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6 21일 나만의 계획 세우기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

by 이월규

은퇴 후,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글이 실린 날


은퇴 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무례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있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꾸만 공허함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안 책장을 둘러보다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집 앞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책 속 사람들과의 만남은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언젠가부터 좋은 문장을 메모하게 되었고, 밑줄을 그을 수 없는 도서관 책 대신 소장하고 싶은 책은 중고서점에서 구입해 나만의 책장을 채워갔다. 자연스럽게 나의 기록도 쌓이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 글을 쓴다는 것


‘나이 들어 글을 쓴다는 게 과연 의미 있을까?’ 이 질문이 오랫동안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짧고 서툰 글이었지만 분명히 내 생각이 담긴 글이었다.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땐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했다. 그 과정 속에서 바깥세상과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공원을 산책하며 보던 익숙한 길 위에서 꽃 한 송이, 간판 하나, 나무 그림자에 눈길이 갔다. 매일 스쳐 지나던 것들이 글감이 되었고, 조금씩 글쓰기가 재미있어졌다. 문장이 길어지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블로그, 그리고 누군가의 공감


블로그에 첫 글을 올렸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누군가가 공감의 댓글을 남겨주었다. 그 짧은 반응 하나가 내게는 세상 무엇보다 큰 응원이 되었다. 그 후, 인천 중앙도서관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2년 동안 두 권의 책을 공저로 출간하는 소중한 경험도 했다.


매달 셋째 주 화요일, 새벽 첫차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 글이 한 권의 책에 담긴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글로 표현된 나의 생각이 활자가 되어 세상에 나온 날, 그날은 분명히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글쓰기, 나를 바꾸다


글쓰기는 점점 습관이 되었다.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어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마음속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나도 아직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감정이 생겨났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책 속에서 만난 한 줄의 문장 앞에 멈춰 서서, 그 문장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 삶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글을 썼다. 가끔은 글을 쓰다 울컥해질 때도 있다. 감정이 쏟아지는 순간, 답답했던 마음이 글을 통해 정리되고 치유되는 기분을 느낀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계속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브런치 작가가 된 날


글쓰기를 시작하며 마음속에 품었던 작은 바람,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현실이 되던 날. 처음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글을 쓰며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를 그 순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가족이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고, 나 스스로에게도 조용히 ‘잘했어’라고 말을 건넸다.

그날은 분명히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자랑스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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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나를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되다


지금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을 향해 걸어간다. 독서모임 친구들과 함께 작은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의 글을 엮어, 우리만의 책을 만들고자 한다.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한 권의 책 안에 담길 예정이다. 이제는 단순한 ‘독서가’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그 고민으로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제2의 인생은 ‘나를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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