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평면으로부터의 자유 - 보는 미술, 생각하는 미술
연극 무대를 상상해보자. 상가가 늘어서 있고 전봇대가 비딱하게 서있는 길가,
여느 가정집 거실, 소박하게 꾸며진 동네 선술집 등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소로 꾸며보자. 그리고 그곳들 어느 한편에 다음과 같은
물건들이 놓여 있다고 해보자.
세제 박스
바나나
통조림 깡통
배우가 등장한다.
이리저리 무대 위를 배회하던 배우는 물건들을 가리키며 관객들을 향해
"이 물건들이 무엇으로 보이는가?"라고 묻는다. 잠시 망설이던 관객들 가운데
"세제 상자요, 파인애플 통조림이요, 바나나요"라는 대답이 흘러나온다. 배우는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이것은 미술작품이다"라고 외친다.
"여러분들의 눈에는 그저 세제 상자, 통조림 깡통, 바나나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것은
엄청난 미술작품이다. 이것들로 인해 미술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술렁이던 관객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른다. "그것들을 어떻게 미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 너는 사기꾼이다!" 배우는 혀를 끌끌 차며 관객을 향해 말한다.
"돼지 목에 진주 귀고리일 뿐이야."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관객들은 배우를 향해
야유를 퍼붓고 물건들을 집어던진다. 배우 황급히 퇴장한다.
다시 눈을 감고 국립 현대 미술관에 왔다고 상상해보자. 꽤나 유명한 작품들이
걸려있는 벽면 한 곳에 바나나가 붙어있다.
전시장 벽에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작품 해설사가 나온다.
"여러분들이 지금 보고 계시는 작품들은 미술사에 일대 전환을 불러일으킨 기념비적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일반적인 상품을 미술관 안에 전시함으로써, 상품이 갖고 있는 본래의 목적성 – 상품을 생산, 판매하고 구매해서 소비하는
유통의 과정 - 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죠. 이것은 기존 미술 역사의 한계성을 뚫고 나온 것으로 이제 미술이 단순히 보는 것에서 생각하는 미술로의 대전환을 일으켰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작품해설사의 거침없는 설명에 관객들은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감상한다. 그 순간,
한 남자가 벽에 붙어 있던 바나나를 뜯어내고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경찰을 불러야 되지 않나?" "저 유명한 작품을 먹어치우다니.. 저 작자는 미친 게
틀림없어." 말릴 틈도 없이 일어난 해프닝에 다들 큰일 난 표정들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바나나를 설치한 작가가 웅성대고 있는 관객들을 비집고 나타난다.
작가는 주머니에서 바나나 한 개를 꺼내 다시 벽면에 붙여 놓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현장에서 붙잡힌 사람 역시 행위예술가였다. 너무 배가 고파서 바나나를
먹었다고 한다. 물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현대 미술에 있어서 유명 작가의 아이디어는 무엇이 됐든 예술로 인정될 수 있는가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에피소드다. 현대 미술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을 넘어서 ‘사유’의 영역 속으로 들어간 것인가?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철학과의 경계는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미술이고 저것은 아니다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의 추상미술처럼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흙으로 빚어놓은 형상에 틀을
떠서 주물을 부어 만든 조각 작품도 아니다. 그저 매일같이 대량 생산하는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길가의 아무 상점에서나 판매되는 늘 사용되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용품을 갖고 자신도 운영위원의 한 사람으로 있는 전시회에 난입해서 미술의 역사를 발칵 뒤집어 놓은 마르셀 뒤샹이라는 예술가가 있었다.
샘. 마르셀 뒤샹. 다다이즘
프랑스 출신의 이 예술가는 1917년 미국의 독립미술가협회가 주최한 <앙데팡당 전>에 남자화장실에서 쓰이는 소변기의 테두리에 제작 공장 인부 중 한 사람이라는
설이 있는 혹은, 얼간이라는 뜻의 R.Mutt라는 이름을 서명해서 출품했다가
작품 전시를 거부당한다.
