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미한 오차

측정되지 않는 것들

by 서율빈

강의가 끝난 오후 여섯 시. 학생들이 빠져나간 강의실의 여운이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다. 오늘 내 강의를 들은 학생은 약 50명이다.


그중 내 목소리에 유의미하게 반응한 사람이 몇 명인지는 아마 끝내 측정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은 내가 칠판에 쓰는 수식보다 강의실 여기저기에서 서로 주고받는 눈길 같은 미묘한 신호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잠깐 내려다보고, 누군가는 옆자리 친구와 짧은 눈빛을 주고받는다. 어떤 눈빛은 지루함을 숨기지 못하고, 어떤 눈빛은 이미 강의실 밖 어딘가를 향해 미리 흘러가 있다.


그들에게 나는 지식을 설명하는 사람일 뿐이며, 나 역시 그들을 학기 말이면 사라질 데이터처럼 다루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데이터들이 살아갈 삶의 크기는 아직 누구도 계산하지 못한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저들 중 몇 명은 언젠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어떤 조직의 톱니바퀴 속으로 들어가겠지.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지금 이 강의실에서 흘려보낸 시간들을 조금 다른 눈으로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일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온라인 어딘가에 문장을 올리던 시간이 있었다. 다만 어느 시기부터는 먹고사는 일에 밀려 그 습관을 한동안 접어 두고 지냈다.


그 사이에도 ‘서율빈’이라는 이름으로 가끔 문장을 적어 두기는 했다. 연구 자료를 정리하다가 문득 떠오른 문장들, 새벽에 잠깐 깬 밤에 남겨 둔 문장들, 기차 안이나 낯선 도시의 숙소에서 적어 둔 문장들. 그렇게 모여든 문장들은 대부분 노트북 폴더 어딘가에 남아 내가 다시 읽어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독자를 만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어떤 문장들은 그렇게 몇 년을 지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그 문장들을 브런치에 다시 올리기 시작했다. 낮에는 강의실에서 통제된 논리를 설명하고, 밤에는 편의점 구석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샌드위치를 씹으며 ‘선택받지 못한 것들의 비릿함’을 적는다. 아마도 그 작은 공개 이후로 나의 일상은 어느 순간부터 두 겹으로 나뉘어 흘러가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글을 쓰고 나서 일상이 어떻게 바뀌었느냐고.


바뀐 건 없다. 나는 여전히 강의실 앞에 서서 칠판에 식을 적고, 학생들은 노트북 화면과 휴대폰 사이를 번갈아 내려다본다. 강의는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흘러간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나는 나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하는 이들의 눈동자 뒤에서 그들이 아직 말하지 않은 어떤 삶을 가끔 상상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주를 산다는 어느 작가의 다정한 글을 읽다가 잠깐 생각했다. 나는 이런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저 오늘 저녁 내 글에 달린 짧은 댓글 하나, 좋아요 알림 하나가 내 하루를 조금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 정도만 가만히 떠올려 본다.


내 글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길바닥에 뿌려진 전단지처럼 가벼울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정중하게 건넸으나 끝내 오독(誤讀)되어 버린 초대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벼운 종이에 손을 베인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이 문장들이 갈 곳을 찾았다고 믿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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