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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생각의 중첩

Chapter Ⅰ

   눈이 보이지 않아서 응급실에 간 첫날에는 스테로이드 500ml를 링거로 투여했는데, 이튿날부터는 하루에 스테로이드 1000ml를 링거로 투여했다. 고용량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불면증이 오게 되었고, 입원한 지 2일째와 3일째에도 나는 밤에 잠들지 못했다. 안 그래도 청각이 예민한 나인데, 밤에 눈 감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더욱 청각을 곤두세워서 조그마한 소리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눈 감고 누워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말 많이 들었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엄마 아빠...


어렸을 때 생일 케이크 촛불 보고 웃으며 좋아했던 거,

엄마 아빠 손잡고 걷던 거,

엄마 손잡고 재활치료 언어치료 물리치료받으러 갔던 거,

비 오는 날 재활치료받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빠가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걸 엄마랑 나는 모른 채 우산 쓰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아빠가 차에서 내려서 엄마랑 나를 차에 태우고 집까지 데려다준 거,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개학 하루 전날 늦은 밤에 주무시는 엄마 아빠를 깨워서 학교 가기 싫다고 울면서 말했던 거,

고등학교 1학년 방과 후에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려다 문이 닫혀서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칼을 손목에 데고 있었던 거,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시작과 동시에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며 일주일 넘게 부모님을 설득했던 거,

대학교 1학년 첫 학기에 작곡과 실기 수석 했던 거,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대표로 음악회 연주하고 콩쿠르 준비해서 입상했는데, 그 덕에 원형탈모 왔던 거,

대학교 4년 내내 장학금 받아서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거,

졸업하고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했던 거,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대학원 입학했던 거,

졸업논문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거...

  

지난 20여 년의 일들이 빠르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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