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7-(3)
그러던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부랴부랴 시댁으로 찾아왔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숨이 찼고, 손등엔 굳은살이 더 솟아 있었다. 어머니는 마당에서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인사부터 했다.
“아이고, 머슴애들 일하는디… 죄송허요. 저… 영감탱이가 좀 크게 앓아 누웠는디, 병원비가….”
말끝을 흐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효선은 그제야 사정을 알아채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연히 도울 수 있으리라 여겼다. 시댁은 이 동네에서도 손꼽히는 살림이었고, 남편도 제법 여유 있는 집안의 장남이었다.
효선은 망설이다가 시어머니를 따로 뵈었다.
“어머니,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아버지가 병원에 누우셔서요. 마음만이라도 좀 보태주시면… 나중에 꼭 갚겠습니더.”
시어머니는 잠시 효선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시집왔으면 이 집 사람이지, 자꾸 친정 일에 끌려다니믄 안 된다. 우리도 나갈 데가 많다. 앞으로 이런 소리 함부로 꺼내지 마라.”
말투는 높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질 수 없다는 걸 효선은 바로 알아챘다. 그보다 더 아픈 것은, 시어머니가 ‘친정 도와달라’는 말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긴 눈빛이었다. 효선은 그 자리에서 더 말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방으로 돌아온 효선은 조용히 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억울함보다 서운함이 먼저 밀려왔다. 아버지 생각에, 어머니 얼굴에 맺힌 땀방울 생각에, 그리고 이 집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친정을 위해 손 내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밖에서 마루가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신랑이었다. 문이 살짝 열리고, 신랑이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효선의 눈가에 고인 눈물부터가 먼저 들어왔다.
“왜 우노?”
평소처럼 툭 던지는 말투였지만, 그 순간 신랑의 가슴은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죄어들었다.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효선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효선이 더는 숨길 수 없어 조심스레 사정을 털어놓자, 신랑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없이 일어났다.
“기다리라.”
그날 밤, 신랑은 아버지를 따로 불러 독대를 가졌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효선이 들을 수 없었다. 다만 고성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묵직한 침묵이 사랑채와 안채 사이를 여러 번 오가는 기척만이 느껴졌다.
이튿날 아침, 신랑이 갑자기 말했다.
“채비해라. 친정 가자.”
“예? 지금요?”
효선은 어리둥절했다. 시어머니 눈치도 보였고, 병원비 이야기를 꺼냈다 매몰차게 거절당한 기억이 아직 생생했다.
“가보면 안다. 아버님 아픈디, 얼굴 안 뵐 기가.”
신랑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 말에 효선은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마차도, 버스도 없는 길을 둘이 나란히 걸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놀란 얼굴로 둘을 맞았다.
“아이고, 이 먼 길을… 오죽했으면 왔겄냐.”
효선은 병실로 뛰어들 듯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했다. 창백해진 얼굴, 마르면 더 짙어 보이는 눈꼬리. 효선은 손을 꼭 잡고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 이쪽에서는 효선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저쪽 복도 끝에서는 어머니와 신랑의 낮은 대화 소리가 희미하게 섞였다.
얼마 후, 효선이 병실에서 나왔을 때, 어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손에는 두툼한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게 뭐다요?”
효선이 묻기도 전에, 어머니가 먼저 효선을 붙들었다.
“야, 효선아… 너 참 복도 많다. 사위가 병원비를 몽땅 내줬다. 그것도 모자라 생활비까지 챙겨줬다. 나중에 다 갚으라 카지만, 우린 알제. 그걸 다 언제 갚겠노. 그래도, 나눠서라도 갚을 끼다. 기죽고 살지 마라. 니는 이제, 든든한 데 시집갔는 기라.”
어머니의 말에 효선의 목이 또다시 꽉 메었다. 울컥 치밀어 오른 눈물을 겨우 삼키며, 효선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집에돌아오자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서 있는 신랑이 눈에 들어왔다.
효선은 천천히 다가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고맙습니더.”
신랑은 잠시 효선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짧게 웃었다.
“네가 웃으니 됐다. 그라모 다 된 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