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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경 Mar 26. 2021

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았다

미술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3.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3.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미술이 시대나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면 미술이라는 단어에 담긴 내용에 공통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 된다. 완전히 다른 성질과 용도를 지닌 것으로 이론상 더 이상은 미술이라 불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술 작품이 아닌 모든 것을 제외한 나머지가 미술 작품이다’

라는 결론이 무색해지는 현상이 미술계 내에서 발생한다. 저 유명한 마르셀 뒤샹의 

<샘>과 같은, 회화도 조각도 아닌 제3의 유형에 해당하는 작품에 이르면 미술 작품에 해당하지 않는 것 즉, 공장에서 생산해낸 여러 가지 일상용품 같은 것들이 미술 작품으로 등장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이다. 그것들은 전시장 안에서는 미술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전시장을 벗어나는 순간 그저 수많은 남성용 소변기나 

세제 박스, 통조림 깡통에 지나지 않는 일상적인 물건이기 때문이다.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같은 이론가는 심지어 미술은, 근대 – 지난 200년간 –의 

발명품’이라고 단언한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성한 뛰어난 건물들과 물품들은 

우리의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근대 이전의 

미술은 미술이라는 개념 안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미술이 아닌 다른 무엇 즉, 정치나 종교 같은 권력 기관의 선전물 혹은 장식품, 실생활에서 쓰는 공예품 같은 역할이 우선된 것들을 근대 이후 사회문화에서 차용해 미술이라고 부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근대 이전에는 그저 밥그릇 또는 술잔으로 쓰이던 것들이 근대 이후에, <미술>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고, <미술>로 불리게 되면서,  

비로소 <미술작품>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녀에 따르면 위대한 미술 작품으로 알고 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도, 구스타프 쿠르베의 

‘돌을 깨는 직공’도 미술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미술이

 <미술>로 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의 용품이나 정치, 종교, 이념 등의 모든 사회 경제적 틀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창작되어야만 하는 전제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진정한 미술은, 일정 기간 배워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천재적 재능을 갖춘 예술가가 번뜩이는 영감으로 창조한 것들만을 일컫는다.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에 따르면, 이것은 미술인데


아비뇽의 처녀들. 파블로 피카소. 입체파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미켈란젤로. 르네상스    


이것도 미술이 아닌데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이것은 미술이라 한다.


LHOOQ. 마르셀 뒤샹. 다다이즘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는 그녀의 대표 저서 <Believing is Seeing>의 서두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다양한 제도들에 의해 형성되고 정의된다. 제도는 사물들에 그 경계와 관행을 설정해 준다. 이는 액자틀이 그 안에 있는 것을 회화로 

보이게 만들고, 좌대가 그 위에 있는 것을 조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과 같다.’ 

라고 말한다.


근대 이전에 살았던 예술가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스승으로부터 일정기간 창작 수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교황과 교단의 명령과 주문에 의해 작품을 제작하고 결국, 그들의 작품은 교회 권력의 부속물이나 왕실과 귀족 계급의 어떤 대가를 받은 선전물, 실용적인 목적을 지닌 일상용품으로 취급되는 제도의 경계와 관행에 속하는 것이므로 

<미술>이 아닌 것이다. 다만 근대적 제도로서 탄생한 <미술>이라는 액자와 좌대가 근대 이전의 미술이 아닌 그 어떠한 것들을 지금의 우리로 하여금 미술로 보이고 미술이라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는 것이 보는 것 - Believing is Seeing이다. 

믿게 만들고 별다른 의심 없이 믿어버렸기 때문에, 미술이 아닌 것을 

<미술>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녀의 논지의 핵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한 근대 이후의 미술가들이 

기존의 제도 밖으로 걸어 나와 ‘자유롭고’ ‘독창적인’ 미술을 추구하게 된 계기는 그다지 주체적이고 자발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들, 근대의 예술가들은 사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위치로 밀려나 있었고, 기존 제도의 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쳤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있었던 것이다. 


미술계에서 근대의 문을 여는 최초의 시도자들 즉, 외젠 들 라크루와, 구스타프 쿠르베, 에두아르 마네 등은 국가가 주관하는 공모전에 대해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면서도 틈틈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심지어 마네는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거의 평생에 

걸쳐 <살롱전>의 문을 두드렸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이 근대의 미술가들을 

비주체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이었다고 폄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도적 관행과 

사진이나 영화 등 새로운 문명의 물결은 미술가들을 기왕에 세워져 있던 경계 밖으로 밀어붙여 전혀 다른 물길을 만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근대 이후 새롭게 태어난 듯 보이는 천재들의 작품과 소통 과정의 차별성은 결국 역사의 연속선상 위에서만 그 의미와 가치를 획득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미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불리던 시절이든, 미술이라는 용어를 발명하고 이것은 미술이고 

저것은 미술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확증편향의 시대든 말이다. 


사회문화적 현상의 의미와 가치는 한마디의 단어로 정의되기 이전의 문제이고, 

제도라는 액자 안과 좌대 위에 있는 대상들의 내용을 본질로 삼는 것이다. 미술이라는 용어는 결국 시대가 만들어낸 여러 종류의 포장지 중 하나이며, 포장지 안의 내용물은 스타니스제프스키의 표현대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고,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 역시 시대적 관계의 틀을 넘어서는 순간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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