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은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력한 언어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항상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라.” 존 듀이의 말이다.
예수는 훨씬 이전, 유대의 바위산 위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대접하라.”
시대도, 배경도 다르지만 두 말은 같은 진실을 향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 싶고 또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내가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사람의 마음은 아주 조금씩 열린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온전히 몸으로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한 사람이 불쑥 들어왔다. 다른 업무로 몹시 바쁜 상황이라 솔직히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많이 바쁘신가 봐요. 인상도 참 좋으시네요. 부지런함이 얼굴에 그대로 보여요.”
뜻밖의 말에 잠시 손이 멈췄다.
그는 곧, 다른 가게에서 겪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잡상인 같다고, 바쁘니 얼른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쓰렸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단번에 밀려난 기분이 얼마나 서러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나는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아, 그러셨군요.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을 뿐이다.
특별한 조언도 하지 않았다. 따뜻한 물 한 잔, 그의 마음을 향한 짧은 관심, 그리고 말 한마디. 그것이 전부였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가 가게를 나설 때, 처음 들어올 때보다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태도는 어디에서나 반복된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결국 그 사람 자신의 얼굴이 된다.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대하는 일 그날의 작은 실천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다시 묻게 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 그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 결국 나의 인격이 된다는 사실을.
남루한 차림의 어르신을 보며 문득 나의 먼 미래를 떠올렸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태도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알아차리는 감각은 늘 가슴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나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조금 더 기다려주고, 이 사람의 어떤 점을 칭찬할 수 있을지를 의식적으로 찾아보려 한다.
인간관계란 무언가를 얻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온전히 한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