무엇 때문에 이 작품은 전시를 거부당했을까? 더욱이 마르셀 뒤샹은 전시회 운영위원 중 한 사람이었고 전문작가든 비전문가든, 어떤 유형의 작품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앙데팡당 즉, 기존 미술계와는 완전한 차별과 독자적인 노선을 부르짖던
그야말로 혁신적인 독립 미술가 협회전에서 말이다.
당시 운영위원회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지도 모른다.
운영위원장 : 마르셀,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뒤샹 : 뭐가? 무슨 문제라도 있어?
운영위원장 : 아니 전시장에 소변기를 갖다 놓으면 어떡해?
뒤샹 : 아, 이거 이번 전시회에 출품할 내 작품이야. 어때 근사하지 않아?
운영위원장 : 뭐? 자네의 출품작이라고? 이 소변기가!
뒤샹 : 그렇다네. 여기 싸인도 있지 않나.
운영위원장 : 이건 자네 싸인이 아닌데..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군가?
뒤샹 : 응. 이 소변기를 만든 공장 인부일세. 왜? 무슨 문제라도 되는가?
앙데팡당 아닌가!
운영위원장 : 공장 인부의 이름이라고? 이게 대체 무슨..
뒤샹 : 자 자 흥분만 하지 말고 이 유려하면서도 관능적으로 흘러내리는 곡선과
흰 닭 알 빛의 색상을 좀 보게? 이건 마치 앵그르의 <샘> 속에서
마르지 않는 사랑과 예술의 원천을 쏟아붓고 있는 여인의 자태를
능가하는 것 같지 않나? 해서 나는 이 아이에게 <샘>이란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지.
어떤 예술가가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작품의 제출자가
바로 나, 마르셀 뒤샹이란 말이지 ㅎ ㅎ
운영위원장 : 아 아니, 아무리 뒤샹 자네라 해도 이건 너무 도가 지나쳐.
자네가 직접 제작한 것도 아니잖은가?
뒤샹 :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전시장들을 둘러보라고. 온통 모방에 또 모방이 넘쳐나는
마당에. 신의 영역을 넘나들겠다는 천재 놀이는 이제 끝났어.
더 이상 저 캔버스 위에서의 거짓 창조는 끝났다고!
운영위원장 : 무슨 말인가? 그래도 우리는 예술가야.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고자
하루하루 창작의 고통을 견뎌내며 영혼까지도 갈아서
물감으로 쓰는 사람들이라고!
뒤샹 : 거 말 한 번 잘했네. 여기 이 R.Mutt도 그래. 이 사람도 하루하루 삶의 무게를
견디고 불구덩이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육신과 영혼까지 불살라서 소변기를 만들지. 그래서 내가 그를 대신해서
이것을 여기에 전시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란 말이야!
운영위원장 : 그.. 그래도 이건 우리 전시회의 취지에 대한 모욕이라고. 나는 절대로
이 따위 장난질을 전시장에 들여놓을 수는 없네. 이 불결한 물건을 당장 빼게!
뒤샹 : 그럴 순 없지. 우리는 기존 미술계가 쓰레기 더미를 만들어 내고도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대중들을 기만해 온 관행을 갈아엎고자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것 아닌가? 나는 반드시 이것을 전시를 할 걸세.
한 방 제대로 먹여야지!
운영위원장 : 마르셀! 이는 용납할 수 없는 반 예술적 행위일세. 나는 위원장으로서
모든 운영위원들과 함께 자네의 이런 돌출 행동을 반드시 저지하고 말 것이야!
남성용 화장실 벽에 매달려 있어야 할 소변기에 색칠을 한 것도 아니고,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붙인 것처럼 뭔가 조형적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다시 제작한 흔적도 없을뿐더러
자전거 바퀴. 마르셀 뒤샹 최초의 기성품을 활용한 레디-메이드 작품.
작가 본명도 아닌 불특정 한 사람의 이름을 대충 끄적거려 놓고 <샘>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을 붙여 전시회에 내놓았다. 1917년이다.
당신이 전시 운영위원 중 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뒤샹의 <샘>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다 못해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대단한 미술작품이라고 칭송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매매되는 광경을 자주 보고 들어왔기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당시 사람들이
되어보면 뒤샹의 소변기 <샘>이 전시 거부를 당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 듯싶다.
