
"그럼 오늘도 생각 많으신 날이네요."
그는 잠깐 바다를 보다가 말했다.
"사실 여기 올라오면 생각이 정리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요?"
그는 어깨를 조금 으쓱했다.
"정리는 안 되고 그냥 풍경만 더 보게 되네요."
나는 말했다.
"그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한데요."
잠깐 뒤 그가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눈들,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나는 차밭을 내려다봤다.
"아마 조용한 데로 가겠죠."
"예를 들면요?"
"저기 차잎 사이 같은 데요."
그는 웃었다.
"괜찮은 곳이네요."
잠깐 뒤 그가 말했다.
"이제 내려가야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잠깐 더 능선 위에 서 있다가 차밭 사이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오면서 문득 생각했다.
아까 그 사람이 정말 거기 있었는지, 아니면 잠깐 풍경이 걸어온 말이었는지.
눈은 여전히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