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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마웠는데...

Chapter Ⅰ

   새벽 5시가 되어서 간호사가 혈당을 체크하러 왔을 때도 나는 잠이 안 와서 여전히 깨어있는 채로 혈당을 체크했다. 그리고 간호사는 "왜 이렇게 높지?"라는 혼잣말을 하곤 응급실에서 나갔다. 그렇게 응급실에서의 4일째 아침이 되었다.

  

   4일째 아침에 조식을 먹고 오전 10시쯤 주치의 선생님이 와서 안 보이는 눈을 체크했는데, 그땐 불빛이 좀 보였고, 선생님의 손가락 두 개가 보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랑 엄마한테 병실 자리가 생겨서 지금 바로 병실로 이동할 거라 말했다. 짐을 부랴부랴 싸서 병실로 옮겼고, 병원에 온 지 만 3일이 지나서야 나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게 되었다.


   한 시간쯤 뒤에 주치의 선생님이 내가 있는 병실로 왔다. 그리고 엄마랑 나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본인은 응급실에 속한 신경과 전공의라서 이제부터는 병실 담당 신경과 전공의로 주치의가 바뀔 거라고 했다. 신경과 교수님도 좀 이따 오실 건데,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해야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올라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내내 나는 선생님한테 고마웠고, 며칠 전 선생님한테 따지듯이 막 퍼부어댔던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 나는 선생님한테 고마웠다 미안했다는 말이 안 나왔다. 그냥 가만히 엄마 옆에서 엄마랑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엄마는 선생님한테 이렇게까지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아닙니다 치료 잘 받아야지요."라고 말하면서 나한테 말을 걸었다.

    

  주치의: 진영씨 눈 이제 조금씩 회복되고 있으니까 치료 잘 받아야 돼요 알겠죠? 그리고 진영씨가 임신 물어봤던 거 제가 그날 밤에 공부해 보니까 다발성경화증에 걸려도 임신할 수 있고, 임신 기간에는 주사 안 맞아도 돼요. 아기한테는 유전 안 되고, 다발성경화증이랑 아기는 아무 상관없어요. 또 삼성병원에 피검사 의뢰한 거 결과 나왔는데, 시신경척수염이 아닌 걸로 나왔어요.

  나: 그럼 저는 다발성경화증이에요?

  주치의: 음... 지금으로서는 그럴 확률이 높아요. 자세한 건 이따 교수님이랑 같이 이야기하시면 돼요.

  나: 네... (그때 나는 마지막까지도 마음속으로는 고마웠어요 그리고 밤에 따지고 퍼부어대고 엉엉 울었던 거 미안했어요 이 말이 마음속에서만 맴돌았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네...라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엄마:  그럼 선생님은 계속 응급실에만 계시는 거예요?

  주치의: 아니요, 응급실 한 달 병동 한 달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있어요. 이번 달은 응급실에 있어야 되고요.

  엄마: 네. 신경 잘 써 주시고 잘 알려주셔서 감사했어요.

  주치의: 네. 치료 잘 받으시면 일상생활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눈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회복될 수도 있으니까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엄마: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주치의와 엄마는 악수하고 헤어졌고, 그 주치의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끝으로 나의 응급실 담당 주치의를 다시 볼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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