전시를 거부당한 뒤샹은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허울 좋은 명분과는 달리 기존 미술계와 똑같은 행태를 저지른 미국 독립미술가협회에 실망과 분노를 터뜨린다.
‘6달러라는 참가비를 낸 모든 화가는 작품을 전시할 권리를 갖는다. <샘>은 아무런
거론도 없이 종적을 감추었고 전시에서 제외되었다. <샘>을 거부한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혹자는 그것이 부도덕하고 천하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것이 단지 화장실 용구의 모사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샘>은 부도덕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화장실 용구 상점의 진열장에서 볼 수 있는 부품일 따름이다. 그것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그것을 선택했다.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그것을 배치했다. 이리하여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레디-메이드 - 뒤샹의 <소변기>처럼 공장에서 생산되어 매매되거나 실생활에 직접
쓰이는 기성 용품을 이용하는 미술작품 소재의 새로운 개념으로 지금은 흔하게 쓰이는 창작 방법이다. 하지만 당시 마르셀 뒤샹의 도발은 기존 미술계에 대한 모독이었고
미술계는 <샘>을 전시장의 커튼 뒤에 처박아 두는 모욕으로 응답했다.
캔버스 같은 평면 위에 연필이나 물감 등의 그림도구로 재현 혹은 표현되어야 할 대상이 평면 바깥으로 나와서 ‘이런 것들이 미술이다.’라고 공식적인 인정을 해주는 전시장에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 작품들과 나란히 서겠다니, 당시 미술계 내의 가장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인사들에게도 핵폭탄급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대략 반세기의 시간이 흐른 후에 사정이 180° 달라진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유래 없는 경제적 호황을 맞이하며 문화 예술 부문에도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예술과 상업 문화가 결합된 대중문화의 확산과 다국적 산업화 전략이다. 코카콜라병과 통조림 깡통, 비누 상자 같은
기성 제품들도 미술작품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를 조성시킨 것이다. 1964년 뉴욕의 한 전시장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만큼이나 미술사의 일대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감싸줄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자칭, 미술 제작 공장 공장장인,
앤디 워홀에 의해서 마르셀 뒤샹의 <샘>이 재연된다.
앤디 워홀은 ‘브릴로’라는 세제 상자를 복제한 작품을 동시다발적으로 전시한다.
뉴욕의 한 스테이블 갤러리에도 전시를 하게 되는데, 비평가 아서 단토가 브릴로 상자 더미를 보고 느낀 미적 경험을 토대로 쓴 <예술의 종말 이후>라는 책에서
예술의 종말이 갖는 의미를 ‘예술의 종말은 예술가들의 해방이다. 그들은 이제 어떤
것이 가능한지 않은지를 확증하기 위해 실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든 예술이, 좀 더 좁혀서 말하면 무엇이든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 두 개의 에피소드는 사실과 상상을 더한 이야기다. 과연 무엇이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흔한 무엇들’을 미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episode 1.
1964년 뉴욕 이스트 74번가의 한 갤러리에 ‘Brillo’라는 로고가 디자인되어있는
세제 상자가 배달된다. 그것은 미국의 어떤 가게에서도 살 수 있는 흔한 세제들 중의
하나다. 청소를 위해 주문한 것이지만 다음 전시회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원들의 무관심 속에 ‘Brillo’는 전시회장 한 구석에 제멋대로 쌓여 있게 된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가운데 전시회는 시작됐고 청소를 위해 배달된 ‘Brillo’
상자 더미는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었다. 그 ‘Brillo’는 갤러리를 방문한
미술평론가, 기자들에 의해 미술 역사의 지평을 바꿔 놓은 획기적 사건으로 다뤄졌고
일약 세계 예술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사라져 버린 마르셀 뒤샹의 소변기 <샘> 이후 다시 한번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작품이 되어
‘오, 얼마나 유니크한 Brillo 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파괴인가!’
