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을 맺는 시간에 지배받는 예술이다. 이와는 달리 미술은 그것이 2차원의 평면 위에 그려지는 회화, 3차원적 입방체로 나타내는 조각이나 공예, 건축이든 모든 장르의
작품들은 시간이 정지된 상태를 공간상에 표현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2020년 6월 5일 저녁 7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인상주의 음악의 거장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한다.
손열음 연주
같은 시각,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이 내한하여 국립극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고,
백조의 호수
극단 산울림의 대학로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음악, 무용, 연극 세 분야의 공연이 각각 8시 30분, 9시 30분, 9시 에 막을 내리면
텅 빈 객석과 무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도대체 드뷔시의 ‘달빛’과 비련의 오데트
그리고 오지도 않을 고도를 기다려야만 한다던 블라디미르는 어디에 있는가?
돌아가는 관람객들의 기억과 대화 속에만 존재할 뿐,
2020년 6월 5일 저녁 7시에 막이 올라간 음악(손열음의 피아노 연주), 무용(볼쇼이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과 연극(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은 공연 시간 종료와 동시에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물론 악보나 대본에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은 미술로 치면 도화지나 캔버스와 같은 것이다. 그 위에 손열음, 볼쇼이 발레단 그리고 극단 산울림의 단원들이 선을 긋고 색을 칠하고 찢고 이어 붙여야만 비로소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시간과 함께 마술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음악, 무용, 연극이 시간을 장식하는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이와는 다르게 미술은, 공간에 지배받는 예술이다.
붓에 물감을 흠뻑 묻혀서 점을 찍은 상태에서 쭉 끌고 간 것이 선, 그 선을 이리저리
끌어 출발한 점에 닿은 것이 소위 말하는 2차원적 공간 평면이다. 캔버스나 도화지 혹은 벽면 등이 평면이며 그림이 그려지는 화면이다. 그런 평면 위에 붓, 연필, 물감 같은
미술 도구를 이용해서 그린 것이 회화이며, 입체 형태의 물체를 자르고 깎거나 붙이고 쌓아서 만드는 3차원의 공간 속에서 3차원의 입체 형태로 만들어지는 조각 등과 함께 대표적인 미술의 장르다. 미술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작품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또한 공간을 활용하고 동시에 공간의 제약을 받는 예술 활동인 것이다. 회화도 전통적인
조각 작품도 아닌 비평면 미술이라 부를 수 있는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등의
<샘>이나 <브릴로 상자>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 상에 모든 인간이 사라졌다. 노래나 연주 소리도, 춤을 추는 몸짓도, 고뇌에 가득 찬 표정으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읊조리는 햄릿의 대사도 당연히 사라진다. 하지만 공간 예술인 미술 작품은 그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