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줄어들수록 삶은 깊어졌다

나이 들어서 배운 듣는 연습

by 이월규

나이 들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은 의외로 사소하다. 일상 속 아주 작은 장면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게 될 때다.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인데 요즘은 자꾸 다시 보게 된다. 같은 풍경이고 같은 말인데도, 마음에 닿는 깊이가 전과는 다르다.


젊을 땐 앞만 보고 달렸다.

속도를 줄이면 뒤처질 것 같았고, 멈추면 불안했다. 이제는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나이 듦을 그렇게,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는 요즘이다.


요즘은 책을 읽다 자주 멈춘다. 책 속의 한 문장이 마음을 붙잡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좋은 문장을 메모하는 데서 그쳤다면, 이제는 그 한 줄에 내 삶을 조심스럽게 풀어놓게 된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떠오르고, 그때는 몰랐던 소중함이 뒤늦게 마음에 내려앉는다. 나이 들면서 책은 읽는 것만이 아닌, 나를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말이 줄어들고, 듣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엔 모임에 나가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누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끼어들었다가 “아직 네 차례가 아니야”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땐 많이 서운했고, 집에 돌아와 스스로가 못마땅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나는 점점 듣는 사람이 되었다. 많이 말하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잘 듣는 태도가 더 단단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수가 줄어든 대신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나만의 기준이 조금씩 자리 잡아가고 있다.


살아가면서 여전히 어려운 일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도 관계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누군가를 바꾸려 하기보다 내 마음을 먼저 정리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을 때 관계에서 흔들리던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진다.


마음이 평온할 때, 비로소 진심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나이 들어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감사일기를 쓰며

나 자신을 인정해 주는 일.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이 든다는 것은

할 일이 없어 무기력해지는 것도,

무언가를 잃어만 가는 것도 아니다.


불필요한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조금 느리지만,

조금 더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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