‘이 작가는 세제 상자 더미로 지금까지의 예술의 역사를 파묻어 버렸다. 이제 (기존의) 예술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는 찬사와 함께 평론가들과 예술철학자들은 앞 다퉈 ‘Brillo’의 미술사적, 미학적 의미에 대해 글을 썼고 언론은 ‘Brillo’를 전시한
무명의 작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달원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술계의 스타가 된지도 모른 채 오늘도 힘겹게 ‘Brillo’ 상자를 나르고 있다.
브릴로 상자. 앤디 워홀. 팝 아트
episode 2.
1964년 뉴욕 이스트 74번가의 한 갤러리에 ‘Brillo’라는 로고가 디자인되어있는
세제 상자가 배달된다. 미국의 어떤 가게에서도 살 수 있는 흔한 세제들 중의 하나다. 청소를 위해 주문한 것이지만 다음 전시회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원들의
무관심 속에 ‘Brillo’는 전시회장 한 구석에 제멋대로 쌓여 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막 뉴욕 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야심만만한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이
갤러리를 방문했다가 전시장 한쪽 벽면 아래 놓여있던 그 ‘Brillo’ 상자를 보게 된다. “오, 이런!” 감전된 듯 한동안 문제의 그 상자 더미 앞을 떠나지 못한 워홀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로 이거야! 오우 마이 갓! 이게 여기 있다니!”
워홀은 즉시, 목재 제작소에 전화를 걸어 그 ‘Brillo’와 같은 크기의 상자 수백 개를
주문하고 동료 작가에게 ‘브릴로’와 똑같은 디자인을 실크스크린으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Brillo’ 세제 상자와 똑같은 크기의 합판 상자 위에 ‘Brillo’와 똑같은 디자인을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수백 개의 ‘Brillo’를 뉴욕의 여러 갤러리에서 동시에 전시를 한다. 한 전시장에서 아서 단토라는 미술비평가 겸 예술철학자가
그 ‘Brillo’ 상자 더미를 보고 전율에 가까운 미적 충격을 받는다. 오랜 사색 끝에
아서 단토는 “예술은 앤디 워홀의 ‘Brillo’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지금까지의 예술은 종말을 고했다. 예술은 이제 보는 것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넘어갔다.”라는
선언을 한다.
에피소드 1과 2 중 무엇이 미술 = 미술작품인가? 둘 다 작품이 될 수 있는가?
만일 갤러리에서 청소를 하는 사람이 워홀의 ‘Brillo’ 상자를 그냥 버려진 세제 상자로 여겨 다른 쓰레기 더미 옆에 쌓아 놨다면? 우연히 그 옆을 지나던
아서 단토는 그 ‘Brillo’ 상자를 지금까지의 예술의 역사를 지우고
다시 세울만한 작품으로 인정했을까?
아서 단토는 배달원의 ‘Brillo’ 상자를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달원은 워홀처럼 한낱 세제 포장용기에 불과한 ‘Brillo’ 상자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아무런 미학적 전략 의도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르셀 뒤샹이나 앤디 워홀처럼, 이미 공인된 예술가가 일상생활의
어떠한 사물이라도 전시장과 같은 특별한 장소에 옮겨 놓고 전시를 한다면
그것은 예술 작품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화가가 그것을 선택했다’
‘이것은 예술이다 왜냐하면 미술관 안에 있으므로..’ 뒤샹이 한 말이다.
마르셀 뒤샹이 한 말이니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아서 단토는 그의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이제 보는 것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넘어갔다.’라고 선언했다. 감상자의 눈을 통해 작품을 보자마자 무엇을 그렸는지 즉시 알 수 있는 외부 세계의 모방으로서의 미술과, 더 나아가 평면 위에 그리는
회화의 역사가 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워홀의 ‘Brillo’ 이후
미술은 ‘이 작품은 무엇을 그린 것이다’, ‘저 작품은 무엇을 표현한 것이다’가 아닌
저 ‘아무것이 왜 여기에 있는가? 일상생활에서는 언제든지 부딪히고 사용할 수 있는
소모품들이 왜 미술관이라는 곳에만 놓이면 특별한 무엇이 되는가?’라는 의문을 통해 현대 미술에서는 그 어떠한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