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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스테로이드

Chapter Ⅰ 

   스테로이드를 링거로 투여한 후부터 나는 계속 목이 타고 입안이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에 3리터 이상의 물을 마셨고, 딱히 단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혈당을 체크하면 공복 혈당 180, 밥 먹고 한두 시간쯤 지나서 혈당은 250이었다. 밤에 잠이 안 와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도, 원래 공복 혈당이 80~90이었던 내가 입원 후부터 공복 혈당 180이 넘은 것도, 물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갈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던 것도 이 모든 게 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이었다. 스테로이드를 링거로 투여하고 며칠이 지날 무렵부터는 또 다른 부작용인 moon face(얼굴이 부어서 보름달같이 동그랗게 얼굴 살이 오른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스테로이드는 나에게 그야말로 양날의 칼이었다.

     

   입원 6일째인 일요일에 나는 퇴원 수속을 하게 되었다. 6일이 지나도 여전히 오른쪽 눈은 암흑이었고, 보이는 것은 손가락 두세 개가 회색으로만 보이는 정도였다. 입원한 지 4일째부터 병실로 이동한 후 나의 주치의는 응급실 신경과 전공의 선생님에서 병동 신경과 전공의 선생님으로 바뀌었고, 6일째에 내가 퇴원하기 직전 병동 주치의 선생님은 담당 교수님에게 나의 처방약에 대해 전화로 물어보면서 처방전을 작성했다. 처방약은 스테로이드 알약 소론도정이었고, 한 번 먹을 때마다 12개 알약을 먹어야 했다.

 

   소론도정을 12개 먹은 후에는 혼자서 걷는 것이 힘들었다. 너무 어지러웠고, 걸을 때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스테로이드를 링거로 투여할 때도 갈증과 불면증 그리고 moon face 때문에 힘들었는데, 소론도정 알약을 12개 먹고 나서도 여전히 갈증과 불면증 moon face가 나를 괴롭혔다.


   퇴원하고 이틀 뒤 화요일에 나는 학교의 지도교수님 연구실에서 업 논문 심사를 위한 발표를 했다. 물론 논문 심사 발표할 때에도 나의 한쪽 눈은 여전히 손가락 두세 개가 회색으로만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논문 발표를 더 이상 미룰  없었다.


   논문 심사 발표 주간은 내가 원래 발표하려 했던 일주일 전 월요일부터 그다음 주의 금요일까지 2주 동안이라서 나는 논문 심사 발표 주간을 넘기지 않고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논문은 심사위원 교수님들께서 지적해 주신 몇 가지를 수정하고 다음날 다시 보여드린 후에 심사는 끝이 났고, 논문은 합격했다.

 

   퇴원 후 며칠이 지나서부터는 오른쪽 눈이 암흑에서 하얗게 보이기 시작했지만, 온 세상이 다 뿌옇게 보일 뿐 사물이나 사람의 형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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