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의 드라이브

단편소설8

by 최지윤

팔십이 넘은 숙희는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젊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럴 때마다 숙희는 빙긋 웃었다. 그건 타고난 미모 덕분이라고, 오래전부터 믿어온 생각이었다. 텔레비전 속 연예인들도 예쁘면 나이를 비켜 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할 때마다 숙희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아직 괜찮지.”

하지만 오늘은 그 말이 잘 붙지 않았다.

자식들에겐 전화 한 통 없었고, 아침에 들렀던 딸은 옷장을 훑어보다가 “이제 그런 옷은 나이값 안 한다”며 툭 던지고 나갔다. 말은 가볍게 지나갔지만, 서운함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숙희는 백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없었다. 골목 끝에서 택시를 세웠다.

차 안에는 올드팝이 흐르고 있었다. 운전석의 남자는 예순을 갓 넘긴 듯 보였다. 말수가 적고, 지나치지 않게 다정한 인상이었다. 처음엔 그저 잡담이었다. 숙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그는 “속상하셨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숙희는 눈가가 시큰해졌다.

기름을 넣으러 들른 개인택시 조합 사무실에서는 커피까지 타 주었다. 내릴 때 그는 명함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답답하실 때, 언제든 전화 주세요.”

그날 이후 숙희는 명함을 매일 꺼내 보았다. 손끝으로 이름을 쓸어내릴 때마다 종이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정도 씨.’

이름조차 근사했다. 차분한 음성과 웃음이 자꾸 떠올랐다. 숙희의 하루는 조금씩 밝아졌다. 세상엔 아직,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주 뒤, 숙희는 결심했다.

검은 원피스를 꺼내 입고, 머리에는 망사 패시네이터를 살짝 얹었다. 거울 속 주름마저도 오늘은 나쁘지 않게 보였다.

명함 속 번호로 전화를 걸며 숙희는 떨리는 손을 다독였다.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저예요. 지난번에… 교외로 드라이브했던 숙희예요.”

택시는 곧 도착했다. 그는 여전히 친절했지만, 미소 어딘가에 미묘한 간격이 느껴졌다. 숙희는 애써 모른 척했다.

차는 고속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 들판이 창밖으로 흘러가고, 라디오에서는 그날과 같은 올드팝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또 뭐가 속상하셨어요?”

숙희는 가볍게 웃었다.

“속상하긴요. 그냥…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요.”

그러면서 무심한 척 의자 옆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그의 손이 가까이에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숙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요, 오늘은 사납금은 내가 맞춰줄게요. 우리… 조금만 더 같이 있어요.”

순간 차 안이 조용해졌다. 라디오 소리도 꺼지고, 바퀴가 노면을 긁는 소리만 남았다.

그는 백미러로 숙희를 한 번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어르신, 처음 태워드렸던 그 자리에서 내려드리겠습니다.”

말끝은 단호했다.

숙희는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목이 죄어 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차는 부드럽게 방향을 틀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선을 긋는 표정이 동시에 떠 있었다.

도착했을 때 그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 말뿐이었다.

택시가 멀어지고, 숙희는 길가에 한참 서 있었다. 손에 쥔 명함은 조금 구겨져 있었다. 바람에 패시네이터가 가볍게 흔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리창마다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입가로 번진 루즈를 닦으며 혼잣말했다.

“오늘따라 화장이 좀 짙었네.”

거울 앞에 앉아 구두를 벗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끝 아래에서 주름이 또렷이 느껴졌다.

그제야 숙희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얼마나 오래 걸어왔는지,

그리고 이제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