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선 그 두번째 이야기

단편소설7-(2)

by 최지윤

그래서 그녀는 알지 못했다.

책 속의 사랑과, 현실의 혼인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생각해 보면, 책 속 첫날밤은 언제나 비슷했다. 촛불이 아른거리고, 수줍은 눈빛이 오가고, 서툰 손길이 조심스럽게 엉켜 붙는다. 말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고, 한 번의 입맞춤으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면들.


그러나 효선에게 실제로 닥친 첫날밤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초례가 끝나고 방으로 들여보내진 신랑은, 책에서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영웅도, 운명을 깨닫고 떨고 서는 순정한 청년도 아니었다. 긴장한 기색은커녕 술기운에 달아오른 얼굴,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이는 입꼬리, 서툴다기보다는 서슴없는 손놀림이 먼저였다. 효선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종이에 적힌 문장이 아니라, 피와 숨 냄새가 섞인 현실이라는 것을.


그날 밤은, 그리고 그다음 날 밤들도, 그렇게 흘러갔다. 장에 가는 날이면 신랑은 일찍 일어나 논과 밭을 살피고, 집에서는 잠자리를 당연한 일과처럼 여기며 효선을 찾았다. 웃고, 먹고, 일하고, 또 함께 눕는 일이 반복되었다. 남녀 사이라는 것이 책 속에서처럼 번쩍이는 사건이 아니라, 어느새 몸에 밴 습관처럼 굳어져 가는 일상이라는 것을, 효선은 서서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효선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책에서 읽은 것들은 헛것이 아니라고, 글자로 배운 사랑도 현실을 조금은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는 남편의 말투를, 눈빛을, 밥을 먹을 때의 버릇을, 화를 내는 타이밍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책에서 본 대로, 또는 책에선 보지 못했던 대로 하나씩 시험해 보기로 했다.


화를 낼 때는 맞서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다시 돌아오는 여인의 태도. 힘든 날엔 먼저 “수고 많으셨어요” 하고 말 건네는 아내.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 고마운 마음을 담아 남편의 그릇을 하나 더 챙기고, 젖은 옷을 말려 두는 손길. 때로는 일부러 투정을 부려보기도 하고, 떼를 써 보기도 하면서, 효선은 남편의 반응을 살폈다. 마치 책장을 넘기듯, 하루하루를 넘기며.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남편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안채를 먼저 힐끗거리는 눈길, 식탁에 앉기도 전에 “오늘은 뭐 했노” 하고 괜히 물어보는 말버릇, 동네 일을 두고도 “니 생각은 어떻노” 한 번쯤 묻고 넘어가는 태도. 효선은 그 작은 변화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그게 바로, 책에서 말하던 ‘씨앗’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효선은 서두르지 않았다. 사랑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논두렁에 뿌린 모처럼 서서히 뿌리내린다는 걸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언젠가 남편이, 자신 말고는 아무도 떠올리지 못할 만큼 단단히 자신에게 기대게 되는 날이 올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이 낯선 집에서 효선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이 집의 가장 깊은 곳을 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 믿음을 품은 채, 효선은 오늘도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밥상을 펴고,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누구도 알려 주지 않은 방식으로, 책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스스로 배운 인내를 섞어, 자신만의 혼인살이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로)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